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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항선, 기찻길 따라 등교하다
ⓒ 최영환
바다로 가는 기찻길

임항선은, 말 그대로 착항(着港)한 선박(船舶)의 화물(貨物)을 곧 열차(列車)에 싣기 위해 항구(港口)의 부두까지 연장(延長)한 철도(鐵道) 선로(線路)를 말한다.

이은상 시인 <가고파>의 내 고향 앞 바다가 눈에 환한 마산 임항선의 역사는 왜정시대부터. 임항선의 역사는 기차변의 낡은 가옥 깊숙이 들어와 삶과 함께 호흡한다.

최영환 작가의 카메라 관점은 '골목길'에 이어 '임항선'에서, 주변인의 삶에 대한 애정의 시선이 확실해진다. '임항선'은 재작년 <바다로 가는 기찻길> 제목 하에 열린 전시회에서 작가들뿐만 아니라,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임항선과 함께 하는 마산의 사람이 된 최영환 작가. 어느새 그는 임항선처럼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파시의 물결 속을 누비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댄다. 전경린 단편소설, <바닷가의 마지막 집>이 임항선변이라면 흑백사진 속 보이는 저 어디쯤이 소설의 무대일까. 하루에 한번 기차는 파시를 가르고, 철로변 사람들은 기찻길에 너부러진 좌판을 치우는데 부산하다.

▲ 임항선
기찻길 옆 꽃가게
ⓒ 최영환
사이다 병마개 따는 파도소리 수놓는 기찻길

선로 끝 하얀 포말이 이는 곳은 바다로 통하는 기찻길, 바다는 사이다 병마개를 따는 소리를 낸다. 시퍼런 파도의 하얀 이빨들이 질근질근 씹어대는 해안의 파도 소리에 기찻길은 파도와 함께 출렁이는 수평선이 된다. 오후의 햇살 속에서 좌판시장을 열고, 노인정처럼 볕이 좋은 휴식공간을 내 주기도 하는 마음씨 좋은 푸근한 할아버지 닮은 임항선은 강아지를 키우고 해바라기 옥수수 억새풀도 키운다.

▲ 주변인의 삶속 깊이 들어 온 기찻길
ⓒ 최영환
오두막 채 지붕 위로 웃자란 옥수수 밭 사이로 밀물처럼 밀려온 달빛들. 옥수수대를 흔드는 기찻길은 적당히 잡아당기면 고무줄처럼 늘어날 것 같다. 마산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서 삶과 함께 호흡하는 바다로 통하는 임항선.

기찻길을 따라 걷다보면, 햇볕에 오래 푹 삭은 판자 집 울타리 옆, 줄장미꽃도 만발했다. 발목이 시리도록 걷다가, 이만치에서 뒤돌아보면, 두 가닥 기찻길이 바다로 풍덩 빠지는 길의 끝. 수평선 목측너머로는 한곳에 머물러 살 수 없는, 철새들이 저 북극의 하늘을 향해 일렬종대로 날아간다.

기찻길이 수평선이 되는, 波市

기찻길 변에 가득 쌀자루 보리자루를 지고 나온 할배와 할매들이 들어갈 쯤이면, 막걸리 추렴도 나누고 잔파도는 니나노 타령처럼 물결친다. 늙은 기찻길을 한없이 끌고 달리는 노새와 같이 지친 임항선은 잠시 파시 깊숙이 들어와, 나그네와 나란히 길 위에 멈추어 있다.

햇볕이 따가운 소금 한줌처럼 뿌려지는 파시,
할매 하나 한물간 오징어의 내장 속까지 스며든
먹물의 어둠을 싹싹 발라내고 있다
알맞은 크기로 토막 나서
간간이 절여지는 저물녘 파시波市,
입술을 앙다물고 고기 냄새나는
푸른 배추 잎 같은 지폐를
헤는 할매에게 노란 완장 낀
시장 조합원 사내 자릿세 달라고 손바닥 내민다.
(이봐라. 니 눈에는 이게 안보이나.
나는 아직 파장이 멀었다. 파장은
내가 파장 안내면 파장이 아닌기라.)
마지막 떠리미처럼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 속에
파시波市는 더 지느러미 푸득이고,
기차는 모세처럼 파시를 가르고 지나간다. - 자작시 '임항선, 파장' 전문

▲ 기찻길의 파시
ⓒ 최영환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초저녁
여인숙 입구에 새빨간 새알 전등
급행 열차가 쉴새 없이 지나간다.
완행도 간간이 덜컹대며 지나다가
생각난 듯 기적을 울리지만
복덕방에 앉아 졸고 있는
귀먹은 퇴직 역장은 듣지 못한다.
멀리서 화통방아 돌아가는 소리
장이 서던 때도 있었나 보다
거멓게 썩은 덧문이 닫힌 송방 앞
빗물 먹은 불빛에 맨드라미 빨갛다

늙은 개가 비실대며 빗속을 간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도 없다. - 신경림 '廢驛' 전문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하는 기차여행 공모기사


태그:#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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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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