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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지난 7월 22일 '권대희 사건' 결심공판이 열렸습니다. 소송 제기 5년만에 형사 1심 재판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죠. 2016년 공장식 유령수술로 세상을 떠난 제 동생 대희 사건이 이제야 첫 판결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결심공판에선 피의자들에 대한 형량이 어느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피의자들의 '형'을 '구'하는 구형이 이뤄지기 때문이죠. 법원은 검찰 구형량을 감안해 최종 판결을 하는데, 구형이 높게 나와야 형량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날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또한 이날은 상해치사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해달라는 요청에 검찰이 응답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인용률 0.32%에 불과한 재정신청을 통해 극적으로 무면허의료행위 혐의가 기소됐지만, 동생의 죽음을 업무상 과실과 무면허의료행위로만 다룬다는 건 뭔가 잘못됐다는 판단이었죠. (관련 기사 : 유령수술 사망사고가 업무상과실치사? 틀렸습니다 http://omn.kr/1sz7p

환자 마취 후 집도의가 나가고 경험이 일천한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이어받았고, 그마저 자리를 비우고 간호조무사가 수술방에서 혼자 지혈을 했는데, 이걸 과실로만 다루다니요. 대희는 의료과실 때문이 아니라 분업 공장식 유령수술이라는 엽기적인 수술방식에 의해 사망했으므로 그에 따른 처벌이 이뤄져야 했습니다. 시민단체 의료정의실천연대가 나서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한 건 그래서였지요.
 
피가 흥건하지만 수술한 의사는 사라지고 유령의사가 마무리를 하고 있다
▲ 고 권대희 수술실 CCTV 캡처 피가 흥건하지만 수술한 의사는 사라지고 유령의사가 마무리를 하고 있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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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CCTV까지 확보해 불법적인 정황이 낱낱이 드러난 사건을 상해치사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하지 않게 되면 범죄 의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된다는 게 저와 어머니의 생각이었습니다. 법원이 단순 과실로 이 사건을 다루면 이후 한국에서는 유령수술, 분업식 공장수술 같은 잘못된 관행이 정상적인 수술방식처럼 자리를 잡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날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업무상 과실과 무면허의료행위 혐의만 적용해 구형했죠. 대신 형량은 과실과 의료법 위반 혐의 사건에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중형을 요구했습니다. 절반의 성취였지요.

야만적 수술방식과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재판 하루 전날,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해자 진술을 신청하겠다고 검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왜 저희가 오랜 기간 싸움을 하고 있는지, 소송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재판부에 유족의 입장을 전할 소중한 기회였죠. 제가 유족 대표로 증인석에서 최창훈 재판장님께 진술했습니다.

그 내용을 아래 소개해봅니다.
 
안녕하세요, 피해진술을 맡게 된 권대희 형 권태훈입니다. 우선 소중한 기회를 주신 재판장님 및 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재판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은 성형수술 업계의 잘못된 관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잘못된 관행이 오랫동안 지적돼 왔지만 바뀌지 않고 제 동생의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먼저 일어난 피해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고인들이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죽은 제 동생이 살아오진 못합니다. 그래도 전국에 있는 성형외과 의사들이 그리고 환자의 생명을 수익극대화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유령의사들이, 이 판결을 보고 '나도 잘못하면 저렇게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겠구나' '의사 면허가 방탄 면허는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해야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왜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사유를 하나씩 설명 드리겠습니다.

첫째, 환자를 치료하다 발생한 과실치사가 아니라 멀쩡하던 청년을 수익 극대화 목적으로 동시수술 하다 발생한 예견 가능했던 사고라는 점입니다. 이를 정상적인 수술 중 발생한 과실치사와 동일하게 처벌한다면 이 잘못된 관행에 면죄부를 주게 됩니다.

둘째, 그들은 반성도 사과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고 후 피고인 신OO으로부터 사과는 커녕, 얼굴 한번 보지 못했습니다. 공판 때 처음 드디어 볼 수 있었죠. 피해자에게 해온 행태를 고려하면 재판부에 낸 탄원서, 기타 어떤 최후진술을 할 진 모르겠지만 양형을 고려한 진심없는 반성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난번 공판 때 피고인 변호인들의 말을 듣고 어머니는 내내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피고인들의 생업에 지장이 있으니 빨리 결심해서 재판을 끝내달라."

의사만 생업이 있나요? 저희도 생업이 있습니다.

동생이 죽고 저와 부모님은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종양이 생겨 병원 치료를 받고 계시고, 어머니는 8년 간 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5년째 소송만 매진하며 자식이 죽어가는 수술실 CCTV를 500회 이상 보고 계십니다.

심지어 이 소송을 저희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저희는 사고 원인을 알려달라며 찾아갔지만 피고인이 오히려 소송을 하자며 시작한 소송입니다. 소송 중에도 재판에 남편과 손잡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저희를 힘들게 했습니다.

죄의 무게는 판사님께서 법리에 맞게 판결하시겠지만, 양형에 있어 이러한 부분들을 감안하시어 법이 허락하는 최고 법정형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이를 통해 다시는 이런 야만적이고 엽기적인 수술 방식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이 없도록 경종을 울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업무상 과실치사, 의료법 위반 법정최고형 구형

최후 진술 뒤 검찰이 구형을 했습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두고 "20대 청년이던 권대희씨가 성형수술 과정에서 사망에 이른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또한 "피고인 의사들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조립되는 제품처럼 피해자를 수술했고,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시해야 할 의술 영역에서 효율성이 추구됐다. 인간다움의 가치가 상실된 수술에 따라 피해자가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해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참혹한 결과가 발생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피고인들은 의사에게 기대되는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했고 주의의무 위반 정도가 중대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라며, "더욱이 그 배경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공장식 수술구조가 확인돼 의료 불신으로 이어지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계기가 되는 등 국민들에게 마취수술의 공포 의심이 생겼다. 이런 비극적 사건이 반복돼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피해도 중대하지만 그 배경과 수술방식도 사회적인 충격을 준 만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검찰은 집도의사 장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을 구형했습니다. 마취의사 이씨에게는 징역 6년, 유령의사 신씨에게는 징역 4년,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간호조무사 전씨에게는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의료사고 재판 중 유례없는 수위의 구형이었습니다. 처음 수사를 담당했던 성아무개 검사 의견대로 의료법 위반은 불기소하고 단순 업무상 과실치사로만 기소됐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만약 성아무개 검사가 불합리한 처분을 했을 때 저희 가족이 순순히 받아들이고 재정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똑같은 사건, 똑같은 사실관계임에도 검찰의 구형은 완전 달랐을테지요. 업무상 과실치사로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중한 형은 부과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의사 면허 정지 같은 처분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공소장 변경은 실패했지만

아쉽게도 공소장 변경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저희가 제출한 살인죄와 상해치사죄의 공소장 변경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검찰시민위원회를 열어 시민위원들의 의견까지 수렴했지만 공소장 변경은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술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고의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형량은 검찰이 사건을 사실상 상해치사에 준해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건이 이례적 구형으로 그칠 게 아니라 검찰이 솜방망이 처벌을 했던 기존 관행을 혁파하고 문제를 근절시키기 위한 시작점이었으면 합니다.

처음 소송을 제기한 후 어머니는 집도의사 장씨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의료사고는 혐의 입증이 힘든데, 실형 잘 안 나오는데, 형사 고소 왜 했어요?"

의료사고에 대한 우리사회의 만연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식과 관행을 깨고 여기까지 온 것은 오로지 독자분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5년간 지치고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마다 기사에 댓글로 같이 분노해 주시고 위로 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8월 19일 선고가 남았습니다. 잘못된 관행을 부수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며, 끝까지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려봅니다.

함께해 주셔서 항상 감사한 대희 형 태훈 올림

태그:#권대희사건, #권대희의료사고, #결심공판, #검찰구형, #수술실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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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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