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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에 입학생을 모집한 한옥학교 전경. 폐교한 초등학교를 개조하여 한옥학교로 거듭났다. 설립한지 얼마되지 않아 편의시설이 부족하지만 스탭진 들의 성의와 열성으로 상쇄된다.
▲ 한옥학교 2010년 3월에 입학생을 모집한 한옥학교 전경. 폐교한 초등학교를 개조하여 한옥학교로 거듭났다. 설립한지 얼마되지 않아 편의시설이 부족하지만 스탭진 들의 성의와 열성으로 상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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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새벽 4시다. 오늘은 은퇴 후 삶의 기본이 되는 집과 가구를 내 손으로 짓고 만드는 공부를 위해 강원도 홍천에 있는 한옥학교에 입학하기로 예정된 날이다. 한옥을 짓기 위한 전문 목수과정이며 기간은 1년이다.

전문 목수로서 갖춰야 할 이론 및 실기 과정을 수료하고 각 한옥 공사현장을 운영하기 위한 4년 인턴과정을 포함하면 5년 과정이다. 시작 후 5년이 지나야 목수로서 홀로서기가 가능하단다. 그것도 건강한 육체를 지니고 한옥 공부를 위해 최선을 다 해야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어느 분야든지 최소한 5년 정도는 갈고 닦아야 가야 할 길이 보이는 모양이다.

몇 가지 입학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오르니 만감이 교차한다.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결심한 일이다. 36 년 전 ROTC 소위로 임관하고, 결혼한 지 한 달 된 23살 어린 신부를 낯선 시댁에 홀로 남겨두고 병과 교육을 위해 군에 입대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30년 연구소 생활을 내려 놓고 새내기 목수로서 도를 얻기 위해 길을 떠나 온 것이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장맛비가 내렸다. 오전 8시 20분이다. 입학식까지는 아직 1시간 40여 분 남았다. 교무실에 들러 등록 절차를 마치고 학교 마당에 내려서니 모두가 낯설고 새롭다. 

학생 수는 1기 5명과 내가 속한 2기생 16명을 포함해 총 21명이다. 나와 마을 주민인 김사장을 제외하면, 목수가 되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입학한 사람들은 2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의 청장년들이다. 생업을 위한 학습과 취미생활을 위한 학습을 비교하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겠지만, 목수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도 면을 비교한다면 쉽게 판단할 사안이 아닐 것이다.

머잖아 모든 학생들이 진정으로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될 것이다. 다행히 학교 운영진은 신이사님을 비롯하여 여자분들이 많아 부드러운 분위기다. 새로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다. 목수 학교에 입학생으로 말이다. 

'한옥이란 무었인가?'라는 주제로 입학식이 끝난 오후에 입학생을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하셨다.
▲ 대목장 신영훈 교장선생님의 특별강연 '한옥이란 무었인가?'라는 주제로 입학식이 끝난 오후에 입학생을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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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학교의 이사진들과 상견례로 입학식을 마쳤다. 오후 일정은 대목장 신영훈 교장 선생님의 '한옥이란 무엇인가?' 주제의 특별 강의로 시작됐다. 학교의 창립 이념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청과 구들을 통해 차가움과 따뜻함으로 일컬어지는 음양의 조화를 대비해 보는 시간이 되었고 대들보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역학적 응용력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됐다.

한옥의 처마 곡선이 우리 산천의 구배와 조화를 이루듯이 한옥을 지으려는 목표를 자연과 소통하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마음의 표현에 둬야 한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평소 소신과 닮아 마음속 깊이 공명돼 번졌다.

교육에 사용될 망치,끌, 톱, 연귀자, 곡자, 대패, 줄자 등 개인 연장들이 지급되었다
▲ 기본 교육을 위한 개인 연장들 교육에 사용될 망치,끌, 톱, 연귀자, 곡자, 대패, 줄자 등 개인 연장들이 지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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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강의에 이어 도편수 이광복 선생님의 본 교육이 시작됐다. 교육이라기보다는 훈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내 경험에 의하면 바탕인 실력이 버텨주지 못하면 엄격한 스승이 되기 어렵다. 본래 구도의 길에 선지식(선종에서 수행자들의 스승을 이르는 말)을 만나려면 깊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데….

선생님의 첫마디는 '자연은 다수결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 검증된 진리만이 존재할 뿐이다'였다. "무슨 독재자 같은 소리여" 속으로 반발했지만 "여러분들이 짓자고 한대로 집을 지으면 모두 무너져" 하면서 활짝 웃는 모습에 믿음과 호감이 동시에 일어난다.

목수의 연장을 분배하는 것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톱, 끌, 대패, 곡자, 자, 망치, 못주머니 등 기본적인 개인 장비를 지급하고 각 연장들의 개략적인 설명이 있었다. 첫 번째부터 2주일간은 연장 다루는 시간으로 할애되어 있는 것으로 미뤄 손에 익도록 다룰 것이다.

연장을 다루는 솜씨도 중요하지만 연장을 잡는 자세나 폼도 매우 중요하단다. 먼진 폼이 아니면 초보 인상을 영원히 못 벗어난다고 하시면서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올바른 자세가 아니면 언젠가는 한계의 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가지 못함을 경계하기 위함이리라.

"나는 도면 없어도 집을 지을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일부 목수들의 얘기는 "나는 전에 지어본 집만 지을 수 있어요, 새롭거나 복잡한 집은 지을 수 없어요" 라는 얘기와 같다면서 설계 도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만들려는 대상물을 방안지에 대충 그려보고 바로 시작했다. 간혹 방안지에 그려보는 작업도 생략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고 이를 줄이기 위해 스케치업, 오토캐드, 레빗아키택처 등의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설계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안다고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기생들의 솜씨. 한옥건축에 사용될 부재들의 이음과 결구 방법. 한옥학교가 없던시절에는 비싼 목재들이 버릴 수 있는 위험부담 때문에 목수입문 몇면이 지나도록 엄두도 못낸 공부다.
▲ 한옥부재의 이음과 결구 1기생들의 솜씨. 한옥건축에 사용될 부재들의 이음과 결구 방법. 한옥학교가 없던시절에는 비싼 목재들이 버릴 수 있는 위험부담 때문에 목수입문 몇면이 지나도록 엄두도 못낸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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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으로 만든 작업대를 보면서 한옥의 주 재료가 되는 소나무의 특성과 성질에 대한 강의가 계속됐다. 내 두 눈 중 왼쪽 눈이 주 시력인 사실도 재확인 했고 내 앞에 놓여있는 작업대가 얼마나 많은 내용을 얘기하고 있는지도 알았다.

목수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또 자연의 섭리를 볼 수 있는 안목치수의 정확도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광복 도편수의 활기한 목소리에서 후배 도편수를 양성하겠다는 긍지의 희망찬 표정이 엿보였다.

저녁 후 가진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서로 한층 가까워졌다. 내일의 공부가 기다려진다. 오전의 긴장감도 엷어지면서 지리산 시랑헌에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 집을 짓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태그:#한옥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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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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