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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자들에게 수술실CCTV 공약을 요구한 환자권익연구소가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공장식 유령수술로 숨진 고 권대희 사건 발생 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혐의를 바꿔 달라는 요구지요.

요구사항은 분명합니다. 권대희 사건은 현재 의료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지요. 저희 단체는 유령수술이 단순한 과실보다는 법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중대한 혐의로 다뤄져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환자 마취 뒤 집도의가 나가고 환자와 합의되지 않은 초보 의사, 심지어는 무자격자가 들어와 수술하다 사람이 죽은 사건을 단순한 실수, 즉 의료과실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의료사고는 통상 업무상 과실로 다루는 게 보통이라 수사기관에선 권대희 사건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도 적용이 가능했지만 검찰이 적용하지 않아 지난한 과정 끝에 2020년에야 기소됐지요. 어머님께서 무기한 1인시위를 벌여 0.3% 확률을 뚫고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의료진이 환자를 속이고 위험성이 높은 방식을 선택해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인데 단순히 과실이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거지요. 

전신마취 수술은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생명이 오가는 중요하고 섬세한 수술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익을 위해 환자를 속이고 동의받지 않은 초짜 의사가 수술한 사안을, 정상적인 의료행위 중 실수로 발생한 사고와 동일하게 과실치사로 처벌하는 게 정의에 부합하느냐는 의문이었죠. 

그래서 저희 환자권익연구소는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권대희 사건부터 선례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업무상과실치사로 의사들이 기소된 공소장을 상해치사죄와 살인죄로 변경해달라고 검찰에 요구한 것이죠. 

유령수술 사고에 살인죄를 적용해야 하는 이유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유령수술 살인죄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환자권익연구소
▲ 유령수술 공소장 변경 촉구 기자회견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유령수술 살인죄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환자권익연구소
ⓒ 환자권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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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전문 법무법인을 통해 법리 검토를 마치고, 정식으로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에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근거는 크게 세 개였죠.

첫째, 형법 교과서에 따르면 의사의 의료행위는 신체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상해죄를 구성한다고 합니다. 다만 의료행위는 치료 목적으로 의술에 따라 행해지는 '치료행위'이고, 환자 동의 하에 이뤄지는 행위이기에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해석하는 것이죠. 유령 성형수술은 치료행위도 아니고, 영리적 목적으로 동의 없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실제 독일에서는 환자 승낙 없는 의료행위를 상해죄로 처벌한 판례도 있었습니다.

둘째, 환자가 전체 혈액의 약 70% 가까이 출혈이 있었다는 것을 의사들이 인식하고도 수혈이나 신속한 응급실 이송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죠. 판례는 살인죄에 있어서 고의는 반드시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사망 결과를 발생시킬 위험을 인식 및 예견하면 미필적 고의로 인정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셋째, 업무상과실치사는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나와도 의사면허에 영향이 없고 형도 대부분 집행유예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은 자연스레 의료사고에 둔감해지기 쉽지요. 심지어 유죄 판결이 나오기까지도 몇 년이 걸리고, 그동안 의사 활동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당장 대희를 수술하다 사망 사고를 낸 의사들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5년간 아무 처벌없이 각각 다른 병원에서 커리어를 잘 이어나가고 있죠. 

상황이 이럴진데 과연 최근 연이은 의료범죄 행위 뒤에 국회와 법원, 수사기관의 직무유기가 없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요.

공소장 변경요청을 넘어 공론화를 위해

속출하는 유사 의료범죄에 영향을 주고자 공소장 변경 요청에 그치지 않고, 공론화를 준비했지요. 그래서 환자권익연구소는 추가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환자 동의 없는 의사바꾸기 결과 발생한 인명사고는 상해·살인죄로 다뤄달라'는 내용이었죠.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회원들, 연대하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00년 의료법 개정으로 범죄 의사들에 대한 면허 규제가 어려워졌고, 그 틈을 타 병원 이익 극대화를 위해 환자 동의 없이 공장식 동시 수술과 유령 수술이 성행하는 현실을 규탄했죠.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범죄임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져서 피해자가 끊이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이제라도 환자의 생명과 이익을 교환하는 유령수술은 범죄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과실치사가 아니라 상해죄와 살인죄로 엄벌에 처해달라고 검찰에 요구했죠. 

이번 기자회견은 환자권익연구소뿐 아니라 2014년 그랜드성형외과 유령수술 사태를 공론화하고 현재 재판까지 이끌고 계신 김선웅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님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김 원장님은 유튜브를 통해 의료범죄 문제를 고발하고 계신 분으로, 의료범죄척결 시민단체 닥터벤데타 대표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현장엔 기자 두 세분이 방문하셨고 아쉽게도 기사화된 건 거의 없었습니다. 일부 기자분들께서는 기자회견문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셨는데, 실제 보도되지는 않았죠.
그러나 저희의 첫 기자회견은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한 기자회견문은 다른 어느 단체와 견줘도 부족함이 없도록 법리검토부터 내용정리까지 했으며, 몇몇 기자분들은 기사화와 별개로 내용이 좋다는 의견을 주셨지요.

김선웅 대표님과 제 어머니이신 이나금 환자권익연구소 소장님께서 함께 작성하신 기자회견문 핵심내용을 아래에 정리해보며, 이 시작이 언젠가 나비효과를 가져오기를 기원해봅니다.

환자권익연구소와 의료범죄척결 시민단체 닥터벤데타, 간병시민연대, 전두환 심판 국민행동은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현재 수사 중이거나 재판 진행 중인 공장식 유령수술 사고는 형법상 '상해죄'와 '살인죄'로 다뤄져야 한다. 권대희 사건 재판부와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대신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하라.

둘째, 정부는 2005년 이후 수술실에서 사고로 사망하거나 뇌사에 빠진 피해자의 숫자를 파악하고, 그중에서 '범죄수술'이 이뤄진 정황이 있는 사례를 파악해 조사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유령수술과 사무장병원, 불법 브로커 등을 폭로한 공익제보자들의 신상을 보호하고 포상금을 지급하라.


환자권익연구소 회원이자 정의로운 의료환경을 누구보다 바라는,
권태훈 올림.

태그:#환자권익연구소, #유령수술, #과실치사, #공소장변경, #권대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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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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