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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은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넓으므로 내리고 타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에서 이런 안내방송 많이 들어보셨죠? 실제로 지하철 발빠짐 사고는 5년 동안 340건 가량 발생할 정도로 빈번하다고 합니다('최근 5년간 지하철 발빠짐 사고 발생 현황', 성중기 서울시의원 공개, 2019).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안내방송을 하는 대신,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넓지 않게 새로 공사하거나 보완하는 설비를 설치하면 모두가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안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먼저 목소리를 낸 사람이 있습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장향숙씨와 전윤선씨입니다. 

두 사람은 2019년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하면서 상대편의 소송비용까지 고스란히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공익소송'이라는 어려운 길을 솔선수범해서 택했는데, '1천만 원'이라는 빚만 남았습니다. 공익소송 패소비용 부담 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장애인 이동권 소송, 패소도 억울한데 1천만원 소송비용까지 내라고요?

2019년 4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인 장향숙 씨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하차를 하던 중 전동휠체어의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끼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해당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은 무려 17cm였습니다. 평균 23.5cm에 달하는 성인의 발도 안전하게 딛기 어려운 틈입니다(▶관련 기사)

장향숙씨는 과거 비슷한 사고를 겪은 전윤선씨와 함께 서울교통공사에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해당 역을 관리·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①도시철도건설규칙을 위반하고 ②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한 차별 행위를 저질렀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도시철도법이 정한 '도시철도건설규칙'에는 "차량과 승강장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 부분에는 안전발판 등 승객의 실족사고를 방지하는 설비를 설치해야한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하지만 장향숙씨와 전윤선씨는 1·2심 모두 패소했습니다. 신촌역은 해당 규칙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생긴 역이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승소가 확정된 서울교통공사 측은 원고 1명당 500만 원씩(총 1천 만원) 1·2심 소송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두 사람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려면 월세 보증금을 빼야 합니다. 비용이 과하다며 서울고법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그마저 기각됐습니다. 

그래서 직접 헌법소원에 나섰습니다. 공익 목적의 소송이라면 패소하더라도 상대방의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안 그래도 달걀로 바위 치기, 패소비용 부담은 공익소송 위축시켜

현행 민사소송법상 소송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해야 하고 변호사 보수도 소송비용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소송비용에 관한 민사소송법의 조항은 공익소송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 청구인들의 주장입니다. 공익소송의 경우 소송 당사자 간의 지위가 대등하지 않은 데다 현행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성격이 커서 패소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소송을 하는 건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선데, 패소비용 부담까지 지우는 건 공익소송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겁니다.

지난 7월 15일, 참여연대를 비롯한 7개 시민단체는 이와 같은 내용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소송을 대리하는 최용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공익소송을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이라고 정의합니다. 

최 변호사는 이와 같은 정의에 근거하여 패소자 부담주의 원칙이 재판청구권 침해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 특성상 공익소송은 ① 소송의 양 당사자의 지위가 대등하지 않고, 청구인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입니다. ② 상대방이 국가, 공공기관, 대기업인 경우가 많아, 증거의 편재로 인한 입증의 부담이 큰 경우가 많습니다. ③ 통상 공익소송은 현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전향적 개선을 촉구하는 성격 때문에, 패소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일률적으로 소송에서 패소한 당사자에게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하라고 한다면, 공익소송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송비용의 패소자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민사소송법은, 공익소송과 같은 특수한 소송에 대한 예외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희는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우리 법은 실체법에 관하여는 소송의 양 당사자의 힘의 우열이 명백한 경우 열악한 지위에 있는 당사자를 보호하는 법률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반면, 소송비용을 정하고 있는 민사소송법의 소송비용 규정은 양 당사자의 힘의 우열이 명백한 경우 열악한 지위에 있는 당사자를 보호하는 예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차별적인 취급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차별적인 취급을 정당화할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소송비용을 정하고 있는 민사소송법 규정은 평등원칙에 위반됩니다." 
 
지난 7월 15일, 참여연대 등 7개 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익적 목적의 소송도 예외 없이 소송비용을 패소자가 모두 부담하도록 한 민사소송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청구에 앞서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지난 7월 15일, 참여연대 등 7개 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익적 목적의 소송도 예외 없이 소송비용을 패소자가 모두 부담하도록 한 민사소송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청구에 앞서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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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변호사는 "현재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국가의 성숙한 시민으로서, 나의 권리만이 아닌 공동체의 권리를 위해서 공익소송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며 "공익소송을 위축시키는 과거의 법률은 위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기자회견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다수 국가선 공익소송 패소비용 부담 완화 정책 시행 중

공익소송에 대해 패소자의 비용부담을 줄여주자는 목소리는, 한국 사회에서는 조금 낯선 주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공익소송에 대해 패소비용 부담을 완화해주는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이 많습니다.

미국은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one-way fee shifting)'를 시행합니다. 공익소송에서 이기면 소송비용을 청구할 수 있지만, 지더라도 상대방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미국의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는 (1) 승소한 당사자에게 변호사비용을 포함한 완전한 손해를 배상을 받도록 하고, (2) 공익적 소송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3) 패소자의 불법행위를 처벌하거나 억제하고, 나아가 (4) 패소자가 부당하게 응소하여 다투는 등 사법제도의 남용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이나 캐나다는 법원이 보호적 비용 명령제도를 통해 공익성 인정의 경우 소송 비용을 면제하거나 상한을 정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이지은 간사 모습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이지은 간사 모습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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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이지은 간사는 위와 같은 해외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공익소송에는 현재의 패소자부담주의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개정을 국회에도 요구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에 이미 공익소송 패소비용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2020년 7월에 양정숙 의원이 발의한 민사소송법 개정안과 올해 6월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해당 발의안들은 모두 아직 국회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 개정안들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는 입법촉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프로젝트 바로가기).

법안 심사를 담당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시민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든 이 서명운동에 참여 가능합니다.
 
공익소송 패소비용 제도개선 프로젝트
 공익소송 패소비용 제도개선 프로젝트
ⓒ 화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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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정부나 지자체 등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요구하고, 대기업의 부당한 행위에 문제제기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공익소송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주로는 패소하였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기존의 사회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 사회의 주류적 판례와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전향적인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쉽지 않습니다. 패소를 무릅쓰고라도 자꾸 새로운 길을 시도하고 시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시도를 돈이 막고 있습니다. 이기기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자연 위축되지 않겠습니까? 위축되고 주저하고 결국 우리 사회 불합리한 다양한 문제 제기가 주춤하고 사그라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손실이라고 할 것입니다."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는 이지은 간사의 발언이었습니다.

혹시라도 패소할까봐, 패소해서 소송비용을 물게 될까봐, 사회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소송제기를 주저하지 않도록 여러분의 목소리를 보태주세요. 

입법청원 서명 프로젝트는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 웹사이트에서 올해 11월 27일까지 진행됩니다.

덧붙이는 글 | 화난사람들 웹사이트www.angrypeople.co.kr에도 실렸습니다.
공익소송 제도 개선 입법촉구 참여 링크 : https://prj.angrypeople.co.kr/progress/v/126


태그:#공익소송 패소비용 제도 개선, #패소자 부담주의, #장애인 이동권 소송, #공익소송 제도개선 입법청원, #화난사람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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