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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병성교회에서 맞는 첫 아침은 새벽기도로 시작했다. 새벽 5시, 이른 시각이었지만 농활을 하러 온 청년들을 위하여 목사님께서 일부러 준비해주신 말씀은 잠을 깨기에 충분했다. 자연과 인간은 함께 살아가야하는 동반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셨다.

#2.

오늘의 아침 메뉴는 미역국이었다. 직접 아침을 준비한다는 것에 부담이 많았지만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세 개 조로 나누어서 밭벼, 논농사, 과수원으로 농촌체험을 하러 갔다.

장로님께서는 농활 때 경운기를 타 봐야 한다며 밭벼에 가는 일꾼들을 손수 데리러 오셨다.
 장로님께서는 농활 때 경운기를 타 봐야 한다며 밭벼에 가는 일꾼들을 손수 데리러 오셨다.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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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모자에 목장갑, 수건을 목에 두르고 경운기와 트럭으로 이동했다. 넓게 펼쳐진 푸른 논밭이 아름다웠다. 이제 곧 가을이 되면 금색으로 물들 것을 상상하니 수확자의 뿌듯함이 느껴졌다.

#3.

우리가 일손을 도운 과수원은 유기농 배를 재배하는 밭이었다. 농약을 쓰지 않아서 일반 과수농사보다 더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서 무릎까지 자란 피를 보니 막막하기도 하였지만, 달팽이나 지렁이 그밖에 많은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배나무를 보니 아버님 어머님의 정성이 느껴져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줄로 앉아서 잡초를 뽑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잡초라는 것의 가장 명확한 정의는 인간에게 필요 없는 식물인데, 배나무 옆에서 넝쿨을 치며 자라는 분홍색 나팔꽃이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자라고 있는 민들레를 뽑을 때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인간의 기준으로 식물이 유익한지 아닌지를 결정하고 솎아낸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이 또한 인간의 오만함이라 느껴졌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무구한 세월 속에서 자연은 스스로 정화하고 순환하는데, 자연에 비해서 턱없이 유한한 인간이 순리를 거스르면서까지 빠른 시간 안에 최대의 결과를 내기 위해 자연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활을 통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시는 분들의 수고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농활을 통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시는 분들의 수고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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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후에는 마을 주변을 흐르는 샛강을 따라 걸으면서 쓰레기를 주웠다. 비닐봉지라든가 플라스틱 등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사용하던 물건들이 자연 속에서는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땅에 반쯤 파묻힌 폐기물을 주울 때는 자연에 묻은 인간의 때를 벗겨내는 것처럼 후련했다.

강가에 버려진 폐기물을 모으는 순례단원들. 불과 한나절 동안 1톤 트럭 한대 분량의 쓰레기를 수거하였다.
 강가에 버려진 폐기물을 모으는 순례단원들. 불과 한나절 동안 1톤 트럭 한대 분량의 쓰레기를 수거하였다.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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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격언에 '자연은 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 후세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떠올리며 현대인들이 오히려 더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게 여겨졌다. 훼손되어 가고 있는 샛강을 보면서 후손들에게 우리가 받은 것만큼 돌려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5.

저녁을 먹고 나서는 마을주민들과 함께 국악예배를 드렸다. 서양문화와 서양가락 일색의 현 기독문화에서 벗어나 우리 가락으로 예배를 이끄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우리의 전통 음악인 사물놀이로 마을 주민 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우리의 전통 음악인 사물놀이로 마을 주민 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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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한얼패의 주도로 처음 보는 마을주민들과 손을 잡고 강강술래와 꼬리잡기를 했다. 너무나도 즐거워하시는 할머니들을 보니 오늘 하루의 노곤함이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단한 손바닥, 주름진 얼굴을 보며 평생 고단한 농사일을 해오시며 우리의 터전을 가꿔오셨을 그 분들의 자랑스러운 인생을 떠올렸다. 고목나무 껍질처럼 단단한 손을 꼭 붙잡고 함께 노래하며 오늘의 고단한 일정을 마쳤다.

국악예배를 통해 순례단과 마을 주민이 하나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국악예배를 통해 순례단과 마을 주민이 하나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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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벌써 이틀째 밤이 지나고 있었다. 서먹했던 사람들은 어느새 한 가족처럼 끈끈해졌고 도시생활에만 익숙했던 우리들이 작은 부분까지도 사람 손이 가야하는 농촌의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명상시간에는 떠오르는 사람들, 기억나는 풍경이 많았다. 이런 아름다운 생활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각자 다른 곳에 살아가던 여러 사람들이 만나서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도 참 매력적이다. 평범한 우리들이 점점 너무도 특별한 순례단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기쁜 동시에 책임감도 느껴진다. 오늘도 힘내서 아자!


태그:#한기연, #대운하 반대, #5박 6일,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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