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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아들은 군대를 마치고 2학년에 복학했다. 집에서 부모와 같이 있는 것을 마다하고, 부산 영도에 방 한칸 전세 얻어 학교에 다닌다. 해운대에서 영도까지의 거리가 너무 먼 게 이유라는데, 소홀히 했던 공부도 이제 고삐를 당긴다기에 허락했다.

아들은 소위 야무지지 못한 편이다.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할까? 이리 저리 신경이 쓰인다. 마누라와 함께 자취방에 한 번씩 들러 챙긴다. 칭찬보다 잔소리를 더 하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 오도록 한다. 며칠 전에는 전세방을 옮기겠다는 말을 불쑥 내밀었다.

"선배와 같이 있을게요. 다른 집으로 이사해서…."
"방향이 어느 쪽인데. 동남쪽은 절대 안돼!"

집사람은 요지부동이었다.

"어, 동남쪽 같은데…. 그런데, 엄마도 그런 것 믿어요? 그런 미신을?"
"좋은 게 좋은 거 아이가. 엄마 말 들어라. 너 얼굴에 흉터 있다는 것도 그 사람은 알잖아."

마누라의 말에 어느새 나도 동조하고 있었다. 아들이 말한 그 미신을 마누라가 들고 나온 것은 그 전날 있었던 점괘에서 연유했다. 서울에 사는 어느 친지가 신통하다는 철학관에 '점'을 보러 간다기에 우리 식구의 장래도 부탁했던 모양이다.

"그 녀석은 앞으로 2년 동안 쇠붙이를 멀리 하래요. 또 동남쪽으로 이사를 하면 큰일 난다요. 그리고 당신도 조심할 게 많고…."
"웬 사주타령?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그 이상하지요? 아이 얼굴에 흉터가 있다고 말 하더래요. 누가 일려 준 것처럼."

예전에는 이런 '사주팔자'에 신경 놓고 지내던 마누라였다. 그런데 좋지 않는 그 점괘가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철학가(?)의 그 흉터 지적을 대단한 영험(靈驗)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아들 얼굴에는 그날 '오토바이 사고'에서 생긴 흉터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허허, 씰 데 없는 짓 했네. 나이 묵으니 자네도 별수 없네. 흉터는 우연히 맞출 수도 있는 거지…."

차라리 그 말을 안 들었으면 좋았을 걸. 마누라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흉터의 지적에는 내 역시 찜찜했다. 부모는 이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식에게 약해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흉터'는 두 달 전쯤 비 오는 날 저녁에 생겼다. 전화를 받는 마누라의 표정이 점차 굳어진다. '버스' '오토바이' '병원'이란 단어들이 오가는 게 아닌가. 긴장과 걱정이 엄습했다. 아들의 교통사고였다.

"그 녀석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버스와 부딪쳤대요.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부산대학병원 응급실로…."

"뭐 오토바이를 탔다고! 버스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째 이런 일이….'

해운대에서 병원까지 가면서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차분하려고 애썼다. 입술 위 부분이 심하게 찢어졌다는 말에 그나마 안도가 되었다. 하나, 다른 신체부분, 머리라도 다쳤으면 어쩌나…. 옆 좌석의 마누라는 더 불안해 보였다. 소리 없이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괜찮겠지' 하고 달래 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더 나쁜 상태를 상상하는 듯 했다. 운전하는 내 자세도 흔들렸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응급실로 들어섰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다른 신체부위에는 이상이 없었다. 상처를 봉합하는 데만 5시간 걸렸다. 하루만에 퇴원했다. 치료는 계속 받기로 하고. 녀석을 보니 자식에 대한 다른 어떤 욕심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오토바이 타고 가다 버스와 부딪쳐서 그 정도로 그친 것은 다 조상 님 덕분이야! 다음에는 조상 님도 지쳐서 그런 힘 못 쓰실 걸. 앞으로는…."

일그러진 얼굴로 후유증에 아파하던 녀석이 미소를 짓는다. 지금도 조상 님이 붙여준 그 '흉터'를 달고 있는 그 녀석이 우찌 지내는지 걱정된다.

덧붙이는 글 | 전방초소에서 발생한 그 무모한 총기사건을 보고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희생자의 가족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주 변두리에 있는 저의 경우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용돈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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