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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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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님, 성님 고생하는 거 알멍도 나 잠수해부런(안 나타나) 미안해 미쳐지쿠다(미치겠어요)."
"경헌 말 곧지 말라(그런 말 하지 마라). 느 사정을 우리가 몰람시냐."
"성님들 싸우고 잽혀가고 허는 그 자리에 내가 이서사 허는디 성님 진짜 잘못했수다."
"이모님 돌아가시고 너 혼자 고통받는 거 알멍도 찾아가지 못 했져. 나도 미안허다."
"성님, 미안허우다, 진짜 잘못했수다."

문상을 온 삼촌들 사이에는 윤구 삼촌도 계셨다. 뜻밖이었다. 윤구 삼촌 어멍은 우리 할머니 사촌 동생이다. 삼촌 어멍은 물질 잘 하시던 상군잠녀(일등 해녀)였다. 해군기지 찬성하면 큰돈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강정바다를 판 물질계원 중 한 분이다. 전 마을이장님이 해녀들만 몰래 불러서 "강정에 해군기지 짓는 것 찬성"이라고 결정한 건 잘못된 일이었다. 

바다를 물질계원들이 마음대로 팔 수 있나? 나는 이해가 안 간다. 마을 투표 유권자가 1050명이나 되는데, 겨우 87명이 모의해 결정한 것은 말도 안 된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 학교 어린이회 회장이 그렇게 하면 누구나 그 결정은 무효라고 할 것이다. 우리 마을에는 '향약'이 있다. 200년 넘게 지켜온 마을 법률이다. 이 향약에도 어긋나는데 나라에서는 왜 옳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윤구 삼촌은 몇 년 동안 마을 사람들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2학년 때 한 번 윤구 삼촌을 본 적이 있긴 하다. 해군이 마을 사람들 밭을 빼앗은 일 때문에 의례회관에서 마을 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진섭이랑 윤이랑 나는 회관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그때 윤구 삼촌이 창고 뒤에서 의례회관 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가는 걸 봤다. 오늘도 윤구 삼촌은 아빠 손을 붙들고 자꾸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전에 윤구 삼촌도 불쌍하다고 하신 적이 있다.

"윤구 삼촌은 스쿠버다이버라났져. 일허당 허리 다치지 안 했시민 그 이모님도 찬성헐 사름 아니라. 아들헌티 먹고살 길 마련해주젠 경했주게(그랬지). 에휴~ 그때 바당을 안 팔았시민 우리 밭도 빼앗기지 안 허는 건디."

우리 스스로 평화가 되는 길

아빠는 삼촌들에게 윤구 삼촌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삼촌들은 이내 축구시합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추석에 벌일 마을 잔치 이야기였다. 우리 마을 청년들은 옛날부터 운동을 잘 했다. 옆 식탁에 계시던 유정이 할아버지께서는 오래전 이야기를 해주셨다. 

"전에는 멩질 때 법환, 월평, 강정 청년들 싹 모아 씨름시합을 했주. 내가 이만할 때 시합을 보레 가민 우리 강정 청년들이 언제나 휩쓸었어. 이겼다허면 아주 환호성을 지르고 손가마를 태왕 다니고 구경은 큰 구경이었주게. 4·3 후에는 뭐 우리가 이길 수가 어섯주(없었지). 그 일등 청년들 4·3 때 다 죽어부난(죽었어)."
"삼촌, 이번에는 축구를 헐 거우다. 찬성, 반대 관계없이 어떻게든 다 모영 헐 참이우다. 어르신들께서도 하영 도와줍서양."
"게매(그럼). 우리가 그동안 평화 공부 많이 했시난 스스로 평화 쪽으로 가보게. 바당 팔아버린 사람들 따문에 피해가 막심했주만. 메께라(아뿔싸)… 윤구야, 경 허댄 헌 말이여이(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응?). 사실 그때 우리가 뭘 알아시냐. 강정에 기지 들어오면 무슨 궂은 일이 생기는지도 몰랐주게. 처음에 우리가 화난 것은 윤 이장이 마을 사람들 몰래 도지사영 해군이영 모의한 것 때문이었주. 찬성한 사람들도 그때는 마찬가지라. 몰랑 당헌 거라게."
"우리가 순진허게 살지 않아수꽈 삼촌. 정부나 도나 경찰을 다 우리 편으로 믿어서마심. 우리 토지 떼어 만든 농로를 도유지로 바꿔서 농사짓는 땅 뺏는 데 협조하는 도지사인 줄 어떵(어떻게) 알아시쿠과. 판사 검사도 몬딱 범죄자 다스리는 좋은 사람들로만 알았주게. 억울한 사람들 사정 외면하고 권력자 편들기 한다는 거를 어떵 알겠수꽈."

유정이 할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는 마을 일이라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참석하신다. 우리 할아버지는 성산에서 강정으로 장가들어 오셨고, 유정이 할아버지는 대대로 강정에 사셨던 분이다. 이제는 '동지'가 되셨다고 하신다. 국이 삼촌이 윤구 삼촌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맞수다. 정부하고 해군이 6년 동안 평화 공부 하영 시켜줬수다양. 윤구야, 나는 어릴 때 놀던 구럼비가 얼마나 좋은 덴지를 빼앗기고야 알았져. 우리 마을이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제주도 전체를 안전하게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친구도 똑같다. 어릴 때 초심으로 가야 돼. 한 골목에서 외면하고 사는 게 진짜 마음 괴롭고 병나는 일이주게."

국이 삼촌은 큰형님과 처가가 몬딱 찬성 측이다. 큰형님은 해군기지 일꾼들이 밥을 먹는 식당을 하는 분이다. 그분은 국이 삼촌이 반대 측에 섰다고 식게도 벌초도 오지 못하게 했다.

국이 삼촌은 물질계원인 가시어멍(장모)이 찬성 측에 선 것까지는 꾹 참았다. 그런데 처남이 기지 공사장 중장비 기사로 일하게 됐을 때 싸움이 났다. 딴 현장보다 임금을 두 배로 쳐주니까 함께 일하자는 말에 삼촌이 "그 돈 받앙 잘 먹고 잘 삽서!" 소리 쳤다고 영실 이모가 우리 엄마에게 말했다. 영실 이모는 국이 삼촌 부인이다.

마을잔치가 있을 때마다 춤을 잘 추시는 진섭이 아빠가 윤구 삼촌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윤구야, 우리가 한 골목에 태어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인디 외면하고 산 지 6년이라게. 우리 어멍 육지로 물질 가멍 너네 어멍이 나 밥 주고 벤또(도시락/일본말) 싸주고 안 핸? 너 어멍 돌아가실 때 동균이 성님 편에 부조만 보내는데, 나가 그 심정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 말도 못 전하고 사니 나 가슴 터져불젠(터져버리려) 헐 때가 여러 번이라."   

항상 하회탈처럼 웃는 진섭이 아빠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셨다. 윤구 삼촌은 또 고개를 숙이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병철아, 미안하다. 진짜 방법이 없었주. 오천만 원 준다는 말에 나 어멍이 생각이 없어져분 거. 내가 불효자라. 어멍 말리지도 못 핸. 내가 20년간 다이버 허멍 봤던 이쁜 바다에 케이슨이 들어오고 흙탕물 퍼지는 거 보민 미쳐불 것 같고이…. 혼자 멧부리 강(가서) 냇깍을 보민 전에 고추룩(전같이) 은어가 많이 올라오지도 않고이…. 흑."

성규 삼촌이 추석 축구시합으로 말을 돌리길 다행이었다. 혜선 쌤도 표정이 우울해서 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삼촌들이랑 평화지킴이 형들이 축구 시합 이야기를 시작하자 혜선 쌤이 나에게 손짓을 했다. 쌤과 함께 장례식장 마당으로 나왔다.

산딸나무 빨강 열매 다섯 개

"좀 있으면 유정이랑 성우, 윤재, 진섭이, 다 올 거야. 태권도 끝나고 민호 삼촌이 데리고 온대."
"진짜요? 짜식들, 안 와도 되는데."
"네가 어른들만 계시는 곳에서 너무 힘들까봐 오는 거렌."
"힘들거나 심심하진 않수다. 생각할 게 많아요."
"하하, 생각할 게 많아? 무슨 생각을 했는데?"
"다 말해줄 수는 없고예, 우리 가족들에 대해 생각했수다. 쌤, 그런데 추석에 축구하민 찬성 측 삼촌들이 올까요?"  
"응, 올 것 같은데? 삼촌들이 전화도 하고 만나자고 약속도 했덴. 마을회장님께서도 '해군기지 들어오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가족끼리, 친구끼리 우애가 깨진 것'이라고 하셨어. 그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야."
"쌤, 저는 국이 삼촌 큰성님이 싫어요. 아빠랑 비닐하우스 가는 길에 만났는데 우리랑 지킴이 삼촌이모들을 나쁘게 말한단마심. 뭍에서 온 사람들 빨갱이들인데 속없이 어울리면 되냐고마씸. 빨갱이가 나쁜 것이면 주민들 속이고 해군기지 짓는 사람이나 툭하면 마을 사람들 잡아가는 그 사람들이 빨갱이 아니꽈?"
"빨갱이? 글쎄 난 푸른색이 더 좋은데 하하. 어, 상규야 내가 너 줄 거 있다."

쌤이 주머니에서 빨간 열매를 다섯 개 꺼내주었다. 겉이 오톨도톨하고 빨갛게 익은 큰 구슬만 한 열매였다. 

"이거 뭐꽈? 먹는 거꽈?"
"몰라? 이거 산딸나무 열매야. 산길로 오는데 하도 예뻐서 삼촌들한테 자동차 멈추자 하고 제일 빨간 놈으로 따온 거야. 예쁘지?"
"산딸나무에 이런 열매가 열림미꽈? 난 꽃만 피는 줄 알았주게. "
"니가 빨갱이 말 안 했으면 잊을 뻔했다 하하. 빨갱이라는 말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지?"

장두가 어떤 사람이냐 하면 

혜선 쌤은 무엇이든 밝고 좋은 쪽으로 만드는 요술쟁이다. 나는 마음이 확 펴졌다. 환해진 마음으로 물었다.

"쌤, 우리 외가도 4·3 피해자인 거 이번에 알았수다. 학교에서 '송아지'라는 영화 보여줘서 4·3이 왜 생겼는지는 알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사람을 죽였는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 일이 어서시민(없었으면) 우리 외할머니나 위미 하르방도 행복하게 살았을 거마심."
"상규가 생각을 깊이 했구나. 쌤도 4·3을 처음 알았을 때 참 놀랐어. 4·3 평화공원에 가서 돌아가신 분들 위패를 보니 어린 아기들도 너무 많고. 마음이 정말 아팠지. 그분들 억울함을 나도 알려주고 싶었어. 그래서 제주에 자주 오다가 강정마을을 알게 된 거야."
"쌤, 우리 제주 사람들은 가족이 죽었는데 다 입을 다물었대요. 말하면 더 불리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바보 같아요. 힘이 약한 사람이 비겁하게 굴면 맨날 당하게 돼 이서마씸. 무단히 죄 어슨 사름덜(죄 없는 사람들) 죽이는 거나, 해군기지 때미 마을을 몬딱 뒤집어 놓는 거이 비슷한 것 같아요."
"하하 옛날에 태어났으면 상규는 장두가 되었겠다."
"장두마심? 장두가 장군이꽈?"
"비슷한 거. 옛날 사람들은 관리들이 심하게 억압하고 수탈하면 민란을 일으켰어. 육지나 제주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제주는 육지와 다른 게 있어. 그게 뭐냐면, 민란 책임자가 장두 한 사람이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장두가 될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이 허락해야 민란을 일으키고 아님 포기했다고 해."
"장두면 최고 우두머리 되는 거 아니꽈?"
"그렇지. 장두가 정해지면 사람들은 젤 좋은 옷, 음식을 대접하고 장두의 말에 복종했어. 그 사람이 양반이건 상민이건 관계없이 말이야. 준비가 끝나면 제주 관아에 쳐들어가 관군들과 싸우기도 했나봐. 그렇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이내 진압이 됐지."
"진압되면 다 잡혀갔어요?"
"아니, 우선 제주 목사는, 한양에 민란 소식과 백성들의 요구사항을 알리고 '어찌 할까요?' 하고 물어. 그러면 왕은 멀리 한양에서 교지를 내리는 거야."
"뭐라고요?"
"한양과 제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과인이 너희들 어려운 형편을 미처 몰랐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결해줄 테니 그만 생업으로 돌아가도록 하라고."
"그거이 끝이꽈?"
"아니지. 민란을 일으킨 건 분명 반역 행위거든. 누군가 벌을 받아야 돼. 그래야 다른 백성들이 무서워서 난을 못 일으키고 왕도 체면이 설 거 아냐. 그때 장두가 민란 책임을 혼자 지고 사형을 당하는 거지. 장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는 사람이야."

난 완전히 감동했다. 장두는 멋진 사나이였구나.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있게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빤히 알면서 어떻게 장두가 되겠다고 할까. 내가 혼자 감동하고 있을 때 혜선 쌤이 벌떡 일어섰다.

"상규야, 애들 온다."


태그:#축구, #씨름, #스쿠버다이버, #자전거,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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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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