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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구매하기]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선생님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이 공동 저자로 나서서 <두 어른>이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책 수익금은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을 잘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데 보탭니다. 사전 구매하실 분은 기사 하단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1년 두 어른은 부산역으로 향하는 1차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난 2011년 두 어른은 부산역으로 향하는 1차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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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합니다. 저는 수십 년간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을 동원해왔습니다. 촛불집회,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인권센터 만드는 모금 등…저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두 어른에게 전화로 부탁을 드립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해왔기에 두 분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러니 동원할 방법도 너무 잘 아는 거죠. 아마도 두 어른의 몸이 이 지경에 되는 데는 못난 후배의 이런 무수한 동원이 한 몫 했습니다. 이런데도 두 어른은 부탁을 드리면 무조건 응하십니다.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다

2000년 매향리 주민들과 미군폭격장폐쇄운동을 벌였던 문정현 신부
 2000년 매향리 주민들과 미군폭격장폐쇄운동을 벌였던 문정현 신부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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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뜨겁다. 백 선생님의 웅변은 듣는 이의 가슴에 활활 불을 지핀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뜨겁다. 백 선생님의 웅변은 듣는 이의 가슴에 활활 불을 지핀다.
ⓒ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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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른의 몸은 특별합니다.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내신 분들입니다. 백기완 선생님은 독재정권에 수십 차례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은 불의에 맞서다 수년 간 경찰과 용역들에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두 어른의 몸을 들여다보면, 그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밤이면 온몸이 욱신욱신 쑤시는 통증을 어금니 꽉 깨물며, 수십 년간 홀로 삭이셨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두 어른은 약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약봉지를 주렁주렁 달고 사십니다.

두 어른은 뜨겁습니다. 모진 세월에 지칠 만도 한데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십니다. 백기완 선생님은 지난겨울 촛불광장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키셨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은 대부분 떠난 강정해군기지 앞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고 서각을 깎아냅니다. 여전히 두 어른은 현역이십니다.

용산참사 때입니다. 이명박이 용산에서 사람을 죽였을 때, 경찰은 추모행사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관혼상제는 집시법의 신고대상이 아니어서 집회신고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경찰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용산참사와 관련한 추모행사를 방해하고 집회신고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에 데인 이명박 정권은 용산참사 항의투쟁이 촛불로 번질까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서울 시내서 열리는 추모행사는 모두 불법집회가 됐습니다.

그때 백기완 선생님이 나서주셨습니다. 추모의 말씀을 해주십사 전화로 부탁드렸습니다.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하냐고 사양하시면서도, "박래군 선생이 오라고 하니 나가 볼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백 선생님은 언제부턴지 저에게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기억하기론 제 나이 50이 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실 때가 더 정겨웠는데...  아무튼 청계광장에서 열린 추모대회에 나오신 백 선생님은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산참사가 아냐. 용산학살이야. 이명박이 국민을 때려죽인 거야!"

시원하게 지르셨지요.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의 기를 살리는 데는 백 선생님의 웅변만한 게 없습니다. 경찰의 원천봉쇄, 언제 침탈당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분위기에서 선생님의 사자후는 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불을 질렀습니다. 그 뒤에도 어려운 상황마다 전화를 드리면 언제나 달려오셨습니다.

추모대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저는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갇히는 신세가 됐습니다. 그곳에서, 거리에서 추모대회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자 고민의 저편에서 문 신부님이 떠올랐습니다. 

"문정현 신부님, 용산에 와주셔야겠어요."

전화를 드렸습니다. 문 신부님이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오셔서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만나셨습니다. 울보 신부님은 유가족들을 만나자마자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눈물이 채 마르기전, 그 길로 군산으로 내려간 문 신부님은 짐을 꾸려 '평화바람' 식구들과 함께 상경했습니다.

용산참사의 현장 남일당은 매일매일 전쟁터였습니다. 경찰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현장을 짓밟으려 했습니다. 용역들은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도 철거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문 신부님은 전경과 용역들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했습니다. 여기저기 몸에 멍이 들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안 맞고 살아봤으면 좋겠다."

문정현 신부님의 말에 피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문 신부님은 허허 웃으시며, 저항의 고삐를 죄셨습니다. 용산참사 현장을 '남일당 성당'이라고 명명하고 본당신부로 이강서 신부님을 앉혔습니다. 자신은 아래로 내려와 보좌신부 역할을 했습니다. 후배에게 자리를 내줄 줄 알고, 정의구현을 위해 몸 바치는 분이 문정현 신부님입니다. 

두 어른은 제가 30년 전 인권운동에 투신하기 전부터 온몸으로 현대사를 겪어왔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감옥에서, 지하고문실에서 모진 일을 당하셨습니다.

못난 후배의 애절한 바람

문정현 신부님이 곡기를 끊었다. 강제집행에 쫓겨난 평택 대추리 주민들을 위해서다. 청와대 앞 땅바닥에도 자리를 폈다. 미군기지 확대 이전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문정현 신부님이 곡기를 끊었다. 강제집행에 쫓겨난 평택 대추리 주민들을 위해서다. 청와대 앞 땅바닥에도 자리를 폈다. 미군기지 확대 이전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 문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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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광장 땅바닥에 비정규노동자들이 배를 깔고 엎드렸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오체투지에 나선 거다. 이때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오체투지행진단의 곁을 지켰다.
 서울 광화문 광장 땅바닥에 비정규노동자들이 배를 깔고 엎드렸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오체투지에 나선 거다. 이때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오체투지행진단의 곁을 지켰다.
ⓒ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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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빨리 변했습니다. 한 때의 동지였던 사람들이 출세 줄을 잡아서 권력으로 나가고, 정치한다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한 자리씩 해먹었지만, 두 분은 그런 부름에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에 가서 밥 한번 먹지 않은 재야 원로 선생님이 몇 분이나 될까요? 가장 원칙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한결같은 그 모습을 보며, 저는 허투루 몸과 입을 놀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는 두 분을 귀감 삼아 언제까지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은 자신들이 지켜왔던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한겨울의 촛불집회 현장에서 얼굴만 비치고 자리를 뜨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지키셨습니다. 우직함으로 진보운동의 앞자리를 늙은 몸으로 버티고 계십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는 너무 고맙기도 하고, 너무 안쓰럽기도 합니다.

이런데도 저는 두 어른에게 밥과 술을 얻어만 먹었습니다. 수십 년 두 분과 인연을 맺어온 뒤로 줄곧 이랬습니다. 단 한 번도 두 어른께 따듯한 밥 한 그릇 대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거미가 어미의 살을 파먹고 성장하는 것처럼 저는 두 어른의 살을 먹고 자라왔습니다. 두 어른이 있어 푯대를 삼아 지금껏 견뎌왔는데도 이랬습니다. 

저는 못난 후배입니다. 두 어른에게 늘 받고만 살아왔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부탁하고 동원만 해왔습니다. 언제고 두 어른이 쉬실 수 있도록 이제 요청을 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또 필요할 때면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마음 쓰는 일뿐입니다. 두 어른을 만나면 몸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긴 이유입니다. 하지만 뵐 때마다 눈에 띄게 기력이 쇠해지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 백기완 선생님이 연세가 더 많으시니 그렇게 보입니다. 워낙 꼬장꼬장하신 분인지라 자세는 여전하나 목소리에 힘도 많이 빠졌고, 몸의 기운도 예전보다 훨씬 못합니다.

문정현 신부님은 워낙 장난을 잘 치십니다. 신부님이 잘하시는 반가움의 표현은 꼬집기입니다. 꼬집히면서 20년 살아왔는데, 손아귀 힘이 워낙 좋으십니다. 요즘도 서각을 하시느라 손아귀의 힘은 여전하시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기력이 쇠해지심을 느낍니다.

제겐 소박한 바람이 있습니다. 이제 그만 거리에서 두 어른을 뵙지 않아도 되기를, 이제 그만 두 분이 비 내리고 눈 내리는 그 거리에 나앉지 않아도 되기를, 이제 두 분이 더 이상 억울한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기를, 더 이상 두 분이 못난 후배들을 위해서 마음 쓰지 않아도 되기를 희망합니다.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꼭 건강하셔서 두 분이 바라시던 그날을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고맙고, 죄송합니다.

*대담집 <두 어른>의 사전판매(1쇄) 전액은 꿀잠 기금에 보태 빚을 갚는 데 사용됩니다.

<두 어른> 표지 이미지
 <두 어른> 표지 이미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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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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