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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 최고의 책>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전문가와 시민기자, 누리꾼 패널들이 뽑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을 기본 자료로 삼아,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 그리고 누리꾼 투표 등을 거쳐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해 최종 결과를 5월중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서평 기사를 공모해 좋은 기사로 선정된 경우 소정의 특별원고료(사이버머니)를 지급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10년,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대략 한 달에 5권 정도는 읽었으니 600여 권 정도 될 듯하다. 얼마 전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다가 한 달에 10권의 책을 읽는다는 저자의 말에 자극을 받아 좀 더 가속을 붙인 결과, 지난 8일까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올해 스물세 번째 책으로 읽었다.

국내도서 가운데 '지난 10년 최고의 책으로 세 권을 꼽는다면?'이라는 질문을 받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책들은 최근에 읽은 책이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른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온 책들 중에서 내 삶을 흔들어 놓거나 혹은 내 삶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들의 비율은 극히 일부분이다.

오히려 대부분 무명작가들의 책이거나, 서점 가판에 누워있지 못하고 만원버스를 닮은 비좁은 책장에 한두 권씩 꽂혀있던 책들이 내 삶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 아니면 내 서재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 그런대로 읽을 만한 책들일 것이다.

지난 10년, 국내작가로 한정하고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을 세 권만 고르는 일은 고역이었다.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여전히 세상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고민 끝에 지난 10년간 나를 행복하게 했으며, 내 삶의 모티브가 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며 내 삶을 돌아보게 한 책 세 권을 선정했다.

잡초라고 불리는 것들에게 이름을 달아준 <야생초 편지>
야생초 편지 / 도솔 / 황대권 / 2002년

도솔 / 황대권 / 2002
▲ 야생초 편지 도솔 / 황대권 / 2002
ⓒ 도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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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는 잡초라고 불리던 풀들에게 제 이름을 달아주는 계기가 된 책이다. 감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그저 잡초 취급을 당하며 뽑혀나가는 야생초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낸 책으로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2000년 초반 자연에 대한 관심의 저변확대와 더불어 디지털카메라의 발전, 카페나 블로그 등의 확산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야생화에 대한 바이블처럼 인식되었다. 그 이전의 식물도감이나 꽃에 대한 전설모음집, 혹은 꽃말, 사진집, 세밀화 등 개별적으로 소개하던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책이었다.

단순히 야생초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야생초가 가진 생명력을 통해서 끊임없이 희망을 노래한 책이었다. 이후, <야생초 편지>를 닮은 책들이 많이 나왔고, 나 역시도 그의 글과 그림에 영감을 얻어 야생화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을 담는 데 많은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류의 책들은 2006년을 정점으로 해서 점차 대중들에게서 멀어져갔다. 그 이유는 출판시장의 왜곡된 현상도 있지만, 경제주의 일변도로 달려가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그 둘 사이에서 자연주의를 표방하던 출판사들도 정체성을 잃어가며 오로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데 골몰하다가 스스로 자신들의 브랜드를 훼손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출판사 중 하나가 <야생초 편지>를 출판한 도솔출판사가 아닌가 싶다.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도솔'이라는 출판사명만으로도 '자연주의 책을 내는 출판사'라는 브랜드 가치가 높았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야생초 편지>는 단순히 식물도감 형태 혹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책들과 획을 긋는 동시에 잡초라고 불리던 것들에게 이름을 달아준 소중한 책이었다.

무명의 인생을 찬미한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여자이야기>
디새집(열림원)/ 유동영, 허경민 / 2003

디새집/유동영,허경민/2003
▲ 여자이야기 디새집/유동영,허경민/2003
ⓒ 디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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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소개한 <야생초 편지>가 무명의 잡초들을 찬미한 책이라면,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사람 꽃' 중에서 무명의 인생을 찬미한 책이 있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에게 바칩니다'로 시작되는 <책 한 권으로…>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2003년도 였다. 이미 7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미 이 책에 소개된 몇몇 분은 지지리도 못난 삶을 마감하고 지금쯤 저 세상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국 혹은 극락이 있다면 그런 이들이 그곳에서 웃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이들이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없는 곳은 천국 혹은 극락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주인공들은 이렇다.

'전라도 선정마을 금산댁 할머니, 강원도 워래골 김씨 성을 가진 두 할머니, 전라도 깊은금마을에 사는 며느리 정씨와 시어머니 심씨, 강원도 안평마을에 사는 이씨 할머니, 충정도 물한마을에 사는 이씨 할머니, 경상도 구수마을에 사는 이씨 할머니.'

모진 세상, 믿기 힘들 만큼 기가 막힌 여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한풀이를 듣고 푸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건만 그 넌덜머리나는 이야기를 구수한 사투리의 묘미를 살리며 극복해갔다.

이 책을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는 이유는 무명씨들의 이야기, 무명씨 중에서도 여자, 여자 중에서도 어머니, 어머니 중에서도 할머니들의 그렁저렁 특별할 것 없는 무지렁뱅이 같은 삶 속에 진한 삶의 향기가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소중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른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속에 들어있는 맑은 이슬 같은 삶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게 해준다.

사진과 글이 어우러져 말로 다하지 못한 삶은 사진 속에, 사진이 못다한 말은 구수한 입담에 담겨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세상에 널리 알려질 기회를 갖질 못했다. 아쉬운 일이다. 언젠가는 필자도 사진과 글이 영글고 내 삶이 영글면 <책 한 권으로…>와 같은 걸작을 남기고 싶다.

가슴 저린 우리의 어머니 이야기 <엄마를 부탁해>
 창비/ 신경숙 / 2008

창비/ 신경숙/ 2008
▲ 엄마를 부탁해 창비/ 신경숙/ 2008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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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되는 <엄마를 부탁해>는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가족들은…'의 <너>는 <그>, <당신>으로 화자를 바꿔가면서 그 모두가 <나>를 되게하여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자에 대한 조금의 혼란스러움을 벗어던지자 이내 소설에 빠져들게 되었고, 하룻밤 사이에 소설의 마지막 구절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는 맺음말을 보면서 나의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부탁해>는 단지 "'효도 합시다!"라는 계도성의 소설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있는 어머니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는 점이 뛰어나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고 엄마를 생각하며 울지 않은 독자가 있을까? 이 책을 음미하면서 읽고도 울지 않았다면 둘 중의 하나, 천상의 효자이거나 독한 불효자일 것이다.

어머니를 통해서 이 땅에 왔고, 또 어머니가 될 사람들이지만 그저 어머니의 희생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 당연한 것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어머니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치매에 걸려 자식들이 살던 집 근처를 떠돌다 죽어간 어머니는 결코 이상형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러나 그 가족들에게는 어떤 이상형의 어머니보다도 소중한 어머니다. 그 '어머니'라는 상징성이 가족관계에서만의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까지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참으로 가슴 저린 이야기를 통해서 또한 '무명씨'의 삶을 본다. 지난 10년간 나를 사로잡은 것은 어쩌면 '무명씨'들의 귀환, 그러나 여전히 '무명씨'로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베스트셀러 보다 '무명씨'가 더 반갑다

사실, <오마이뉴스>에서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을 선정한다고 했을 때, 또다시 베스트 셀러의 왜곡현상이 오지 않을까 싶어 의도적으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던 책은 제외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야생초 편지>, <엄마를 부탁해>라는 두 권의 베스트셀러가 포함되고 말았다.

많은 저울질을 했지만 <야생초 편지>는 야생화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을 담고 자연에 대한 글을 쓰는 바이블의 역할을 했으며, <엄마를 부탁해>는 노년기를 살아가시는 무명씨 어머니에게 마냥 효자인 줄로만 알았던 내가 얼마나 불효자인지를 깨닫게 했다.

앞으로 나와 어머니가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식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책으로 위의 두 책을 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책 한 권으로…>는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무명씨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담아내는 시도는 이름 없는 잡초에게 이름을 얻게 한 <야생초 편지>에 버금가는 책이라고 보기에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으로 선정을 했다. 개인적으로 사진과 글, 사람됨이 어느 정도 성숙할 즈음에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의 책이다.

참으로 많은 책들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몇몇 책들은 2000년 이전에 나온 책들이라서 제외되었고, 몇몇 책들은 내용은 좋았지만 출판디자인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이 있어 제외되기도 했다. 결국 나는 '무명씨'에 관련된 책을 선택했다.

나 역시 무명씨요 무명작가이기도 하다는 점이 작용을 했을지 모른다. 지난 10년간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다섯 권의 책을 냈지만 대형서점 책꽂이에서 겨우겨우 찾아야 할 정도다. 그래서 더 '무명씨'들의 귀환을 환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위의 책들이 있어 행복했고, 아래에 소개하는 이들이 쓴 책들이 있어 행복했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지난 10년 사이 위에 소개된 책만큼의 비중을 갖고 읽었던 작가들 몇 분만 생각나는 대로 소개한다.

전우익, 이오덕, 공지영, 한비야, 이외수, 전인권(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유영초(숲에서 길을 묻다), 정혜신(삼색공감), 장정일(공부), 이윤기(그리스로마신화 시리즈), 정민(미쳐야 미친다), 신영복, 장영희, 법정 스님…. 이미 우리 곁을 떠나신 분들도 계시기에 다 감사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좋은 책을 써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

덧붙이는 글 | '10년 최고의 책' 응모



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황대권 글.그림, 도솔(2012)


태그:#야생초 편지, #여자이야기,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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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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