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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30일)은 음력 시월 스무닷새로 아내의 60살 생일입니다. 아내의 환갑(還甲)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어제(28일) 아침이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니까 전날까지 푸르던 하늘이 무엇 때문에 삐쳤는지 잔뜩 찌푸리고 있더군요. 강추위를 재촉하는 비까지 내려서 몸을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주방으로 향했지요.

무쇠솥에서 밥이 끓고 있습니다. 밥은 2-3일에 한 번씩 하는데요. 겨울에는 뜨거워지는 솥뚜껑이 난로 역할을 해줍니다.
 무쇠솥에서 밥이 끓고 있습니다. 밥은 2-3일에 한 번씩 하는데요. 겨울에는 뜨거워지는 솥뚜껑이 난로 역할을 해줍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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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밥은 제가 하는 일이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돼지고기와 두부를 꺼내 김치찌개를 끓이고, 전날 담가놓았던 잡곡과 쌀을 씻어서 밥을 안쳤습니다.  

밥이랑 찌개랑 끓이는데 한 시간 남짓 걸립니다. 밥을 무쇠솥에 해먹기 때문입니다. 밥을 몇 차례 태워 먹었던 경험이 있어서 쌀을 씻을 때부터 뜸을 들일 때까지 주방을 뜨지 않는 게 철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밥 해먹는 일은 고역이지요. 하지만, 보람도 느낍니다. 뜸을 잘 들이면 아내가 밥도 맛있고, 누룽지도 맛있고, 숭늉도 맛있다며 좋아하거든요.

사소한 말실수로 아내와 대화 끊기다

얘기는 두 달 전으로 돌아갑니다. 서울에서 딸이 내려와 저녁 외식을 하고 형님댁에 들렀던 지난 9월30일 생각지 않은 사건이 터졌습니다. 남자가 좁쌀처럼 좀스럽고 쪼잔하다고 하겠지만, 사건 현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날 해두었던 메모와 포도 사진을 올립니다.

형님댁에 가면서 가져간 포도, 포도를 먹기 전 형수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좋았습니다.
 형님댁에 가면서 가져간 포도, 포도를 먹기 전 형수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좋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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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0일: 오랜만에 내려온 안나(딸)와 함께 '궁전'에 가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식대는 '안나 엄마'(아내)가 지출. 오는 길에 형님댁에 들렀다. 포도(8000원)와 감(5000원)을 사가지고 갔다. 과일값은 안나가 지출. 형수가 포도를 씻어 내오면서 함께 먹자니까 소파에 앉아 있던 '안나 엄마'가 그냥 내려오는 바람에 방석이 따라 내려왔다. 해서 게으르다며 퉁을 놓았더니 "조씨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라고 해서 화가 났다. 형님은 물론, 형제들과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무시당하는 발언이어서 참을 수가 없다···.

이튿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출근을 했고, 제가 말이 없으니까, 딸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손으로 어깨를 살포시 누르며 "엄마가 크게 잘못한 게 아니니까, 아빠가 참으셔요···"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딸에게 "너도 결혼하면 남편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라고 당부하면서 심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내의 말실수가 원인제공을 했는데요. 큰소리치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 후로 대화가 단절되었습니다. 실언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했으면 허허 웃고 그냥 지나갔을 터인데, 사과를 안 하더라고요. 해서 생활비를 받는 저로서는 그동안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 방식 바꾸기 첫째는 아내에게 '밥 안 차려주기'였습니다. 밥은 하되, 배고프면 각자 알아서 먹자는 것이었지요. 함께 있다가도 끼니때가 되면 혼자 주방으로 가서 밥을 차려 먹었습니다. 둘째는 '아내 승용차 이용하지 않기'였는데,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불편해도 참고 지냈지요. 아내도 그동안 편했을 겁니다.

셋째는 '생활비 안 받기'였습니다. 생활비 속에는 제 용돈이 포함되어 있어서 받으면 아내의 밥을 차려주어야 했으니까요. 대신 그날그날 필요한 금액만 타서 쓰겠다며 11월 생활비도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막무가내로 제 서랍에 넣어놓더군요. 그러나 지금까지 보관만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퇴근하고 오더니 "혼자 먹으니까 미안하네!"라면서 단감을 두 개 주더군요. 하지만, 먹지 않았습니다. 먹기 싫어서였지요. <오마이뉴스> 10주년 기념 제주산행은 언제 출발하느냐고 묻기에 알아서 다녀올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른 때는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었거든요.

평소보다 늦게 들어오거나, 쉬는 날 말없이 나갔다가 들어와도, 장모님이 계시는 부산에 간다고 해도 묻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외지에 나갔다가 심야버스로 새벽에 도착해도 택시를 이용했으니까요. 그러니 대화가 단절될 수밖에요. 교도소 담벼락처럼 높고 답답한 부부관계는 가을 내내 이어졌습니다.

대화의 돌파구를 찾다

작년 봄 병원 뒷산에서 캐온 냉이를 다듬는 아내. 대화가 끊기니까 지난 일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스쳐 가더군요. 그래서 부부인 모양입니다.
 작년 봄 병원 뒷산에서 캐온 냉이를 다듬는 아내. 대화가 끊기니까 지난 일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스쳐 가더군요. 그래서 부부인 모양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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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의 말문은 달포가 지나도록 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부산에 사는 장모(84)님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꿈에 뵈었습니다. 살아 계실 때처럼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었는데요. 흉몽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때가 때여서인지, 뭔가를 계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별스런 생각이 다 들더군요.

며칠을 망설이다 장모님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더니 반가워하면서 "언제 부산에 한번 안 올랑가?"라고 묻더군요. 외로우셨던 모양인데요. 순간 전율을 느꼈습니다. "예, 곧 한번 찾아뵐게요"하고 끊었지만, 지금도 귓전을 맴돕니다. 와달라는 의미로 묻는 일은 처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 생일이 하루씩 다가오니까 더욱 혼란스럽더군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그래도 환갑인데 이대로 지나갈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음을 정하니까, 홀가분해지더군요. '대화가 끊기면 함께 외식을 안 하니까 생활비가 절약되는 장점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최후 결론은 지난 두 달 동안 있었던 일들은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누구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 대한민국 역사나 가문의 역사가 바로 잡히는 것도 아니고, 국격이 상승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미지근한 부부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느닷없이 "어이, 우리 이제 대화 시작허세!"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니, 대화의 돌파구는 먹는 것에서 찾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해서 아내가 쉬는 일요일(28일) 아침에 김치찌개를 끓여주려고 돼지고기 한 근과 두부 한 모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뒀던 것입니다. 아내는 제가 끓인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아내 생일 앞두고 '김치찌개' 선물하다

아내의 60회 생일선물 ‘김치찌개’, 선물을 하면서 두 달 전의 실언을 사과하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60회 생일선물 ‘김치찌개’, 선물을 하면서 두 달 전의 실언을 사과하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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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개를 끓이고, 밥을 뜸들이면서도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할지 고민되었습니다. 아내나 저나 고집이 세고 자존심만 강했지, 멋도 없고, 애교도 없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대사가 떠오르지 않아 평소대로 하기로 마음먹고 방문을 열었습니다.    

"어이, 밥 먹어!"
"·····."

말이 퉁명스러우니까 시큰둥했는지,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아내는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면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들었으면서도 하도 오랜만이고 뜻밖이어서 못 들은 척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 또 한 번 다그쳤습니다.

"김치찌개랑 밥이랑 퍼 놔서 다 식는디, 지금 머허고 있는 거여, 밥 먹으라니까. 그냥 나 혼자 먹으까?"
"자기가 김치찌개를 끓였다고요? 야~ 그럼 맛있게 먹어야지. 어쩐지 아까부터 좋은 냄새가 나드라. 밥은 또 언제 했데, 갈치속젓이랑 배춧속에 싸먹으면 맛있겠다···."

아내는 식탁 앞으로 바짝 다가앉더니, 반찬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어디에서 났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는 짓이 꼭 어린애 같더군요. 설명을 해주었더니 그러느냐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배추쌈에 싸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거의 먹어갈 즈음 가슴에 담고 있던 말을 했지요.

"자기 생일이 30일인데 그날이 근무드만, 그려서 엊그제 돼지고기랑 두부랑 사다 놓았다가 오늘 아침에 끓인 거니까, 생일 선물로 알고 맛있게 먹으라고···." 
"·····."

아내는 생일에는 관심 없다는 듯 먹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다 먹고 나서는 "야,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빈 그릇들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손을 닦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후식으로 배를 깎아 내오면서 물이 많아 시원하니까 먹어보라고 권하더군요.

수저를 놓기 무섭게 방으로 들어가 버리던 예전과 달리 밥상도 치워주려고 하고, 설거지도 하는 등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일단 말문은 스마트하게 트이기 시작했는데요. 두 달이 되어가니까 아내도 대화에 목이 말라 있었는지 모릅니다.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아내가 후식으로 내온 과일. 대화 단절 2개월은, 너무 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후식으로 내온 과일. 대화 단절 2개월은, 너무 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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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 응모 기사입니다.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내 , #생일선물,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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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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