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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 존재의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다. 저마다 삶은 개별적인 서사의 흐름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엇으로 충만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은 매 한 가지인 듯하다. 종교, 사상, 물질 등등으로부터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바친다. 의미 부여는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손잡이다. 

이 작은 손잡이를 부여잡고 혼란속의 질서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체제는 인간의 욕망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 언제나 삐끄덕대며 굴러가기 마련이다. 모순을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서로가 연대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하지만 가끔 이러한 손잡이를 강제로 떼어내 내가 믿는 바가 진리이니 모두가 따르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바로 독재다. 조직 구성원을 하나의 수단 또는 숫자로만 받아들이는 세계다. 독재는 구성원을 참여자가 아니라 단지 관람객이자 길을 잃은 양 떼로만 인식한다. 

스탈린의 소련이 그랬다. 스탈린은 오로지 권력 쟁취가 삶의 목적이었고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은 처분 대상이었다. 그는 목적 달성을 위해 몇 백만 명을 죽이는 학살을 자행했다. 
 
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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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악의 유전학>은 인간을 목적으로 보지 않고 수단으로 생각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그린다. 우매하고 폭압적인 정치가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부모가 획득한 형질이 다음 세대에 유전될 수 있다고 믿은 소련의 과학자 리센코가 실패했던 농업정책을 빗댄 소설이다. 

그 정책은 추위에 내성을 가진 밀의 형질이 세대를 거듭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이론에서 진행됐다. 획득 형질이라는 개념이다.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을 유전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결론적으로 추위에 내성을 가진 밀의 다음 세대는 그러하지 못했다. 차가운 우크라이나 땅에서 모두 죽었고 황폐화된 밀 밭 위로 시민들은 굶어 쓰러졌다. 

소설은 추위에 내성을 가진 인간이 낳은 자식 또한 동일한 형질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 과학자의 만행으로 표현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독재자는 추위에 강한 용맹한 군대를 가지고 싶었다. 이러한 리더의 편협한 사고 방식에 과학자는 그럴 듯한 이론을 부여해 구체화했다. 차가운 얼음물에 빠뜨려 추위에 내성이 생긴 아이들을 골라내 결합하면 내성이 강한 인간이 태어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온갖 잔혹함만을 남긴 채 실패한다. 

이론은 잘못이 없다. 불완전한 인간은 언제나 완벽해지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이론이 선동 문구가 되어 인간을 수단, 실험대상으로 여기게 되면 문제다. 이론을 반대하는 의견이 묵살되고 곧 이어 의심은 병리화되어 치료 또는 제거 대상이 된다. 야망에 가득찬 독재자와 과학자의 만남은 이러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나는 이 소설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입과 눈을 막은 채 자신의 할 말만 하는 리더의 추악함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모든 이론가들을 경계하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이론은 잘못이 없다. 우리는 각자 작은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보편화될 수 있는지 여부는 정치와 분리된 과학이 판단할 과제이고, 어떻게 사회에 적용해야 할 지는 성숙한 시민들이 꾸준히 탁자 위에 올려 놓아야 할 정치적 논제이다. 

손잡이가 뜯겨져 무기가 되어 휘둘러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득과 실의 싸움이 된 지 오래다. 표를 얻기 위한 선동은 독재자가 권력 유지를 위해 일쌈는 폭력과 다름이 없다. 

아직 우리는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한 사회일까 되돌아 보게 된다. 

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은이), 쌤앤파커스(2023)


태그:#악의유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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