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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다섯 번째, 이번엔 광주·전남·전북입니다. [편집자말]
"나, 이번 휴가에 광주가면 충장로랑 무등산 갈 거거든? 무슨 일 있어도 이번엔 충장로 구석구석 다 돌아보고 무등산 서석대도 올라가고 우리 시골에도 갈 거야. 꼭!"

서울 사는 동생은 매번 휴가 때가 되면 한 달 전부터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휴가 일정을 통보해 온다. 그런데 동생이 계획했던 대로 휴가를 알차게 보내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대신 휴가 내내 잠만 자다가 간다. 광주에 가면 기필코 충장로, 금남로, 무등산, 모교, 고향마을까지 차분히 다녀보겠다던 빡빡한 일정은 막상 오고 나면 피곤에 절어 내리 잠만 자느라고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외식을 하러 잠깐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동생이 광주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며칠 동안 계속해서 먹고 자는 것뿐이다.

그럴 거면 뭐 하러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느냐, 그냥 서울에서 푹 쉬지, 하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객지 생활에 지친 동생 처지를 생각해서 참는다.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자주 토로하는 동생에게는 광주가 그저 와서 잠만 자다 가는 곳일지라도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는 포근한 휴식처일 것이다.

"충장로 많이 바뀌었어? 무등산 중봉에는 아직도 갈대가 무성하지? 모교 캠퍼스도 한번 걸어보고 싶은데!"

"지금은 예전 충장로가 아니야. 무등산도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북새통이고 밑에 상가들이 번잡해서 별로 정이 안 가. 그리고 전남대학교는 우리 집 바로 옆이잖아. 난 날마다 산책 가는데 거기도 일 년 내내 공사 중이더라. 넌 광주에 대한 환상이 과해. 여기도 사람 사는 것은 다 같아. 먹고 살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다투고 속이고 그런 모습 말이야. 고향은 마냥 화목하기만 하고 만날 손에 손 잡고 강강수월래나 할 것 같니? 나름 각박하단다."

"설마, 서울하고 광주가 같아? 서울 생활이 얼마나 삭막한데. 고향에서 사는 복 받은 사람들은 그 외로움 절대 모르지. 아! 빨리 휴가 날짜 돼서 광주 가고 싶어. 고향 사투리도 그립고."

전라도 사람의 극성스런 기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영화 거룩한계보 한 장면.
 영화 거룩한계보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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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생도 옛날 광주에서 살 때는 전라도 사람들의 극성스런 기질과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 등이 부담스럽다고 푸념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오랜 객지생활의 외로움은 그녀로 하여금 고향의 모든 것을 미화하고 그리워하게끔 변화시켜 놓았다. 투박한 고향의 사투리마저도.

광주 모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말바우 아짐'이라는 짧은 시사촌평 코너가 있다. 지역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말바우 시장을 배경으로 노점상인의 입을 빌어 세태를 꼬집는 설정이다. '말마우 아짐'에는 어릴 적 시골에서 무시로 듣고 살았던 진한 사투리가 그대로 재연된다. 여성 진행자의 촌철살인의 촌평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더불어 강력한 효과를 발한다. '말바우 아짐'에서처럼 전라도 사투리가 제 진가를 발휘하는 예도 드물 것이다.

사실 조폭영화나 일부 드라마에서는 전라도 사투리를 필요 이상으로 희화화 하고 왜곡하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조폭영화의 공용어로 전락해버린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자괴감이 지역민들에게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왜 조폭영화에는 꼭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할까. <목포는 항구다>부터 <가문의 위기>시리즈,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까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뭔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사실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가 조폭을 많이 배출했다'는데 일정 부분 동의하기도 한다.

"우리 전라도가 조폭들을 많이 양산한 것은 사실이잖아?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었으니까 뭐. 쪽팔릴 때도 많아. 객지에서 사업하다 보니 어떨 때는 본적을 숨긴 적도 있어. 외지인들 전라도 사람 보는 시선이 장난 아니거든."

아는 사람이 얼마 전 지역감정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는 타관 사람들의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그로 인한 우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본적지까지 숨긴 적이 있다고 했다. 외지인들이 꺼리는 전라도 사람들의 특징, 이를테면 끼리끼리 뭉치기 좋아하고 남의 일에 간섭이 심하고 행동이 과격하고···.

그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사업상 외부인들과 많이 접촉해야 하는 그는 호남에 대한 부당한 편견이 무척 힘들다고 했다.

"지나치게 예민한 거 아니에요? 요즘은 계층 간, 세대 간, 집단 간 갈등이 심화되는 추세이고 지역감정은 상대적으로 많이 완화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아니에요?"

"객지에 나가봐. 내가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 안 다닌 곳이 없는데 아직도 이쪽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 무시 못해."

"글쎄요. 제 동생도 세월이 갈수록 타향살이가 외롭다고는 해요. 그렇지만 특별하게 호남 출신이라는 편견 때문에 불편하다,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 애한테서는."

"그래. 내 스스로 피해의식 같은 것도 있을 수 있겠지. 초반에 워낙 많이 듣던 말들이 전라도 깡패 그런 말들이었으니까."

"저야 뭐 광주에서, 우호적인 환경에 사는 사람이라 그런데 무감각한지 모르죠. 객지에서 살다보면  불편한 점도 있겠네요."   

전라도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유쾌하지는 않다!

영화포스터.
 영화포스터.
ⓒ 백상시네마 영상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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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깡패, 사투리. 외지 사람들이 전라도 하면 흔히 연상된다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보니 유쾌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전라도는, 전라도 사람들은 어떤 것일까. 현대사에 가장 전라도적인 인물로 '무등산 타잔 박흥숙'이라는 청년이 떠오른다. 내 느낌에 그는 가장 '전라도적인' 인물이고 그의 삶 또한 가장 '전라도식'이었던 것 같다. 그의 삶은 전라도적으로 진정 아름다웠으나 그의 죽음은 전라도적으로 무척 비극적이었다.

무등산 자락에 가난한 이들의 행복한 공동체를 꿈꾸던 청년이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의 학벌로 사법고시를 준비할 만큼 총명했고 전통무예와 온갖 재주에도 두루 능했다고 한다. 그는 주변 거지들을 비롯한 빈민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들에게 틈틈이 글을 가르치고 가난한 형편에도 가진 것을 베풀었으며 그 과정에 홀로 터득한 민간 의술을 펼치는 등, 그의 삶은 거의 전라도적으로 완벽했다. 그는 그들과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꿨다.

그런데 그의 임시 거주지가 무허가 판자촌이었다. 그곳을 철거하기 위한 당국의 압력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들이닥친 구청 철거반원들은 집들을 마구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에 격분한 박흥숙은 이성을 잃고 무려 네 명의 단속반원들을 한꺼번에 처치해 버렸다. 착하고 성실했던 한 젊은이가 흉악한 살인자로 변한 것은 순간이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거부하지 않으며 대하 또한 한 방울의 물도 거부하지 않는다. 세상에 돈 많고 부유한 사람만 이 나라 국민이고 죄 없이 가난한 사람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1978년, 사형언도를 받은 무등산 타잔 박흥숙이 남긴 최후 진술의 일부이다. 그 유명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태를 박흥숙은 앞서 질타했던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세상에 대한 애정을, 몰입을 멈추지 못한다. 누구에게든지 무엇에든지 지극한 경지를 추구한다. 타인들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관심. 지나친 애정. 적극적이고 과격한 행동. 전라도 여자들의 음식솜씨가 빼어난 것도 그런 기질이 표출된 것이다.

무슨 일을 해도 적극적인 전라도 여자들의 극성스런 기질은 음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전라도 어머니들의 요리에 임하는 정성은 가히 신앙적이다. 한 사람 한사람이 보유한 음식에 대한 원천기술과 그에 따른 경험은 무형문화재 수준이라도 감히 말할 수 있다.

의협심 강하고 정 많은 전라도 사람들. 그런 그들에게 역사에서 되돌아온 것은 지독한 상처와 고통뿐이었다. 나는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의 강한 의협심과 특출한 정의감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끔은 위태롭게 느껴진다.



태그:#전라도 , #사투리, #박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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