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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tvN <미생>은 뜨겁다. 시청자들은 신입사원 '장그래'와 워커홀릭 '오 과장'이 자신의 모습과 똑같다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공감의 힘은 그만큼 대단하다. 웹툰 <미생>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잘 구현해 낼 수 있을까, 혹은 원작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은 잠시뿐이었다. 드라마는 이야기에 충실했고, 캐릭터를 보여주는 과정에서는 원작을 뛰어넘는 연출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미생>은 바둑 이야기가 아니다. 시청자 중에도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바둑을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바둑을 알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미생'이라는 제목 자체를 바둑에서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큰 기둥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둑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위로받았다는 회사원 이동철 대리(33). 자존심과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지만 <미생>은 인정한다는 바둑 기사 프로 9단 박정상 사범(30). 그리고 일반 시청자 후배 K(29)가 이야기하는 드라마 <미생>의 매력은 무엇일까? 닮은 듯,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들이 공통으로 칭찬하는 것은 바로 '공감'이다.

<미생>의 가장 강력한 힘은 '공감'과 '위로'

대중의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드라마 <미생>
 대중의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드라마 <미생>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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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턴 장그래는 한 마디로 호구였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신입사원은 매일같이 이리저리 치이기 바쁘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이라는 타이틀 달랑 하나인 장그래의 하루일과는 직장 상사에게 혼나고, 동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박정상 사범 "바둑은 프로 입단이 정말 중요해요.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도 한해 수백 명을 뽑는데, 바둑 프로는 많아야 10명? 저는 1993년에 한국기원 연구생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종일 바둑만 두는 거죠. 입단만 하면 모든 게 바뀔 줄 알았는데 또 엄청난 경쟁이었습니다."

반상 위의 돌부처로 잘 알려진 이창호도 단번에 통과하지 못한 것이 프로 입단 대회다. 그나마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프로 데뷔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장그래처럼 입단 대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언젠가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물론 프로 입단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대회 우승을 차지한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다. 그만큼 어렵다.

이동철 대리 "스펙이란 게 있잖아요. 대학 타이틀, 토익 점수, 자격증, 외국어 활용 능력.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입사했는데,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갑죠. 신입 때는 어리바리해서 선배들한테 혼나고, 익숙해질 만하면 고과점수다 승진이다 또 눈치 봐야 하고."

제대로 뭐 하나 가르쳐 주지도 않고 화만 내는 상사와 고졸 출신이라며 대놓고 무시하는 동료들 속에서 장그래는 외롭다. 그래도 싸워야 하고, 살아남아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칼이 있다 (바둑계에서는 숨겨진 실력, 또는 비장의 무기를 뜻한다). 상사가 무시하고 동료들이 견제해도 나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는 반드시 온다. 분명한 건 기회도 준비하고 있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상 사범 "대국에서 지면 한국기원이 있는 왕십리에서 3시간 걸리는 집까지 걸어갔어요. 큰 대회에서 우승하면 바둑으로 슬플 일이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지는 건 싫더라고요. 반상 위에서는 그렇게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박정상은 프로 9단으로, 바둑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7월, 도쿄 일본기원에서 벌어진 제19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중국의 강호 저우허양 9단을 물리쳤다. 그 대회에서 3위와 4위를 기록한 선수는, 그동안 박정상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았던 최철한과 이세돌이었다.

이동철 대리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잘해서 좋은 성과를 올리거나, 높은 수익의 계약을 따냈을 때는 정말 짜릿해요. '나 이런 사람이다.'하고 보여주는 것 같고. 그런 기회가 자주 오지는 않습니다. 올 때 꽉 잡아야죠."

장그래는 '잘'하지 못했지만 '열심히'했다. 나중엔 열심히 하다 보면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힘들고, 서러워도 장그래는 웃으면서 책상 앞에 앉는다. 그의 곁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마음 따뜻한 오 과장과 김 대리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인 가족도. 차가운 세상 속, 장그래가 웃었듯, 우리에게도 분명한 동기부여는 있다.

박정상 사범 "입단대회와 대국을 앞두고 있으면 정말 예민해요.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돌아오면 온 가족이 내 눈치를 보죠. 여동생은 저 때문에 TV시청이 금지였어요. 부담 가질까 봐 아무런 말씀 안하는 부모님, 연애 시절 제대로 데이트 한 번 못했던 아내가 제 원동력입니다. 미생은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줬어요."

이창호 사범과 대국 중인 프로 9단 박정상 사범
 이창호 사범과 대국 중인 프로 9단 박정상 사범
ⓒ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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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철 대리 "사람한테 받은 상처도, 결국 사람으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거잖아요. 상사에게 혼나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팀원들이 있고, 비슷한 고민을 갖고 회사 생활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할 만한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다들 미생, 미생 하나 봐요."

미생이 완전히 죽은 돌인 사석(死石)과 다른 점은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바둑은 내 돌로 집을 만들어 상대방의 돌을 감싸 누가 더 많이 따내는가의 싸움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바둑은 내 집을 만들어서 얼마만큼 견고하게 잘 지켜내느냐의 싸움에 더 가깝다. 아직은 미생이지만,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사활을 걸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장그래와 우리는 완생을 꿈꾼다.

드라마 <미생>에 대한 인터뷰를 위해 후배 K를 만났다. 그에게는 인터뷰라는 사실을 감추고,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는 핑계로 불러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듣는 이야기가 더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인터뷰는 상대방에게 충분히 기획의도를 설명한다.)

후배 K는 몇 년째 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지만, 학교 타이틀이 매번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 같았다. 밝은 얼굴로 열심히 해보겠다는 녀석도 준비 기간이 길어지자 지친 모습이었다. 격려한답시고 괜히 나까지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드라마 <미생>에 대한 그의 반응을 듣고 싶어, 무심한 듯 이야기를 던졌다.

"요즘 <미생>이 재밌더라. 봤어?"

후배 K는 대답이 없다. 나의 이야기를 못 들은 건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었다.

"<미생>이 대세긴 한가 봐. 다들 자기가 장그래야. 웃기지?"

그는 그제야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대답했다.

"<미생> 장그래요? 부럽데요. 전 아직 바둑판도 못 샀는데..."

후배 K의 짧은 대답. 나는 더이상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미생>을 재밌게 봤는지,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인지, 주인공들에게 공감했는지. 준비했던 수많은 질문이 무의미해졌다. 자신은 아직 바둑판도 못 샀다고 이야기한 그는 상사에게 혼나고, 동료에게 놀림 받는 신입사원 장그래의 삶조차 부러웠던 것이다.

그렇다. 드라마 <미생>을 보고 백번 공감하는 직장인만큼, 그들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조금씩 쌓일수록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이 많아진다.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결국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선택도 물론 본인의 몫이다.

"꿈을 좇아!"라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멋진 거 아니야?"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사회는 결코 자신이 계획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도전해볼 만 한 가치는 분명히 있다. 결국, 난 후배 K에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조언을 하고 말았다.

"그래, 기운 내자!"

후배 K에게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결국 나에게 하는 말이었고,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hstyle84)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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