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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남원 사직단(社稷團)의 사당에 모셔진 신주. 사(社)는 토지의 신이며 직(稷)은 곡식의 신을 이른다.
ⓒ 이철영
인류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념비적 대다수 건축물은 신전과 무덤이다. 선사 시대 거석문화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 인도, 그리스, 잉카, 마야의 유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곳에서 그들의 '신과 조상'을 만난다. 그들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 경배했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는 길을 갈구했다.

제사장들은 신의 대리인이었으며,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해주는 메신저로서 막강한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제사는 당대 세계관의 집적이자 통치 이데올로기의 상징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인류의 역사를 제사의 역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 종용사(충남 논산)내부 사당에 모셔진 조헌과 칠백의사의 위패.
ⓒ 이철영
이 땅에서 행해진 제사의 연원은 중국이다. 그것의 시초는 황하의 은나라 유적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들의 종묘 유적에서는 희생물로 바쳐진 수많은 사람들과 짐승의 뼈, 점복(占卜)의 기록인 갑골문이 발견되었다. 갑골문에서 제사(祭祀)의 '제(祭)'자는 피가 흐르는 희생제물의 고기를 손으로 바치는 형상의 상형문자로 만들어졌다.

주나라는 사람을 희생물로 바치는 일이 드물었으나 하늘, 땅, 곡식, 종묘의 조상신, 선농단의 농사신, 영성단의 별자리신, 학교에서 모신 선현 등에 대한 수많은 제사들이 행해졌다. 이 땅에는 삼국시대부터 중국의 풍습이 전래하였는데, 조선에 와서는 더욱 심화한 성리학과 예론에 의해 가히 제사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 기호사림의 종장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문묘에 배향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배향하였다.
ⓒ 이철영
조선은 국가 주도로 하늘을 모시는 원구단(圓丘壇), 땅과 곡식신을 모신 사직단, 농사신의 선농단, 누에신을 모신 선잠단에서 자연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왕실의 조상을 모신 종묘, 공자를 모신 문묘, 관우의 관왕묘, 역대 왕과 왕후의 능에서 선현에 대한 제사를 거행했다.

성균관과 향교에서도 교육의 기능과 아울러 대성전을 세워 선현에 대한 제사를 수행했는데, 공자를 필두로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의 4성(四聖)·10철과 주돈이, 정호, 정이. 소웅, 장재, 주희 등의 송조육현(宋朝六賢),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조헌, 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동방 18위, 중국 유현(儒賢) 94위 등으로 총 112위의 위패를 봉안했다.

성균관에서는 1949년부터 동방 18현과 중국의 성현 21위를 합해 39위만을 모시는 '석전(釋奠)'을 지내고 있다.

▲ 김장생의 후손들이 불천위제사를 모시고 있다. 위에 쳐진 차일은 ‘앙장’으로 천장에서 불결한 것이 제사상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
ⓒ 이철영
민간에서는 집안에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에 올리는 사당제, 계절별로 올리는 사시제(四時祭), 9월에 부모님께 행하는 녜제, 조상이 돌아가신 날 행하는 기일제, 청명·한식·중오·중양에 조상의 묘에서 지내는 묘제가 있었다.

이외에도 정식 제사가 아닌 음사(淫祀)로써 성주신, 조앙신(부엌), 측신(변소) 등에 대한 수많은 제사가 있었는데, 이는 복을 빌고 재앙을 막고자 하는 뿌리 깊은 습속으로 무당과 지역 공동체가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 와서는 조상의 기일에 지내는 기일제와 설·추석 명절에 행하는 차례, 문중에서 함께 모시는 시제 정도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급속한 사회변화로 인해 머지않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될 가능성이 큰데, 한국 예학사(禮學史)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충남 논산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집안에서는 400여 년을 이어온 유서 깊은 제사를 볼 수가 있다.

▲ 전주 향교의 대성전 내부. 중앙에 공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이철영
보통의 제사는 4대조까지를 모시다 5대를 넘어서는 묘소에서 후손들이 함께 시제로 받든다. 그러나 국가에 공훈이 있거나 학식이 뛰어난 학자는 영원토록 집안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신위를 옮기지 않는 제사'라 하여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라 한다. 이는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사와 절차는 동일하나 참가자의 범위와 제수 장만의 규모, '불천위'라는 사회적 위상이 갖는 무게로 인해 특별한 제사가 된다.

▲ 김장생의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를 모시기 위해 제주가 신주를 모셔오고 있다. (06. 9.24일 새벽 3시)
ⓒ 이철영
4대조까지의 기제사에 참가하는 이들은 8촌 이내의 친족이 되지만 불천위는 대를 이어 가게 되면서 후손들의 범위가 확장되고 학맥과 혼인관계 또한 매우 넓어져서 다른 문중까지도 참석하는 큰 행사가 된다. 명문가들은 불천위 제사를 통해 가문의 정체성과 결속을 강화하고 위세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전승시켜 왔다.

▲ 정여창을 배향한 남계서원(경남 함양군). 1552년(영종 7년) 건립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패령 때도 화를 입지 않았다.
ⓒ 이철영
중국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유교적 의례를 생활 속에서 추방했으나,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전통의 상품화 가치에 주목하면서 자신들이 과거 이 땅에 수출한 전통의례를 성균관 등에서 다시 배워가고 있다. 이 땅의 유서 깊은 문화적 자산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oil' 사보 10월 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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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기행 연재했던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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