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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 DJ와 만났던 1997년을 기억하며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납치와  투옥, 가택연금, 사형 선고 등을 당하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며 한국과 아시아의 민주발전, 인권신장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평생을  바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18일 서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과 아시아의 민주발전과 인권신장,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 걸고 '행동하는 양심'을 실사구시적으로 보여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필자는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1997년 9월 기독교 방송에서 정범구 박사의 진행으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김종필 조순씨를 하루에 한명씩 초청해 생방송으로 대선후보 토론회를 했다. 그 당시 필자는 5일 동안 시민패널로 참여해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김종필 조순씨를 상대로 대선 후보 검증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기독교 방송 정남진 PD와 윤병대 PD가 수고한 것으로 기억된다. 정동영 의원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김대중씨 대선 후보 검증 준비에 열중하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주류사회 차별의 아픔을 겪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모른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지체장애 3급 장애를 지니고 있다. 1997년 9월 기독교 방송에서 김대중 후보를 상대로 후보검증 질문을 할 때 주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했었다. 1997년 당시 한국사회와 미국사회에서 커다란 화제의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미공군사관학교 생도 성덕 바우만이었다.

미공군사관학교 생도 성덕 바우만은 두 살때 한국에서 미국 가정에 입양됐었다. 미국에서  성덕 바우만에게 골수 이식수술이나 맞는 골수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유전자의 형질이 같아야 이식이 가능한데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 것을 제공받을 때 성공률이 가장 높다. 한국에서 미국에 입양된 성덕 바우만이 인종이 다른 백인들에게서 맞는 골수를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고한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에서 성덕 바우만을 살리기 위해 한국의 친부모 찾는 운동과 한국과 미국에서 성덕 바우만과 같은 유전자 형질을 찾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필자는 백혈병에 걸린 성덕 바우만의 사례를 들면서 김대중 후보에게 사회적 약자들 문제를 질문하면서 구체적으로 미혼모와 해외입양 문제를 질문한 것으로 기억한다. 달변이었고 준비된 대통령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김대중 후보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정책을 설득력있게 답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토론회가 끝나고 김대중 후보가 패널들과 작별인사를 나눌 때 김대중 후보 측근들과 방송 스탭진, 패널들 수십명이 한데 얽힌 소란스러운 장내는 장터처럼 혼잡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는 의도(?)적으로 김대중 후보가 방송 스탭진, 시민패널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곳을 피해 좀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김대중 후보는 손수 찾아와 악수를 하며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다정다감하게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하면 장애가 있는 분들과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면서 기대해 달라고 당부하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당시 김대중 후보가 필자에게 찾아와 손수 악수를 청하고 자신의 주장을 피력한 것이  대선을 앞둔 정치인의 표를 얻기 위한 상투적인 인사치레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차원의 진솔한 약속인지 필자는 솔직히 얘기해서 그 당시 반신반의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97년 당시만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하면 민주 투사, 3김정치의 수혜자, 빨갱이 좌경 용공정치인으로 각인돼 있었다. 1997년 9월 기독교 방송 대선 후보 검증 토론회에 직접 참여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바로 옆에 두고 토론회를 해본 바에 따르면 달랐다. 토론회가 끝나고 필자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하면 장애가 있는 분들과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며 기대해 달라고 당부하는 모습에서는 빨갱이나 민주 투사의 모습도 3김정치의 수혜자의 이미지도 좌경용공정치인의 이미지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필자에게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다정다감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은 오히려 좀 유약하게 보일 정도였다. 마치 이웃집 아저씨처럼 거리감 없이 느껴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문과 방송에 의해 필자에게도 잘못 각인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대로 된 모습을 짧은 시간이지만 직접 접하면서 비로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온유하고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다정다감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과 민주 투사, 3김정치의 수혜자, 좌경용공정치인의 이미지를 전혀 찾을수 없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시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독재에 굴복하지 않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투쟁하는 민주와 인권투사로 만들었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당선한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선 후보 검증을 마치고 필자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약속했던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우리사회 약자들과 관련된 공약이 실천되는지 유권자로서 국민으로서 꼼꼼히 살펴 보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기간인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했고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를 출범시켰다. 1997년 9월 기독교 방송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됐던 대선 후보 검증 토론회를 끝내고 필자에게 직접 찾아와서 악수를  청하며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하면 장애가 있는 분들과 스스로 목소리를 낼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면서 기대해 달라고 말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과 국가인권 위원회를 출범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세계의 지도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업적 가운데 한국의 민주화를 손꼽고 있다. 1950년대 영국의 언론인이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면서 한국 민주화의  절망스러웠던 표현을 했던것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20세기와 2세기의 현대사를 움직인 세계의 걸출한 지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한 한국민주 발전에 대한 높은 평가를 비교해 본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과 반민주 반인권 반통일의 방씨 족벌 조선일보 등에 의해서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되살려 꽃피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업적은 대한민국의 민주적 국가브랜드 가치를 국제적으로 향상시키는데 기여 했다고 본다 .

필자는 그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국 민주화에 대한 기여 못지않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과 국가인권위원회를 출범시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신장을 법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길을 터놓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항상 국민들에게 말을 할 때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들 속에 비로소 스스로 목소리를 낼수 없는 우리사회의 약자들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의 대접을 받게 해준 것을 결코 과소평가 할 수 없다고 본다. 국가인권 위원회를 출범시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장례식을 국장 (國葬)으로 치르기로 결정하는데 역할을 한 이명박 대통령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집권이후 국가인권 위원회의 역할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과  국가인권 위원회의 인력이 축소되고 국가인권 위원회의 위상도 추락하고 국제적으로 한국 국가인권 위원회를 무력화 시키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중에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중함을 다시 절감할 수 있다.

1997년 9월 기독교 방송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됐던 대선 후보 검증 토론회를 끝내고 필자에게 직접 찾아와서 악수를 청하며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하면 장애가 있는 분들과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면서 기대해 달라고 말했던 것을 대통령 당선후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과 함께 했던 시대는 참으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지난 시대는 행복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지금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사회적 약자들의 짓밟힌 인권상황 개선에 법과 제도적으로 적극 나서고 있는 국가인권 위원회를 출범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행동하는 양심'이 더욱더 새로워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광장부근에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시대는 행복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여 무거운 짐 그만 내려 놓으시고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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