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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9월 2~7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이 주관한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학살 당한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 일용직 노동자에, 부두 하역 잡부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씨알(민초)이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치른 5박 6일간의 추모제 동행기를 쓰고자 합니다. [기자말]
(* 지난 기사, 일본행을 향한 저항할 수 없던 힘의 정체는?에서 이어집니다)
 
제노사이드 : 쥬고엔고쥬센 / 91 x 91cm / digital painting / 2023
 제노사이드 : 쥬고엔고쥬센 / 91 x 91cm / digital painting / 2023
ⓒ 조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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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감 중에 토끼는 쫑긋한 귀로, 사슴은 높은 뿔로 구별됩니다. 그렇다면 인간 사냥감 조선인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었을까요? 일본사람, 조선사람 둘 다 생긴 건 같으니 어떻게 골라 죽였을까 말이죠. 

3일 만의 6661명의 대학살, 길을 막고 '쥬고엔 고쥬센(15엔 50전)'을 말해보라고 했다고 해요. 소위 본토 발음을 할 수 있으면 일본인, 버벅대면 조선인, 이렇게 구분해서 죽였다는 거지요. '쥬고엔 고쥬센'은 태생적 일본 사람이 아닌 이상, 완벽히 발음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사람 중에도 혀 짧은 사람이 있었을 테니 '억울한 죽음'도 아예 없진 않았을 것 같네요. '억울한 죽음'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를 위로할까만, 사람 죽이는 기준이 이렇게 황당하고 졸렬할 수가...

며칠 전 한 독자가 월미도 박물관을 다녀온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관동대학살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나 봅니다.
 
월미도 박물관의 관동대학살 전시관
 월미도 박물관의 관동대학살 전시관
ⓒ 박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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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라카와 강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둔치 바로 건너편에 있는 봉선화집에서 만난 추모객들을 현장에서 다시 만납니다.

일본인들이 주관한 행사 다음날인 3일, 한국인들이 마련하는 추모제를 알리기 위해 우리 일행은 사람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홍보물을 나눠 줍니다. 어쩌다 그냥 지나치면 자기도 달라고 합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관심이 높았습니다.
 
 9월 3일, 한국인들이 마련하는 추모제 및 100년 전 관동대학살의 진상을 밝힌 홍보물
  9월 3일, 한국인들이 마련하는 추모제 및 100년 전 관동대학살의 진상을 밝힌 홍보물
ⓒ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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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손녀 은성이는 이번 행사를 위해 일본말을 암기했어요. 9월 3일, 오전 10시에 아라카와 강변에서 열리는 우리 추도제를 일본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밤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또 일본말로 초대장을 나눠줬지요. 그랬더니 초대장을 받은 한 일본인 중학교 교사가 한국인 추도제에 참석을 한 거예요. 뿐만 아니라 동영상까지 찍어서 주변에 나눴다고 해요."

은성이는 14세 소녀. 함인숙 목사의 손녀입니다. 함 목사는 누구인가? 희생자 6661명에게 '빙의'된 분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씨알재단이 주관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를 총괄한 분, 총책임자라는 말로는 그 소개가 너무나 밋밋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측에서는 처음으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를 총괄한 씨알재단의 함인숙 목사
 한국 측에서는 처음으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를 총괄한 씨알재단의 함인숙 목사
ⓒ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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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히 일본에 가고 싶어한 제가 한, 두 명에게 빙의된 것이었다면, 함 목사는 6661명에게 통째로 빙의되었다고할 밖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는 거지요. 더구나 본인의 온 가족을 동반하고.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태그:#관동대학살, #관동대지진, #씨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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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저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내 안에 개있다』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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