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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주장의 제시

지금껏 논술은 지문을 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1300~2500자에 이르는 글을 쓰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통합교과 논술이 되면서 문제 유형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껏 나온 대학 모의평가 논술 문제를 살펴보면 2008학년도에 논술 문제는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지문을 요약하는 것, 둘째 두 개 이상의 지문을 대비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서술하는 것, 셋째 지문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 방안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 넷째 지문이나 글쓴이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 마지막으로 문학 작품이나 자료를 조건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문제 유형은 주어진 지문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비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논리력이다. 논리력을 갖추지 못한 비판은 근거 없는 비난이나 꼬투리나 잡는 억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논리력을 갖춰 비판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① 먼저 상대방 주장을 제시한다.
② 상대방 논거 가운데 허점이나 모순이 있는 것을 비판한다.
③ 그러므로 나의 견해가 타당함을 주장한다.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서 나의 견해와 상반되는 주장을 먼저 제시한다. 그래야 “상대방 주장 - 상대방 주장 비판 - 나의 견해가 타당함”으로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쟁점도 정확히 드러낼 수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 주장은 어떻게 제시하여야 하나?

상대방 주장은 나의 견해와 대립되는 주장에 한해서만 제시한다. 상대방 주장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의 쟁점을 드러내고 나의 주장이 타당함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상대방 주장을 일관되게 제시해야 한다. 간혹 상대방 주장을 제시하는 과정에 자신의 주장을 섞어 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논쟁의 초점을 흐릴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할 서술 방법이다.

비판은 논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주장을 제시할 때 그 주장을 비판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 주장을 논리적 공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것으로 서술했다면 이후의 반박은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상대방 주장은 반드시 내가 비판해야 할 대상임을 생각하고 상대방 주장을 서술해야 한다.

비판은 나의 견해가 타당함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므로 타당한 논거를 확보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비판은 상대방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 주장의 바탕이 되는 논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장 자체를 비판하면 논거를 제시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논점이 모호해지기 쉽다. 따라서 상대방 주장의 바탕인 논거를 비판하면,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상태에서 나의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상대방 주장은 비판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② 나의 주장과 뚜렷하게 대립되는 부분만 비판하도록 한다.
③ 비판의 대상은 상대방 주장이 아니라 상대방이 내세운 논거이다.


나의 견해는 자신감 있게 제시

상대방 주장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으면 이를 바탕으로 나의 견해를 제시하면 된다. 이미 상대방 주장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어 있으므로 타당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상대방 주장과 나의 주장에 대한 절충은 논지를 모호하게 할 수 있으므로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비판한 논거를 바탕으로 나의 견해를 자신감 있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상의 과정을 실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아래의 지문을 읽고 이 지문에 대한 비판의 글을 500자 내외로 써보시오.

실존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인간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삶을 중요시한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의의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실존주의가 비판하고 나선 그 이전의 서양 철학이 가지고 있던 특징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전까지의 서양 철학은 주로 모든 것의 본질을 추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고, 본질만이 참되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질이란 대개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의 영역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며, 그 뒤에 숨어 있는 한층 높은 차원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보았으며, 또 그것은 반드시 이론적이고 추상적이라고 받아들였다. 따라서 구체적인 일상생활과 그것과 관계된 모든 평범한 현상은 상대적으로 좀 가치가 없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해 왔다. 즉, 전통적인 철학에서는 본질이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볼 수 있는 현실은 그 본질의 윤곽만을 짐작하게 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바로 이런 본질주의적 태도에 대하여 실존주의 철학은 근본적인 비판을 가한다.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에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이 말 속에는 대부분의 실존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서양 철학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다. 즉,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고 다만 추상적으로 생각만 할 수 있는 본질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즉 실존의 세계라는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의 눈에는 소위 본질이니, 원리니 하는 것은 모두 정말 살아 있는, 전체적이요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이론적으로 추상한 것일 뿐, 삶의 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왜곡하는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실존주의의 관점은 이처럼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진리는 주체성에 있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본질보다 더 기본적이라고 간주되는 실존이란 책상이나 냇물의 실존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이고, 인간의 실존도 주체성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키에르케고르는 주장한다. 주체로서의 인간은 절대로 자유로워야 하며 어떤 외부적인 힘도, 어떤 보편적인 법칙도 실존하는 자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밖에 없도록 저주받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한편 인간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것은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무 외부의 권위나 보편적인 법칙이 자유를 제한하지 못한다면, 아무 외부적인 것이나 보편적인 것에 책임을 전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그만큼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 - 손봉호의 <실존주의란 무엇인가>(구자송 외, <언어영역 종합편> 168쪽. (즐겨찾기, 2007)에서 가져옴)


위 글의 글쓴이가 말하고 있는 실존주의는 현실, 자유, 책임이라는 세 낱말로 요약된다. 그러므로 위의 글을 비판하려면 현실, 자유, 책임을 걸고 넘어져야 한다. 위 글을 읽고 실존주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비판한 학생의 글을 살펴보자.

실존주의는 본질을 추구하는 전통 서양 철학과는 달리 실제의 삶을 강조한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존의 세계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점에서, 지금 오늘 우리의 모습은 실존주의 삶의 모습과 매우 가깝다.

하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서 삶 자체만을 중요시한 그 결과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삶에만 몰두하고, 현실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서로를 잊은 채 각박해져 간다. 인간의 실존을 다른 어떤 사물의 실존보다 중요시하는 이 태도는 인간 중심에서 자연을 바라봐 환경 문제를 일으켰다. 실제 삶만을 중요시하는 실존주의적 태도는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책임을 말하고 있지만, 그 책임을 스스로 떠 안으려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에 환경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삶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부산국제외고 3학년 김경연)


학생은 첫 도막에서 실존주의 삶의 모습 즉 상대방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실존의 세계를 중시하고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의 삶은 실존주의 삶의 모습에 가깝다고 한다.

둘째 도막에서는 실존주의 삶의 모습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현실의 삶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고 책임을 말하고 있지만 오늘의 환경 문제를 일으켰고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펴고 있다. 여기서 환경 문제를 비판하기 위한 논거로 사용하여 타당성을 확보하였다. 셋째 도막에서는 그러므로 실존주의의 삶에서 벗어나 본질에서 대해서도 생각하여야 한다는 학생의 견해를 제시하였다.

비판하기 위해 상대방 주장을 먼저 제시하였고, 상대방이 내세운 논거를 비판하면서 학생의 견해를 잘 드러내었다. 비판은 결코 어렵지 않다. 먼저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을 파악하고, 상대방이 내세운 논거에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을 찾아 비판에 다가서보자. 그러면 자기의 논리력에 스스로 놀라 논술에도 재미가 붙을 것이다.

태그:#논술, #비판, #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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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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