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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태영호 국회의원이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출마하면서 제주4‧3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며 우익의 정치적 세력 결집을 획책하며 역사를 왜곡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제주도당(허용진 위원장)은 "4·3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상처를 주고 심려를 끼친 점, 모든 당원을 대신해 사죄드린다"고 밝혔고, 제75주년 4‧3추념식장 입구 주변에는 추모 현수막을 게첩했다. 

대한민국 중학교 교과서에서 제주4‧3의 기술 내용의 흐름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 본다.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에서 제주4‧3을 다룬 것은 1973년 교육출판사가 발간한 중학교 <사회>Ⅱ로 제주4‧3은 "폭동"으로, 여순10.19는 "반란"으로 서술하고 있다. 제주4‧3은 미국군사정부와 이승만 정권, 그리고 노태우 정권하에서 "빨갱이", "폭도", "반란"으로 규정되었고, 4.19혁명 후 5.16군사반란까지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론할 수 없는 금기어였다.

1972년 10월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영구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하고자 한 박정희 정권은 제3차 교육과정을 통해 중학교 사회와 국사, 도덕 과목을 국가가 편찬하는 단 하나의 교과서만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제주4‧3은 군사독재정권 기간 내내 "폭동"으로 규정하여 주입식 교육이 진행되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는 "남한의 공산도배를 사주하여 일으킨 반란"이라고 서술하면서 군경(군인과 경찰)"이 "진압"하였음을 처음으로 명시했다. 군인과 경찰의 진압 행위가 정당한 행위이자 국민을 위해 헌신한 행위로 서술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인 1990년부터는 "사건"이라 명명하였지만 내용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사회질서를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 일으킨 "폭동"으로 서술하였고, 김영삼 정부인 1997년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을 "국군과 경찰"이 진압했다고 서술하여 원인과 전개과정, 그리고 가해자, 피해 현황 등은 전혀 기술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부터 김영삼 정부까지 제주4‧3과 관련한 내용은 교과서 편제상 '정부 수립' 과정이 아닌 '한국전쟁' 영역에 서술되어 한국전쟁 과정에서 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느끼도록 교육을 한 것이다.

교과서의 4.3 서술, 어떻게 바뀌었나 
 
제주4.3을 다루기 시작한 1973년부터 중학교 역(국)사 교과서 서술 변화 흐름.
▲ 중학교 역(국)사 교과서의 제주4.3서술  제주4.3을 다루기 시작한 1973년부터 중학교 역(국)사 교과서 서술 변화 흐름.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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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인 2002년 국정 교과서 <국사>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과 반란"이 빠지고 "소요 사태"와 "사건"으로 기술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역사학계의 여러 논문과 1995년에 제주도의회에서 발간된 '제주도 4‧3 피해조사 1차 보고서', 1997년에 발간된 '제주도 4‧3피해조사 보고서' 등으로 4‧3에 대한 진실이 교육계에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민일보>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5000여 명의 증언을 10년 동안 500여 회를 연재되면서 수 많은 증언과 미국 기록 등으로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한 결과이다.

그리고 여야 정치권에서도 4‧3의 진실을 밝히자는 논의가 진행되며 여야 모두가 4.3특별법안을 발의했고, 1999년 12월 16일 여야 합의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아래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더 이상의 역사 왜곡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02년은 제7차 교육과정으로 교과서가 검인정 제도를 도입하면서 <한국 근․현대사 교육 내용 전개의 준거안> '국내외 정세와 연관'된 영역에 제주4‧3을 서술하도록 하였고, <교육과정>에는 '6․25 전쟁'영역에 서술하도록 하면서 출판사마다 관점의 차이가 있지만 '냉전주의적 반공주의 역사관'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중학교 검정제 교과서인 <역사> 중 미래인 출판사가 발행한 교과서에는 4․3사건의 전개 과정 외에, 이후 선거 재실시 사실과 2000년대 들어 전개된 정부 차원의 4․3 진상규명 작업까지 소개하여 진실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였지만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제주4‧3의 배경과 원인, 주도세력, 진행 과정, 희생자 및 피해 정도, 진압에 대한 헌법과 법률의 정당성 여부, 가해자(국가와 명령권 자), 진상 규명 노력 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그러다 2014년 '좋은책신사고' 출판사가 <역사>② 교과서에서 제주4‧3과 여순10.19를 소항목으로 분리하여 제주4‧3특별법과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아래 4‧3진상조사보고서)'를 중심으로 서술하기 시작한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에 4.3의 진실에 대한 서술을 막기 위해 2015년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고시했으나, 탄핵으로 왜곡된 교과서는 폐기되었다.

대전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중등 역사 교과서 집필자인 도면회 교수는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을 통해 4.3에 대한 접근 방식에 변화의 물꼬가 트였고, 참여정부 시기인 2006년부터 '폭동' 대신 '좌우익의 충돌 과정'으로 서술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중학교 검정제 교과서를 통해 가해자가 '군경'임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을 서술하기 시작했고, 2017년부터는 4‧3의 시작점을 '1947년 3월 1일'로 서술하고 있지만 4.3항쟁의 원인 중 하나인 육지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우익청년단체의 야만적 폭력성을 명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향후 가해자에 대한 부분이 추가 서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2017년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검인정 역사교과서 4‧3집필기준개발 연구용역'을 통해 중등 역사 교과서의 '집필기준안'을 마련하여 교육과정 학습요소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제출하고 교육부 고시가 이루어져 2019년 검인정 국사교과서부터 진실을 기술하는 변화가 이루어졌다.

2022년부터 중학교 역사 교과서부터는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제주4‧3의 배경과 피해 현황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했는데 동아출판의 교과서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교과서는 역사의 힘이 되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2017년 12월 23일 검인정 역사교과서의 4?3집필기준안 연구 용역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역사 교과서의 4?3집필 기준안 발표회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2017년 12월 23일 검인정 역사교과서의 4?3집필기준안 연구 용역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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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사까지 한 권에 다루다 보니 4‧3의 영역이 협소할 수밖에 없으나 편제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 기술되면서 해방 후 분단을 거부한 통일정부 수립에 초점을 두었고, 서술 내용도 제주4‧3특별법을 반영하고 있어 진실에 보다 더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민들은 지난 75년 동안 야만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지난 1999년 여야 합의로 '4‧3특별법' 제정을 이루어냈고, 2003년 10월 대한민국 정부가 '4‧3진상조사보고서'를 채택하는 데 힘을 모았다.

독재정권에 의해 냉전주의와 분단을 악용한 반공적 역사관으로 왜곡된 긴 시간만큼이나 진실을 밝히는 역사 또한 긴 과정을 통해 이루고 지고 있다. 정치권의 세력 결집을 위한 왜곡을 넘어 역사 정의와 백년대계를 위해 교과서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제주4.3항쟁은 오늘 미래세대의 교과서 기술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얻는 교훈의 지혜를 모을 때 진정한 역사의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태그:#제주4.3, #4.3항쟁, #역사 교과서, #검정제, #중학교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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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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