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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 교동에 사는 김춘삼씨는 1971년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승해호의 선원이었다. 그는 납북 귀환 어부 피해 당사자인 동시에 '동해안납북귀환어부진실규명 시민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김춘삼씨는 대표직을 수락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납북 귀환 어부 피해와 진상규명 해결을 위해 전력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실 그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려면옥'이라는 냉면집을 운영했던 자영업자였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도 2010년 겨울 그가 운영하던 고려면옥 식당에서였다. 그는 많은 납북 귀환 어부들이 그랬듯이 1971년 북에 납북되었다가 1972년 남한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그에게 조국은 무수한 고문을 가했고, 그로 인해 그는 반공법·국가보안법·수산업법 위반 자로 조작되어 실형을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8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해양경찰에 연행되어 이전보다 더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또다시 2년간의 실형을 살아야 했다.

그는 재심을 통해 1983년의 조작 사건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여전히 전과자다. 1972년 귀환 당시 처벌받은 반공법·국가보안법·수산업법 위반 죄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그는 납북 귀환 어부의 진실 규명과 해결을 위해 국회로, 강원도청으로, 진실화해위원회로 뛰어다니고 있다. 또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의 소식이라도 듣게 되면 시간과 비용을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납북 귀환 어부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절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이기에 피해자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몇 해 전 당한 큰 사고로 몸이 매우 불편하지만 그는 여전히 납북 귀환 어부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춘천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고 있는 김춘삼 대표.
 춘천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고 있는 김춘삼 대표.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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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납치된 게 확실" 

김춘삼씨는 1971년 15세의 나이로 승해호의 선원으로 출항했다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되었다. 5남매나 되는 김춘삼씨의 가족은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해 모두 이른 나이에 경제 활동에 뛰어들어야 했다. 김춘삼씨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더 이상 진학을 꿈꿀 수 없어 일찌감치 배를 타야 했다고 한다.

"납북되던 1971년 이전에도 승해호만 몇 번 승선한 적 있습니다. 친구들하고 배 일자리가 생기면 오징어 잡으러 다녔죠. 당시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어선에 승선할 수 있었어요. 특별히 신원을 확인하지도 않았고, 나이가 어려도 상관하지 않고 승낙했었어요. 제 나이가 한국 나이로 15살이었어요. 아버님 없이 어머님만 계셔서 가족 모두 생계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막내였던 저도 예외 없이 생계를 챙겨야 했어요. 주로 오징어잡이 할 때만 탔어요. 명태잡이 배는 기술적인 부분이 있어서 단순하게 조업을 할 수 있는 오징어 조업이 좋았어요."

당시 김춘삼씨가 승선했던 승해호는 목선으로 만든 크지 않은 배였다. 수사 기록에 기재된 김춘삼씨의 진술에 따르면, 승해호는 13.93톤, 19마력의 목선이라고 되어 있다. 당시 어린 나이에, 경험도 적은 김춘삼씨가 승해호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도 자세히 알고 있느냐고 묻자 모두 수사관이 미리 작성한 내용일 뿐 정작 김춘삼씨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시 승해호의 장비는 어떠했으며 실제 운항은 어떻게 한 것일까?

"당시 승해호에는 해도조차 없고 오직 나침반 하나 있었어요. 승해호 선장이 김종인씨라고 동네 선배 김성학씨의 부친이었는데, 보통 선장 오래 하시는 분들은 바다와 육지의 관계, 육지의 산의 모양새, 육지의 일직선 모양 등을 보고 항해하거나 속초, 거진, 주문진의 등대 불빛을 보고 항해 방향을 잡아요. 등대의 회전 속도가 달라서 등대 구분이 가능합니다. 등대마다 불빛 회전 속도가 달라서 그 회전 속도만 보면 어디 등대다 이렇게 알 수 있는 것이죠."

김춘삼씨의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에는 군사분계선을 월선해서 조업 활동을 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붙잡힌 것으로 되어 있다. 해도 한 장 없이 등대나 육지 모양을 보며 운항하는 배의 선장이나 선원들이 어떻게 군사분계선을 월선했는지 알 수 있을까.

"당시는 해도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그저 수사관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내용을 인정하게 된 것이죠. 조서에는 제가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은 내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조서라기보다는 기계적 인쇄소라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어로 저지선을 넘은 일이 절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북한 배에 끌려간 시간이 자정 무렵이었는데 북한 장전항에 도착한 것이 그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였어요. 대략 8시간 정도 끌려간 것이죠.

만약 우리가 북방한계선을 넘어가 북한 경비정에 잡혔다면 8시간까지 걸려서 북한으로 끌려가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끌려간 곳이 장전항 포구 남애항이라는 곳인데 그 당시 배로도 3~4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8시간이 걸렸습니다. 남쪽에서 잡힌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김춘삼씨의 수사 기록에는 승해호가 북한 해역에서 조업 중 납치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월선한 적이 없다는 김춘삼씨의 말과는 다르게 수사 기록에 월선 조업한 것으로 기재된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짐작하듯 수사기관의 폭력적인 수사 과정에서 조작된 내용이라고 한다.

"저희가 조사 받을 상황은 특별한 건 없었어요. 수사관들이 조서를 작성해서 물으면 '네네' 답변만 했어요. 속초시청에서 조사 받을 때 바른말 안 하면 혼날 줄 알라고 하고, 전기고문 하는 전화기하고 삐삐선(군용 전화선)을 가져다 놓고 위협을 했어요. 나이가 어렸으니 때리면 때리는가 보다 하고 그냥 맞았죠. 그 당시 선장이나 기관장은 많이 맞았던 것 같아요.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김춘삼씨가 억울해 하는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제일 억울한 점은 당연히 고문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는 점이다. 귀환한 선원들을 속초시청 건물에 집단 수용하고 수일간 영장 없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등이 자행됐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억울한 것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국민 개인의 잘못으로 덮어씌웠다는 것이다.

"(납치될 당시) 밤에 다른 배는 보여도 해군이나 해경 배는 못 봤어요. 제가 조업하던 중에는 해군 배나 해경 배를 본 적이 없어요. 오징어는 우리 근해에서 잡히는데 왜 굳이 그런 위험한 곳으로 가서 잡겠습니까. 국민이 잡혀가는 걸 뻔히 보고도 보호하지 못했다면 그것 자체로 문제 아닙니까? 국민이 잡혀가는 걸 몰랐다면 더욱더 큰 문제겠지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무서우니 우리를 범죄자로 만든 것 아닙니까?"

16세 소년에게 이념 처벌

김춘삼씨는 구속 당시 16세였다. 그는 16세의 어린 소년에게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 죄를 적용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촉법소년(범죄를 저지른 만 10~14세. 이들은 형사처분 대신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받는다)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같은 어린아이에게 이념 처벌을 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구속된 것에 대해 그저 '한심스러운' 대한민국의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저는 이 사건으로 16살 나이의 소년에게 국가보안법, 반공법의 처벌이 정말 가능하고 합당한 것인지 제일 먼저 묻고 싶어요. 초등학교만 나온 16세의 소년이 법률용어를 어떻게 알고 수사 용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소년이 자의적 이야기나 진술, 반박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린 나이에 받은 반공법, 국가보안법 처벌이 사는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다녀서 사회생활이 힘들었어요. 내 힘으로 돈을 모아 식당을 차렸더니 수사관이 찾아와서 공작금으로 가게를 열었나 물어보기도 하더라고요. 경찰에 수시로 불려 다니고 감시받는 건 말해 뭐합니까."
 
지난 3월 납북 귀환 어부에 대한 검찰의 직권 재심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춘삼 대표(왼쪽에서 세번째)
 지난 3월 납북 귀환 어부에 대한 검찰의 직권 재심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춘삼 대표(왼쪽에서 세번째)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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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삼씨는 수십 년 경찰과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한편으로 그 불편함 때문에 기죽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하며 살았다고 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억울함을 밝힐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견뎌왔다는 김춘삼씨는 '동해안납북귀환어부진실규명 시민모임'을 통해 자신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들의 진상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바다에 나가 물고기 잡던 소년이 무슨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걸 알겠습니까. 어린 소년을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만들어놓은 그 당시 사람들 살아 있을 것 아닙니까. 얼마 전에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우리 납북 귀환 어부 조사했던 수사 기록을 다 찾았더라고요. 영장도 없이 수십 일을 가둬 놓고 여관에서 조사한 사실이 기록에 다 나왔는데 왜 아직도 재심이나 사과 한마디 없는 겁니까. 난 오늘 죽어도 납북 귀환 어부 딱지 떼지 못하면 눈을 감을 때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을 때까지 진상규명 포기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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