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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웬 통일이야기?

30년 전 엄마 자궁 속을 힘차게 박차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안착한 나는 88올림픽과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과 함께 자랐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대한민국'을 가장 많이 외쳐본 나에게 통일이란 아주 생소한 비현실적인 단어였다. 역사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역사는 만들어지지만 역사를 현실과 이분법적으로 볼 뿐 역사속에서 미래를 그려보는 통찰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를 역사로 되짚어 본 적 또한 없다.

그저 학생시절에는 국, 영, 수에서 모자란 내신 점수 올려주는 하나의 암기과목으로 치부했었고 심지어 취업시에도 합격하기 위해 주요 사건을 요령있게 달달 외울 뿐, 단 한번도 내 선조의 일이였다고,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이야기라고 가슴으로 느껴본 적 없다.

드라마에서는 감정이입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랑에 빠진 주인공을 보면 두근반 세근반 가슴이 설레어 잠을 못이루고 주인공의 죽음 앞에서는 그렇게도 눈물이 펑펑 나더건만, 정작 조용히 목숨 바쳐 싸운 독립투사 덕에 이 나라에서 편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서는 왜 단 한번도 울어본 적 없는가? 왜 그렇게 무감각하고 관심이 없었는지 서른을 넘긴 지금에서야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하며 스님과 함께 역사를 마주하려 한다.

1000년 전, 고주몽이 처음 나라를 세운 졸본성에 오른다. 그리고서는 고구려의 독창적인 무덤 양식과 벽화들을 상상한다.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삼은 배달나라의 건국 세력들은 환인의 후예로서 청동거울, 청동검, 청동방울의 선진문명의 선두에 서서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건국이념을 세웠다. 남미의 토착세력은 스페인 사람들의 선진문명에 휘둘렸으며, 미국의 인디언들은 새로운 문명에 강압당하여 그들만의 문명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1000년 전 우리 고구려인들은 마치 그 토착민들의 서러운 심정을 이해라도 한 듯 결혼 동맹을 통해 평화스러운 환단시대를 맞이한다. 결혼동맹이라.. 실제로 토착민과 사랑에 빠졌을까? 라는 소설같은 러브스토리도 상상하게 만든다. 노력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없다는 인생의 기본적 원리를 수긍하면서도 고조선은 아무 수고로움 없이 그저 시간이 흘러 부여가 되고 고구려로 이어진 줄 알았다.

토착세력을 정벌의 대상이 아닌 포용의 대상으로 본 건설적인 마인드와 관대함이 고조선을 만든 씨앗이였음을 천년이 훌쩍 지난 2012년에서야 알아차렸다. 그리고서는 요하 상류 지역과 대릉하 유역의 홍산 문영을 다시 보게 되었다. 황화문명보다 1000년이 앞선 7000년전 것으로 고구려의 독특한 무덤양식, 인종, 어족구분만으로도 우리가 변방의 역사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방계열과 남방계열의 치열한 땅다툼의 긴 역사를 몰랐기에 현재 중국 땅이니 당연히 옛날에도 중국의 땅이라 생각하였다.

법륜스님은 남의 것도 빼앗아 제 것 만들려고 하는 세상에 제 것도 지키지 못하고 남주는 사람을 보살 중에 보살인 상보살이라 지칭하였는데, 아마도 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닌지 뜨끔해졌다. 후손들의 역사 의식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과거 자발적인 사대로 인하여 고기들이 소실되어 역사 규명이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를 알고나니 지금 숨 쉬고 있는 짧은 이 찰나도 후손들에게는 의미있는 역사가 될 수 있음을 느끼며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거란의 소손녕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위협했지만, 역사적인 의식으로 무장한 배짱 두둑한 서희는 강동 6주를 굳건히 지켜낸다. 개인의 의식 하나로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나라의 성곽에 대해서는 모르면서 중국의 만리장성 앞에서는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영어가 국어보다 우선시 되는 시대 흐름에 국사를 왜곡없이 바라보는 것은 참 어려운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당연합이 승리하면서 신라가 삼국 통일을 했지만 외세 세력을 이용한 대동강 이남의 한계가 있는 통일이였다'는 삼국통일의 한계는 국사시험의 단골 문장이였기에 별표를 쳐가며 달달 외웠었다.

비록 고구려까지 아우르는 역사적 사명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당시 정세를 정확히 읽었던 신라의 해안과 당나라 군대를 쫓아냈던 자주성에 대해서는 칭찬할만한데도 전혀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신라를 질책했던 것이다. 가야의 침공에도 흔들리는 가냘픈 신라였지만, 가야의 귀족뿐만 아니라 정신 문화인 불교까지 받아들이는 통합의 리더쉽을 발휘하였기에 말기에 후백제, 후고구려로 분열될 때에도 후가야로는 분열되지 않은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때에도 신라와 합의통일을 이룬 것과는 달리 후백제와는 끈질긴 전쟁을 통하여 무력통일을 하였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영호남의 지방의 지역감정으로 자리 잡았고, 무력통일은 언젠가는 또다른 갈등의 모습으로 재현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사실 인터넷,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술이 발달해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는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화두도 '소통'인 것을 보면 통합의 리더쉽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새삼 깨우치게 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주권까지 빼앗긴 조선의 국민들도 홍경래의 난을 시작으로 통합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론과 조직이 겸비되지 않아 통합은커녕 분노로만 끝이 난다. 동학 농민혁명과 외세 전쟁의 틈바구니속에서 결국 우리는 1910년 한일합병을 맞이한다. 나라 잃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흩어져있던 독립운동가들이 상해임시정부를 만들었지만 1년만에 진압되고, 봉오동 전투로 승전보를 올린 승리의 기운도 잠시 흑하사변으로 또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러시아의 반봉건, 반외세의 사회주의가 등장하면서 민족 학교들이 세워졌고, 김일성부대가 보천보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면서 사회주의 계열의 무장독립운동가들은 국민에게 큰 감동과 지지가 되어주었다. 아니러니하게도 해방이후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하게 되고, 그 동안 고생했던 독립운동가 대신 미 군정의 정책에 협조를 잘하는 친일파들이 대거 등용되면서 독립운동세력들은 졸지에 빨갱이, 좌파라 불리며 기득권층의 희생양이 되었다.

근대사를 접하면서 사회주의계열 독립 운동사를 왜 축소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니 우리의 손으로 쓴 역사도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쓰여질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국사는 항상 중립적이며 사실만을 기초해서 쓰여진다는 그 동안의 믿음에 파문이 인다. 시대를 읽지 못하면 화를 입게 된다는 스님의 말씀에 공감을 하며 내부적으로는 통합력을 모우고 외부적으로는 시대의 변화를 잘 살피는 역량의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그렇다면 내부 통합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스님은 우선 내부 통합을 위해서는 조선말기 삼도민란부터 동학농민운동, 의병활동, 3․1운동. 6․25전쟁, 4․19혁명, 5․16 군사쿠테타로 쌓인 민중의 깊은 한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소시민들의 삶을 포용하고 이해가 선행되어야지 갑자기 너무 큰 부담을 주면 대중은 쉽게 변화하지 않으므로 차근차근 자주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북한을 바라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오래전 핵 개발로 세계 경제에서 봉쇄를 당하고, 과도한 군사비로 경제가 피폐해질때로 피폐해졌지만 중국과의 전면적인 결합을 할 수도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랜 비사회주의 정책 고수로 서민들의 식량난과 인권보호가 심각한 수준이라는데도 참고 사는 북한 주민들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북한 주민의 대부분이 조선왕조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사회주의 체재로 바로 넘어왔기 때문에 민주화를 경험한 적이 없고, 강력한 정치구조와 이념 교육 때문에 대체적으로 순응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월남한 사람만 2만3천여명이라고 하니 이는 북한 내부 주민 내에서도 의식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반증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눈높이 교육'이 제시된다. 구조가 못마땅하긴해도 그들을 상대하려면 현실적으로 실체를 인정하여야하며, 저항이라는 것도 민중의 수준에 맞아야 두려움 없이 실천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자생적으로 터지기에는 많은 희생을 따르게 되니 우리가 외부적인 영향을 주어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사실 초기 북한 정권은 남한 정권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더 안정되어 있어 7․4남북공동성명때만해도 통일에 더 적극적이였다고 한다. 6․25 전쟁이 끝난 후, 민주화와 경제성장까지 이룬 노태우 정권은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2000.6.15 공동선언과 남북 간 경제협력을 시작하면서 통일의 기운을 싹트웠다. 하지만, 고구려 연개소문의 멸망과정처럼 지배집단의 내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역량 부족으로 인하여 햇볕정책은 구름정책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저비용으로 안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으로 핵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핵방지와 핵폐기를 통한 국가연합을 꿈구며 다시 한번 역량을 모아보자고 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과거 철천지원 수였으나 미래를 보고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만들어 잘 살고 있듯이 우리도 감정을 뛰어 넘는 노력을 할 때 남북이 하나되고 동북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다. 북한과 통일은 하면 영토는 2배가 되고, 인구는 1.5배로 늘어난다. 북한의 개성, 신의주, 금강산, 나진 특구가 개발되어 한․중․일 경제 공동체 세계 10위권 안으로 도약하는 꿈도 꿔볼수 있다.

얼마 후면 런던올림픽이다. 아마도 하나되는 마음은 올림픽과 통일이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시너지 효과로 등수가 팍팍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통일된 국가로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출전하는 것 자체가 감동의 도가니이다. 월드컵에서나 '대한민국'을 외처 본 내 세대에게 통일은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갈 큰 기상을 심어주는 역사적인 변환점이며, 이산가족에게는 꿈과 생시를 동시에 선사하는 생애 최고의 선물이다.

통일로 우리는 1960년대 한강의 기적을 다시 한 번 그릴 수 있는 새로운 도화지를 얻었다. 그 동안의 상처를 암시하듯 북한의 벌거벗은 민둥산에 나무와 희망을 심는다. 북한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 자체가 남한 사회의 침체된 내수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국방비로 사용되는 많은 예산을 사회복지와 교육사업에 투자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남북한 간 이질적인 문화를 수용하며 사는 삶 자체가 우리 후손들에게는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기에 우리 자손들이 세계의 주역이 될 것이란 믿음도 생긴다.

대신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 국민들의 합의, 양극화 해결법 등 통일의 길로 가기위해 많은 일들이 산재되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정권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투표 잘 하자고 스님은 당부한다. 정권 교체기 주변의 정세를 읽지 못해 화를 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미국과 중국의 세력교체기인 1,000년만의 기회를 잘 포착해보자고 말이다.

그래서 일단은 우리 사회부터 민주화되고 불평등 구조가 없는 사회를 일구기 위한 작은 노력으로 '수행'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수행을 하면 늘 깨어 있을 수 있어 남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시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한다. 평화적으로 통일을 일군 그 날, 지금 팔순이신 할머니와 손을 잡고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금강산을 거닐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통일이 된 후 토착세력을 흡수했던 우리 선조들의 모범답안을 떠올리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 그리고 스님이 북한 유치원 선생님을 칭찬하셨는데 결혼해서 낳은 내 자식들은 꼭 북한 유치원에 보내어 재롱잔치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졌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지금도 아등바등 살아가는데 귀찮게 통일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통일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크게 다가와 모른체 하고 싶었다. <새로운 100년>을 한 장 한 장 읽어 가면서 우리 자식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미래 비전적인 시각에서 통일을 처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항상 근시안적으로 눈앞에 작은 이익에만 얽매여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내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사실 통일을 논하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라 생각은 못했었는데 말이다. 말이 안되는 것은 꿈도 꾸지 않는 지극한 현실주의자이지만, 2013년 이제는 나도 꿈꿔보려 한다.

통일된 조국의 자손들이 옛 우리 조상들이 누볐던 발해지역을 기차게 누비며 다닐 호연지기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새로운 100년 이벤트 참여



태그:#새로운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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