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아직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다. 얼마 전 유재석씨가 어떤 아주머니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장면과 그 아주머니의 연령대를 보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배워서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그 아주머니가 느꼈던 자유로움이 생각만으로도 실감이 됐고, 나도 두 바퀴에 의지해 시원하게 바람을 마주하는 상상을 잠시 했었다.

그럼에도, 자전거를 타고 느끼게 될 자유로움보다 자전거에 대한 공포가 앞섰다. 이미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다 몇 번 심하게 넘어진 경험도 있었고, 그 단계를 이겨내고 넘어서야 하는데 멈추고 말았다. 생각보다 핸들로 중심을 잡는 것이 힘들었고, 두 바퀴만으로 균형을 잡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이제는 아예 못 타는 것으로 굳어졌다.

타는 것에만 공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달려오는 자전거나 뒤에서 나는 따르릉 소리에도 매번 깜짝 놀란다. 좁은 인도에서 부딪치듯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에 한껏 예민해지고 널찍한 길에서도 매번 따르릉 거리는 소리에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달리는 자전거에 피로를 느낄 때마다 사람이 많지 않으면 알아서 천천히 피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좁은 인도는 걸어서 끌고 가거나 자전거 길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전거 사고가 났다
 
열 바늘을 꿰맸다. 처음엔 붕대로 칭칭 감은 다리와 군데군데 시퍼런 멍과 피, 긁힘의 흔적이 진했다.
 열 바늘을 꿰맸다. 처음엔 붕대로 칭칭 감은 다리와 군데군데 시퍼런 멍과 피, 긁힘의 흔적이 진했다.
ⓒ elements.envato

관련사진보기

 
한두 달 전쯤, 아파트 단지를 끼고 산책로를 걷고 있을 때, 타이어가 도로와 마찰하며 내는 거친 마찰음이 뒤에서 들렸다. 자전거를 탄 두 명의 학생이 곡예를 하듯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방향을 꺾고 있었고, 옆을 지나던 사람은 급하게 피한 듯 상기된 모습이었다. 선명하게 찍힌 바퀴 자국에 위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러다 크게 사고가 나지!' 생각했다.

그후 사고가 나에게 닥쳐왔다.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때의 그 학생이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자전거로 나를 덮친 학생도 급하게 방향을 틀으려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타이어가 마모돼서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았다고 중얼중얼 변명했다. 수행평가 때문에, 학교에 늦어서 등의 말이 뒤따랐고 아마도 빠르게 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정상적인 등교시간은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열 바늘을 꿰맸다. 처음엔 붕대로 칭칭 감은 다리와 군데군데 시퍼런 멍과 피, 긁힘의 흔적이 진했다. 치료하고 나니 상처가 더 커 보였다. 사고의 충격은 며칠간 가시지 않았고, 게다가 온몸에 두드려 맞은 것처럼 묵직한 근육통도 이어졌다. 잠시 서 있어도 다리에 압박이 느껴졌고 심각한 환자처럼 의식적으로 다친 다리에 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신경 쓰며 걸어야 했다.

의사의 표현에 따르면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부위를 꼼꼼히 꿰맸다고 했고, 살이 까맣게 죽어 흉터가 남을 수 있다고 했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두려움과 조바심을 들킬까 그 와중에도 표정관리를 했던 것 같지만, 마취로 무뎌진 상처를 꿰매는 의사의 손길은 움직임만으로도 무서웠다. 어른이어도 넘어짐은 창피했고 상처는 아팠고 치료는 겁이 났다.

우연히 닥친 자전거 사고로 다섯 달 넘게 이어지던 만 보 걷기가 멈췄다. 걷기는 나이 들어 사실상 유일한 건강관리 방법이었다. 걷지 못하는 처음 며칠은 급체기가 있었고 통증은 수면을 방해했다. 물이 닿지 않도록 하라는 말에 상처 부위를 피해야 해서 시원스러운 샤워도 불가능했다. 서 있지 말라는 말에 앉거나 누워 생활하니 이전에도 좋지 않았던 허리에 무리가 왔다. 약기운은 정신을 몽롱하게 했고 가볍던 몸이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일상생활 곳곳에 지장이 있었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일어난다

통계적으로 6월은 자전거 사고가 가장 많은 달이라고 한다. 자전거 사고의 발생 건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어 자전거 사고로 2018년에만 1,487명의 사망자, 48,4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고 하니(2019 한국교통연구원의 통계), 자전거라고 결코 우습게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어떤 사고든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도 지금의 환경에서는 이미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하필 나에게 일어난 자전거 사고는 이젠 차가 아니어도 자전거나 타는 모든 것을 잔뜩 경계하게 만들었고, 다니는 모든 곳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 사고를 낸 학생의 부모는 보험을 들어 둔 것이 있다고 하며 보험으로 처리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다친 것은 속상했고 일상은 무너졌지만 가해자 측과의 껄끄러운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불편을 가중할 것 같아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좋겠다고 했다.

여유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어떤 사고든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명명되면 사고 처리 과정은 복잡하고 지난하다는 것을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의 부딪침은 피하고 싶었다.

대형 사고가 아닌 고작 자전거 사고지만 사고의 여파는 적지 않았다. 그러던 중 광주에서 건물 붕괴 사고가 있었고, 쿠팡 물류센터의 화재 사고가 이어졌다. 사고에 집중해서 보면 하루도 사건과 사고가 없는 날이 없는 것 같다. 사고 당사자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사건이 가족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그 고통은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사건이나 사고의 복잡한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피해 가족의 입장을 세심하게 헤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사자도 자신들에게 다가온 모든 상황을 두루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제3자의 헤아림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사후 처리는 특별히 더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고 당사자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지난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5일이 지난 21일에도 연기가 나고 있다.
 지난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5일이 지난 21일에도 연기가 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번 사고에 대한 대처가 미흡할 시 (쿠팡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상당히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것임을 알고, 사고 처리와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에 임해줬으면 하는 생각이다."(20일, 경기도 광주소방서 김동식 구조대장의 빈소를 찾은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한 언론에서 보도한 쿠팡 물류창고 사고에 대한 야당 대표의 발언이었다. 유족들을 달랜다는 표현도, 기업 이미지를 걱정하는 듯한 뉘앙스도 거슬렸다. 광주 건물 붕괴 사고에 대한 여당 대표의 발언도 문제가 되었다.

"바로 그 버스정류장만 아니었다 할지라도 운전자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뭐가 무너지면 엑셀레이터만 조금 밟았어도 사실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인데 하필 버스정류장 앞에 이런 공사현장이 되어있으니 그게 정확히 시간대가 맞아서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붕괴사고 대책 당정협의 모두 발언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논란이 커지자 송 대표는 '버스기사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위험한 건물을 버스정류장 앞에 방치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지적했다'라고 해명했지만, 썩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엔 자전거 사고를 냈던 학생의 반복되는 죄송하다는 말과 가도 되느냐며 주춤거리는 말에도 화가 치솟았던 것 같다.

나의 자전거 사고의 후유증은 3주가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사고의 상황을 대하는 마음은 편치 않고 처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일상도, 엄격하게 지키려 노력했던 것이 무너진 상황도 여전히 갑갑하다. 이제는 무너진 일상을 수습하고 이전으로 회복해야 하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의무가 되어버렸다.

사고의 책임이 명백히 100퍼센트인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무겁게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분명히 있다. 책임이 무겁다고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섣부르게 나서서 사건을 중재하려는 태도 또한 신중해야 한다. 점잖은 체하며 혼란을 다시 들쑤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고의 당사자와 가족들의 세상은 이미 무너졌으므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 후반, 남은 시간을 고민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