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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뽑았다 하면 총정리나 완전정복 등 대어였다. 그 실력 아직 남아있는지 알아볼 겸 로또 한번 찍어볼까?
ⓒ 맛객 김용철
화순북면중학교 앞엔 점방이 두 개가 있었다. 학교 개구멍 사이로 가게 돌아가는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윗점방과 아래점방이다. 위쪽은 동급생 정희라네 집이라 여자애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어 되도록 그곳을 피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고구마 튀김 맛이 아랫집 후배 최운해네만 못한 게 결정적인 이유다. 더구나 아랫집 아주머니는 모든 게 깔끔하고 상냥하다. 나중에 내가 졸업하고 나자 4년 후에 들어온 여동생을 보고는 눈빛이 “거기…. 누구 오빠 동생 아닌가? 눈매가 영락없는 그 학생 같아.”라고 했을 정도로 눈썰미도 좋으신 분이다.

튀김은 얼마나 맛났던가. 윗집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솜씨에 누가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린 행여 동급생 희라에게 그 사실이 들어갈까 봐 그런 속내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청소를 끝낸 자습시간, 교실은 난장판이다. 남아서 공부 좀 하겠다던 두어 명 축에 끼어 있어야할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낮엔 선생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모범생 자체였다. 선생님이 보이지 않으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밀크 캬라멜’을 좋아했던 소년은 악동 중 악동으로 카멜레온처럼 변신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2학년 2학기가 되자마자 나이가 같던 1년 선배들은 취직이다, 상급학교 진학이다 해서 남자들은 공장이나 광주로 떠날 준비에 바빴고 여학생은 거개가 마산이나 서울로 떠날 채비를 하느라 벌써 학교를 떠난 학생이 수두룩해서 사실상 내게 접수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 살 늦게 들어간 터라 2년 선배가 떠난 뒤로 한 살 어린 검도부 선배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한번 있기는 했지만 기를 꼿꼿이 펴고 다녔다. 어찌나 같이 놀고 싸웠는지 그 때부터 지금껏 ‘1년 선배는 선배도 아니다’는 내 철칙이 몸에 배선지 간단치 않은 사이가 되고 말았다.

마침 어머니가 갑작스레 아프고 두 달이 채 안 되어 과로로 돌아가셨다. 고모할머니 손자 되는 은자는 혈육의 끈을 빌미로 오빠인 우리 집에 와서 밥을 해주며 살겠다고 하는데 뜯어말리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2km밖에 되지 않은 거리라 그냥 걸어도 되는 원리 선옥이는 내 얼굴을 보며 학교와 집을 오가려고 부러 만원버스를 타곤 했다. 막 어제 칠판에 내뒀던 국어 아침자습 문제를 풀려는데 선옥이가 마을 남자애가 내게 뭔가를 보여주었다.

“야, 요것이 뭔데?”
“얌마, 선옥이가 너 주란다.”
“가시내가…. 요딴 거는 집으로 보내도 괜찮은디 뭣할라고 학교로 보내? 얌마 그건 그렇고 나 별로 그 애 안 좋아해. 긍께 니가 다시 갖다 주던가 해라."
“안 됌마. 난 일단 니한테 줬응께 알아서 혀.”
“진짜? 글면 우리 같이 읽자.”

3학년 1반 교실에 소동이 일었다. 이미 물상시간에 “슨생님, 토끼는 한번 하면 새끼를 낳던데 사람도 마찬가지인가요?”라고 했다가 “허허 욘녀러 녀석 괜한 걸 물어보네. 나도 모른다”고 질문이 오가서 여학생 두 반에도 내가 엉뚱한 질문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한 때였다.

순진한 생각으로 좋아하는 여학생이 수두룩한 지라 별로 내키지 않은 아이가 내게 연애편지를 보냈으니 그냥 만천하에 공개해도 아무 문제가 될 일이 없다고 보고는 한참 사춘기에 여드름 투성이였던 아이들 앞에서 또박또박 읽어내려 갔다.

“규환, 그대는 나의 별! 밤마다 소녀는 꿈을 꾼답니다. 흐린 날에도 사라지지 않아요. 비가와도 당신은 언제나 내 맘 속에 있어….”

“야, 그거 뭐야. 어디서 베낀 것 아니냐.”
“야색끼들아 냅둬. 마저 읽어라. 허벌나게 재밌구만.”

“오늘 아침 널 보았어. 난, 어쩔 수가 없어. 너만 보면…….”
“이리 줘봐.”

그 때 성호가 교탁 앞에서 읽고 있던 편지를 빼앗았다. 분단과 분단 사이를 오가며 줄줄이 읽어나가고 몇몇은 서로 읽어보겠다고 또 빼앗으려 안달이다. 그 때부턴 내 것 아닌 편지가 되어 영영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걸로 상황이 종료되는 줄 알았다.

다음날 아침, 좋은 소식을 기다리던 선옥이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이틀 후엔 3학년 4반이 온종일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날벼락이 내게 전해져 한 동안 몸조심을 하며 살아야 했다.

일약 스타로 떠오른 내게 박옥희도 편지를 보내왔다. 아니 2학년 11월 어느 날 내 생일에 시골집으로 열댓 명이 몰려온 그날 앨범에 끼워져서 한 동안 간직해뒀던 기억이 있다.

꿀맛 같던 시절이 물 흐르듯 잘만 흘러간다. 후배여학생들도 선도부인데다가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인 유례가 없이 키 작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옆 마을 강례에 살던 광자는 “옵빠, 오빠, 거 있잖아 조용필이 애인이 생겼대”라며 이제 갓 사춘기에 들어선 여자애가 잘도 따른다.

“그래서?”
“근데 근데 말야.”
“그래서 누구냐고?”
“김모양이래!”
“뭐, 김모양?”
“응.”
“김모양!”
“김가루 닮았는 갑다.”
“진짜 김모양리라고 나왔다니까! 애들이 선데이서울에서 봤다던데.”
“야, 광자야 남자들은 김모씨, 박모씨라고 하지. 마찬가지로 조용필씨를 조모씨라고 하거든. 여자는 그럼 어떻게 하겠냐? 김양, 이양, 오양 하듯이 김모양이라고 하는 거야. 담부턴 정확한 이름을 모르면 오빠한테 이야기 하지 말어라.”
“아니라니까.”
“알았어. 너나 그렇게 알고 살아라.”
“아닌데….”

양다리 걸치느라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던 내게 시도 때도 없이 광자마저 야단이다. 화려한 시절은 덧없다는 걸 아는지라 수업만 끝나길 기다렸다 가방은 그대로 두고 책상 위에 책 한 권과 노트를 펼쳐놓고는 하이에나처럼 점방 순회를 나선다.

우리반에선 육남이와 윤섭이가, 2반엔 점호와 인호, 3반 해림이 춘자가 잠깐, 4반엔 정숙이, 효순이가 요지부동이지만 정작 전교 4등, 5등을 다투던 나와 성호는 자율학습을 일찌감치 접고 아이들을 주르르 달고 교문을 빠져나갔다.

벌써 윗점방은 찰대로 찼다. 안에선 약간 느끼한 기름 냄새가 가을바람을 타고 밖으로 솔솔 풍긴다. 버스가 지나가는 비포장 마당 겸 길엔 장난을 치는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즐비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머리를 푹 숙이고 모자를 꾹 눌러쓴 나였지만 이젠 그럴 필요도 없다.

내공이 쌓이다보니 가게를 가로질러 명옥이와 춘자, 영숙이가 주축인 스무 명 남짓한 여학생들이 튀김을 먹고 있는 가게 사이를 지나 순찰하듯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한 걸음이라도 아래가게 내 아지트로 빨리 가고자 함이다.

“안녕하세요?”
“응, 어서 와요.”
“11년간 총정리 누가 뽑아갔어요?”
“아니, 잔챙이들만 뽑아가고 아직 남았는가봐.”
“그럼 오늘 한번 뽑아볼까요?”
“이번에도 학생이 또 뽑아 가면 어떻게 해?”
“때가 됐응께 딱 한번만 할 게요. 자, 여깄습니다.”

100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몇 남지 않은 뽑기 판이 너덜너덜하다. 아주머니는 왼손에 작은 판대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채 썬 고구마 서너 개와 반죽을 휘휘 저어가며 두세 번 굴렸다가 팔팔 끓는 식용유에 폭 빠트린다. 고구마튀김을 서둘러 해놓아야 학생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게 되면 그날 이문을 남기니 손놀림이 바쁘면서도 나와 대화를 나눈다.

“이번만 하고 안 하겠습니다.”
“그건 알아서해.”

두리번거리다가 한 개를 찍어 종이를 떼어냈다.

“얘들아, 잘 봐봐. 내가 오늘 한 건 올린다.”
“또 되겠냐?”

기합을 넣고 입으로 “훗!” 불어 까뒤집었다.

“총정리다. 11년간 총정리!”

‘필승’과 ‘완전정복’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게 두껍고 고가여서 최고의 상품을 뽑았다. 풍선껌은 새발에 피일뿐이다. 100원 내고 만원에 가까운 걸 챙겼으니 기분이 한껏 올랐다.

“야, 오늘은 내가 쏜다. 니기덜 얼마치 먹을래? 500원어치면 되겠지?”

튀김을 시키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바삭바삭 노릇노릇 갓 구워낸 따뜻한 튀김을 자그마치 50개에 덤으로 열 개를 더 올려놓는다. 한참 클 때 시장기가 오를 오후 5시 반이라 게 눈 감추듯 고맙단 말도 없이 먹어치운다.

한 개만 들고 걸신들린 아이들을 바라만 봐도 배가 불렀다. 때마침 내 왼팔 병문이가 헐레벌떡 뛰어 내려온다.

“야야, 규환아 숨겨줘.”
“또 뭔 일 있냐?”
“고 가시내가 때릴라고 해.”
“얌마, 여자애 하나 못 해보냐? 튀김이나 먹어.”

이렇게 매번 소식이 전해졌다. 그 여학생은 다름 아닌 여걸 정해림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허튼 수작을 하는 경우 아이들을 마구 두들기는 통에 남학생들로부터 원성이 대단한 키 큰 아이다. 오죽하면 ‘여자깡패’라고까지 했겠는가. 여학생 사이에서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2년째 같은 특별반 활동으로 서로 잘 알고 있다. 여학생반에게만 가르쳐준 영어와 수학 시험문제를 내게만 살짝 청소시간에 건네주던 착한 아이인데 겉모습이 말괄량이니 이를 알아주는 아이가 흔치 않았으나 내겐 달랐다. 착한 속내를 안에 감춰둔 착한 소녀일 뿐이다. 그런 나를 아끼기도 했다.

“얌마, 다 묵었으면 해림이나 데꼬 와.”
“또 때린디야.”
“저기 면사무소쪽으로 가잖아. 그러니까 옆에 갔다가 내가 오라고 했다고 전하란 말이다.”

▲ 그 맛나던 고구마튀김 맛을 모를 정도로 내 볼은 홍시보다 붉어졌다. 그 아이도 그랬을까?
ⓒ 맛객 김용철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을 쳤다. 오늘 꼭 만나고야 말겠다고 다집했다. 고개를 내밀어보니 해림이가 소녀답지 않게 덜렁거리며 다시 내려가던 길을 돌려 올라오고 있었다.

“아줌마, 오늘 부엌 비었지요?”
“그려, 아직 들가지 않았응께. 아니면 나가라던가.”
“튀김 500원어치만 주세요.”
“부족할 것 같은디….”
“나중에 갖다 주세요.”

이 집은 보기 드문 양옥이다. 부엌 출입은 몇몇에게만 허락되었다. 깔끔하지만 전등은 오래되어 어둡기만 하다. 먼저 가서 상황을 점검했다. 텅 비어있어야 할 자리에 1학년 서넛이 앉아서 놀고 있다가 거의 굳은 자세로 선다.

“다 묵고 얼른 좀 비워라. 정리 좀 하고.”
“예.”

무소불위의 1학년 담당 선도부 형이라는 인식이 각인되었으니 오죽할까. 해림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첫 만남이 아니건만 단독 접선은 처음인지라 어색하기만 하다. 수북이 쌓인 튀김 쟁반을 가져오자 문고리를 걸었다. 한동안 침을 삼킬 수가 없었다.

“야 먹자.”
“응.”
“먹어.”

둘 다 서로 쳐다만 볼 뿐 한 개씩을 들고 주저주저하고 있다. 밖은 고요하다. 눈빛만 봐도 서로 아낀다는 건 아는데 좋아한다는 말을 못하고 숙맥이 되다니. 그 요란하고 당당하던 해림이도 내 앞에선 요조숙녀 아니, 고양이 앞 쥐 신세다.

시간은 왜 그리 긴지 참으로 화끈거려 참을 수 없었다.

“야, 식으면 맛없어야. 어서 먹자.”
“응.”
“광주여상으로 정했다며?”
“응.”

절반 이상이 남았다. 나만 가슴이 도리질치지 않았을 게다. 그 뒤로 한동안 나와 그 아이의 아지트가 되었다. 어느 하루는 한일합섬으로 가기로 한 은하를 불러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  대표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월간 <여행스케치> 11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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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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