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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보는 책들과 괘 뽑는 도구
▲ 남편의 책과 괘 뽑는 도구 남편이 보는 책들과 괘 뽑는 도구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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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궁합 본다고 당신 생년월시 알아오래."
"그럼 생일만 알려드려. 우리 부모님이 내가 태어난 시간을 기억 못 한다고 하고."

결혼 전, 궁합을 보겠다고 하신 시아버지에게 태어난 시간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마 아버님은 우리 부모님을 보고 자식 태어난 시간도 모르는 참 이상한 사돈이네 하셨을 것이다. 나 역시 우리 아버지에게 신랑의 태어난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다.

사실 궁합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그깟 궁합 때문에 결혼을 물릴 수 없지 않은가? 궁합, 사주 이런 것은 미신이고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대라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남편이 변했다. 얼마 전,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아이들 결혼할 때 궁합 볼 거야?"
"그럼 꼭 봐야지."

자기 결혼할 때는 부모님이 궁합 보는 걸 그리 막아놓고선 자식들 궁합은 보겠단다. 무슨 심보람.

"그럼 나쁘게 나오면 결혼 반대할 거야?"

이 질문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반대하는 게 아니라 만에 하나라도 흉이 있으면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거지."

궁합·사주 중하게 생각하는 남편, 결혼 전에 알았더라면...

허~ 참, 사람이 어찌 이리 변할 수 있을까? 만일 결혼 전에 남편이 이런 생각을 했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과 결혼했을 리가 없다. 아무렴 그렇게 이성적인 것을 좋아하고, 의심이 많은 내가 궁합이나 사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랑 결혼했을 확률은 정말 빵 퍼센트이다. 빵 퍼센트.

남편의 이런 변화는 처음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됐다. 이삼 년 전인가 남편은 십수 년의 직장생활 중에 안식월을 얻었다. 남편은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책을 읽었다. 그동안 책 못 읽은 것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처음엔 독서법에 관한 책을 읽더니 나중엔 동양 고전에 관련된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역경, 사기열전, 손자병법, 공자와 세계 등을 읽으며 남편이 달라졌다. 전과 달리 내공이 느껴졌다. 일단 어떤 주장을 하던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근거가 더 풍부해졌다. 남편은 현재의 문제를 논함에 있어 과거 춘추전국시대의 일들을 예로 들며 주장을 폈다.

그렇게 변화된 모습으로 남편은 안식월을 끝내고 회사에 다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 주역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그러면서 남편은 '괘'라는 것을 뽑았다. '괘'는 일이 어찌 될 것인지를 하늘에 묻는 것이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활기찬 모습이 좋아서 말리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새해 운을 뽑아주기도 하고 또 지난 대선 때에는 누가 대통령이 될지 그 여부를 묻는 괘를 뽑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편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정확하게 맞추었다. 당선 여부를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각 후보자가 놓인 상황을 정확하게 맞힌 것이었다.

남편이 봐 온 사주, 50세에 빛을 발한단다

그리고 작년 12월, 남편은 친한 분의 소개로 유명한 주역 학자를 만나러 지방에 내려갔다. 우리 부부의 사주를 보겠다며 내 생년월시까지 알아서 갔다. 새벽녘에 돌아온 남편은 기분이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그 선생님 진짜 대단하시더라고. 선생님이 당신한테 작가 사주가 있다는 거야."
"작가 사주?"
"응. 그러면서 또 뭐라고 하셨냐하면 당신한테 그림 그리는 재주도 있다고 하셨어."

취미로 그림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남편이 들려준 선생님의 말씀은 글을 쓰는 데 집중하는 게 좋다는 거였다. 그리고 내 사주는 45세부터 발전하기 시작해서 50대에 빛을 발한다고 했다. 여자 중에 중년에 잘 되는 이런 운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는데 특별한 운이라 했다.

남편이 봐 온 내 사주는 좋았다. 남편은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하면서 즐거워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주역학자로서 여러 권의 책을 내신 분이었다. 그뿐 아니라 역학 분야에서는 꽤 많이 팔린 책의 저자이기도 했다. 남편은 요즘도 종종 그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기도 하면서 주역 공부에 대한 자극을 받는다.

영업을 하는 남편은 자신이 배운 것을 활용해서 거래처 사람들에게 의뢰받은 작은 일들을 괘를 뽑아 주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남편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아마 거래처 사람들 괘 뽑아 주면서 영업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거야."
"내가 잘 맞춘다고 얼마나 고마워하는데."

남편은 엄청 자랑을 한다. 거래처의 젊은 직원들은 우리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좀 걱정스럽다.

사실 주말에 열심히 괘를 뽑고 있는 남편을 보면 순간적으로 저 사람이 내 남편 맞나? 내가 어쩌다가 저런 사람과 살고 있나 어색할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남편이 공부하는 주역을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 남편과 여전히 논쟁 중이다.

"주역은 제왕학이야. 옛날에는 아무나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었다고. 중국의 복희씨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이치를 살펴 만든 게 8괘고 나중에 주 문왕이 이를 발전시켜 64괘를 만든 거야. 공자가 여기에 해설을 붙였는데 그게 십익전. 그리고 역경과 십익전을 합쳐 주역이라고 하는 거야. 공자는 역경을 하도 많이 읽어서 죽간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해. 제갈량이나 율곡 그리고 이순신 모두 뛰어난 역학자였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윷점을 쳐서 전투에 임했다고 하잖아."

귀에 딱지가 앉게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다. 반신반의로 나도 <난중일기>를 찾아 읽었다. <난중일기>를 보니 이순신 장군이 괘를 뽑은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주역은 정말 대단한 학문이라니까."
"그래 이순신 장군이 괘 뽑은 것은 알겠어. 그래도 운이 좋다고 해서 놀아도 되는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같은 시간에 태어났다고 운명이 같아? 그건 또 말이 안 되잖아."
"그거야 그런 운을 타고났지만 개인이 노력하는 여하에 따라서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우리 부부는 이렇게 돌고 도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뭐 사실 역사적 인물들이 얼마나 주역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거는 내 사주가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내 운명에 대해서 잔뜩 기대하는 이 상황이 나에게도 나쁘지 않다는 거다.

피그말리온 효과랄까. 기대하는 대로 일이 풀리는 것, 남편의 기대대로 내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물론 내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지금도 남편은 나를 '작가님'이라 종종 부른다. 좋은 책을 써서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 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진짜 내 인생이 남편의 바람대로 풀릴지 내 노력이 내 운과 만날 수 있을지 지켜보고 도전해 볼 작정이다.


태그:#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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