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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은 방치됐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달 28일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와의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정몽준 후보가 노들섬 재개발을 언급한 이후 부동산 및 개발업자들의 시선이 노들섬으로 모아졌다. '일부 시민들만 누리는 호사' '개발 의지 꺾인 방치 된 땅' 등 다양한 비난들도 함께 쏟아졌다.

 "개발이 돼야 경기가 살아난다"  "은퇴한 노인들이나 가는 여가 공간 아니냐. 도시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개발돼야한다"

용산 재개발 지구 공인중개업체 4곳을 찾아 노들섬 재개발에 대한 생각을 묻자 나온 대답들이다. '개발'이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나왔다. "거기 땅값이 얼만데..."라며 돈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텃밭으로 '놀리고' 있는 노들섬에 '아시아의 횃불'이라는 이름의 관람차를 건설하고,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그 근거는 '소수 시민만을 위한 공간이자 방치된 채 멈춰 있는 땅이기 때문'으로 요약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사실 확인을 위해 지난달 30일과 31일, 문제의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 302-146번지, 노들섬을 찾았다.

"쓰레기로 보물을 만드는 노들섬"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여기 와 보신 적 있으시냐고..."

지난 5월 30일 금요일, 연차를 내고 남편과 함께 노들 텃밭을 찾았다는 송은아(40)씨는 올해 처음 노들섬에서 농사를 시작한 초보 도시 농부다. 대형 건물을 위주로 건축 설계 일을 하고 있다는 송은아씨는 "큰 개발을 시도하기 전에는 공간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해야하는데, 노들섬의 경우엔 입지여부와 교통을 따져봤을 때 그렇게 큰 개발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관광객을 초점으로 한 개발보단 서울에서 살고 있는 시민, 앞으로 살아갈 세대들을 위해 고민해야할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농사시작한 초보 도시농부 커플
▲ "관광객 아닌 시민위한 공간으로 지속됐으면 좋겠어요" 올해부터 농사시작한 초보 도시농부 커플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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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입구 한편에선 텃밭 수업을 나온 고등학생들이 저마다의 도시락을 부수고 있었다. 테이블 중간 중간 직접 기른 잎채소들을 싱그럽게 담아냈다.

"가지, 감자, 땅콩, 완두, 강낭콩, 수수, 토마토, 치커리" 

어떤 작물을 기르고 있냐는 질문에 우물거리던 밥을 마저 삼키고 야무지게 하나 하나 짚어낸다.

"각자 오줌을 모아서 거름으로 뿌려 주기도하고, 계란이랑 식초 섞어서 칼슘액 비료도 만든다". 

17살의 입에서 농사꾼의 단어들이 튀어 나온다. 아이들이 농사 담임으로 소개한 대안학교 로드스콜라의 텃밭 교사는 "노들섬에선 쓰레기로 보물을 만드는 걸 배우고 있다. '농사를 짓는다'라기 보단 도시에서 생태적인 삶을 스스로 살아내는 걸 배운다"고 소개했다.

직접 기른 상추로 점심한끼 뚝딱!
▲ 농사를 마치고 새참 먹는 텃밭수업 참가 학생들 직접 기른 상추로 점심한끼 뚝딱!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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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공간 아닌 시민 위한 공간 돼야"

정치적 논쟁 때문에 노들섬이 주목받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공무원 출신 아무개(62)씨는 "정치적인 건 모른다. 그냥 농사짓고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서 나온다"며 "선거철이라 갑자기 관심이 많아졌는데, 사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그런 이익관계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 노들텃밭 관리팀에서 일을 시작한 김은주(30)씨는 노들섬을 단순히 소수 시민들이 누리는 여가로 치부하는 시선이 속상하다고 했다. "무작위로 추첨하기 때문에 연령은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들이랑 놀러오는 가족도 많고, 도시에서 새로운 삶 살고자 오는 제 또래 청년들도 많다"

노들텃밭에선  선생님이 따로 없다
▲ "서너개 씩 심어야돼" 농사 대선배에게 배우는 모내기 노들텃밭에선 선생님이 따로 없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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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씨는 또 "정몽준 후보가 여당 후보 중에선 제일 먼저 방문했다. 의외로 사람들이 많으니까 시민들한테 인사하면서 본인이 울산에 있을 때부터 '도시텃밭 원조'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기자회견에선 다른 방향으로 말하더라"고 전했다.

덧붙여 "개발이라는 단어 속에는 기본적으로 농사를 무시하는 듯한 말이 깔려있는 것 같다"며 "도시 농업은 세계적으로 1차 산업부터 3차 산업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추세고, 시민들의 관심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고작 텃밭이 아니라,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실험하고 도전 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들섬은 취업 대신 '도시농업'을 택한 20대 청년 도시농부들의 실험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올해부터 노들섬에서 경작을 시작했다는 씨앗들 협동조합의 황윤지(여.29) 조합장은 "노들섬이 소수의 단체나 개인에 점거돼 평등하지 못하다는 말도 있다. 직접 와서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며 "노들섬을 찾는 연령들을 보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세대도 다양하다. 최근엔 경작에 참여하는 청년단체들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도시농업으로 창출한 일자리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 민생경제과 양수은 주무관은 "작년보다 일자리 창출 목표수가 늘었다. 현재 678개로, 다양한 일자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사 경험이 있는 40-50대 주부들이 직접 텃밭강사로 나서기도 하고, 서울시 도시농부학교에서 일정기간 교육을 이수한 청년들이 자치구마다 파견돼 공동체 텃밭을 돕기도 한다.

스펙일변도 사회, 이익만 추구하는 답답한 도시생활. 대안찾아 도시농업 시작한 젊은이들
▲ 노들섬에서 도시농업 실험하는 청년 협동조합 <씨앗들> 스펙일변도 사회, 이익만 추구하는 답답한 도시생활. 대안찾아 도시농업 시작한 젊은이들
ⓒ 씨앗들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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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은 방치 된 적 없다...개발 일변도 도시정책에 대안 제시하는 상징 공간

지난달 31일, 노들섬에선 손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섬을 찾은 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얼굴이 햇볕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엄마 장화 좀 벗겨줘." 

방금 논에서 나온 아이가 뒤뚱뒤뚱 반쯤 벗겨진 장화를 끌고 엄마를 찾는다. 흰 티셔츠 위에 흙물이 멋스럽게 튀었다. "이리 내봐" 곁에 있던 할아버지가 아이의 장화를 능숙하게 벗겨준다.

"우리 48년생 최고참 어르신 건배제의 하시죠!"
"뭔 건배야, 모두 수고 많았다. 짠!"
"모 많이 심었어? 장하다"
"아들, 너도 물로 건배해. 마실 자격있어"

예닐곱 단위의 가족들이 천막 아래로 마치 명절처럼 와글와글 모여든다. "원래 알던 분이세요?" 하고 묻자 손녀를 데리고 왔다는 할아버지는 "아니. 그게 뭐 중요한가. 같이 일하고 마시고 노는 게 중요한 거지"라고 답했다.

공동체 경작하며 나눔문화 배우는 아이들
▲ 가족단위 시민들이 참여한 노들섬 손모내기 공동체 경작하며 나눔문화 배우는 아이들
ⓒ 한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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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시민 프로그램 <논에서 논데이> 모내기에 참가한 가족들
▲ 빠지지 않게 조심! 노들섬 시민 프로그램 <논에서 논데이> 모내기에 참가한 가족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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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서 모내기하는 아이들
▲ 언니 손 꼭 잡아! 도심 한복판에서 모내기하는 아이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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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끝났어요?" 멀리서 아이 둘을 안은 아버지가 논으로 다가오며 외쳤다. "아뇨! 새참 먹고 또 시작할거에요" 식탁 위엔 텃밭에서 직접 기른 치커리와 상추로 대강 버무린 샐러드, 두부 서너 모, 작년에 텃밭 배추로 담은 김장김치가 차례로 올랐다. "일도 안했는데 먹어도 되려나" 방금 도착한 가족이 쭈뼛거리자 곁에선 텃밭 관리자가 "먹고 일하면 되지!"하고 손을 이끈다.

네 가족이서 주말 소풍 겸 모내기에 참여했다는 조수정(40)씨는 두 아이를 둔 주부다. 그녀는 노들섬의 변화가 놀랍다고 했다. "테니스장만 덩그러니 있던 예전 노들섬은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던 곳이었다. 텃밭이 생기고 나서도 별 관심은 없었는데, 지인 가족이 참여한다기에 집도 가깝고 해서 시작했다"며 "아이들이 먼저 신기해한다. 구멍 숭숭 뚫린 잎채소와 벌레 먹은 방울토마토가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더 좋은 채소'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노들섬 개발론에 대한 의견을 묻자 "글쎄, 오페라하우스는 일단 정말 아닌 것 같고. 이런 공간이 더 많아져서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놀이시설이나 유락시설이 들어와서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조언했다.

도시재생 전문가들, '아시아의 횃불' 관람차 공약에 한숨

"개발론자들에겐 기본적으로 생태적 시각이 결여돼 있다. 세빛둥둥섬이나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도시농업을 한국에 처음 도입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들섬에 대한 개발론자들의 시각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김성훈 전 장관은 "생명에 대한 관심은 사람을 위한 배려와 나눔을 깨닫게 한다. 도심텃밭은 새로운 나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상징적 공간" 이라며 "돈과 이윤만 추구하는 도시정책은 본말을 뒤집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지난 8월부터 약 8개월간 '노들섬 활용 포럼'을 열어왔다.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한 개방형 포럼이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공공개발센터 김종우 주무관은 "노들섬 활용 방안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지만, 시민들이 함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 전문가들, "방치된 땅 아닌 도시재생 실험하는 상징공간으로 봐야"
▲ 노들텃밭 지도 도시 재생 전문가들, "방치된 땅 아닌 도시재생 실험하는 상징공간으로 봐야"
ⓒ 노들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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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들섬, #텃밭, #공약, #개발, #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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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j@ohmynews.com 정치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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