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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생활을 했던 내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주거 환경.
 도시 생활을 했던 내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주거 환경.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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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넘게 우애를 다져온 친구들끼리 꽤 오랜만에 만났다. 둘째가 엉금엉금 기어 다닐 때 문화센터 오감발달 수업을 함께 들은 육아 동기들이었다. 공유할 추억이 많아서인지 부쩍 커버린 아이들 이야기부터 수다 열기가 뜨거웠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끝에 한 가지 주제가 던져졌다.

"아이들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는 게 뭘까."

자녀 있는 부모 단 두 명만 모여도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사설 교육기관이 얼마나 많이 포진돼 있는지, 산책 나갈 수 있는 공원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 학교들이 고루고루 세워져 있는지 엄마들은 깐깐하게 따진다.

집값이 비싸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

각자의 기준에 따라 좋은 환경이란 모두 다르겠지만, 말 그대로 내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었으면 하는 마음은 매한가지일 거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말을 어렵게 꺼냈다. 

"남편이 여기에서 아이 초등학교 보낼 거냐고 자꾸 물어. 집값이 싸서 자꾸 못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라 걱정이 된대."

이 말을 듣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집값을 기준으로 환경이 좋고 나쁨을 가르다니, 그게 과연 올바른 방향인가 싶어서. 물론 아이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부모의 욕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운 건 나만의 생각일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경남 진주. 시내와는 약간 동떨어진 면소재지이다.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지만 주변에 논밭이 많아서 집값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동네다. 그래서인가? 이곳 시세를 잘 모르는 타 도시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많다. 우리 집은 김해에서, 바로 앞집은 서울에서, 친구네는 구미에서 들어와 살고 있다.

이 지역 토박이들은 다리 하나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우리 동네를 두고 '절대 들어가서 살면 안 되는 동네'라고들 한단다. 하지만 진주가 워낙 작은 소도시여서 그런가? 차만 있으면 30분 안에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나는 비교적 큰 불편 없이 6년째 가족들과 잘 살고 있다.

자연 놀이터와 함께 하는 '살기' 좋은 곳

우리 가족이 지인 하나 없는 이곳에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집값이 저렴해서였다.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요즘, 10분 거리의 혁신도시 아파트는 2억~3억씩 쑥쑥 오른다는데, 10여 년 전쯤 지어진 대형 아파트가 모여 있는 우리 동네는 오랫동안 정체기에 머물고 있다. 

떠들썩한 집값과 상관없이 살기가 좋다. 유독 아이들이 많은 이곳은 창문만 열어도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다. '여기 캠핑장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깊숙이 들어 차는 맑은 공기가 그야말로 최고다. 더 신기했던 건 그 흔한 비둘기가 잘 보이지 않고 그대신 처음 보는 적어도 서너 종류의 새들이 아파트 단지를 드나든다. 또 조금만 나서면 보이는 논 위에는 두루미나 황새가 노닐고, 아파트 뒷산에선 소쩍새랑 뻐꾸기가 앞다퉈 울어 댄다. 주변이 죄다 자연 놀이터인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인들의 텃밭이 지척에 있어서 대파니 감자니 하는 채소들을 오며 가며 나누는 동네다. 제철에 나오는 딸기, 배, 토마토 같은 과일은 신선한 제품들로만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세대 수가 적은 우리 동 주민들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인사는 물론 부드러운 대화 한두 마디는 꼭 나누고 헤어진다. 쾌쾌한 매연 냄새에 온정 하나 없는 도시 생활을 했던 내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곳이다. 

'집값이 싸서 자꾸 못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라 걱정이 된대'라는 말을 듣고 여기까지 쓰게 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아이들은 집값이 싸고, 비싸고를 떠나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놀고 그 속에서 배운다. 그런데 어른들이 나서 스스로 계급을 만들고 가진 것만으로 친구와 이웃을 구분 짓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나는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좁혀서 함께 아우르는 세상을 살아가길.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그런 모습을 먼저 몸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우는 법이니까.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분양가, #부동산, #어른,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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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6개월이란 경력단절의 무서움을 절실히 깨달은 아이셋 다자녀 맘이자, 매일을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글을 쓰는 일이 내 유일한 숨통이 될 줄 몰랐다.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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