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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할 때 우리의 얼굴은 어떠한가? 피해 당사자, 직장 내 사건 처리 담당자/책임자, 목격한 동료 근로자 또는 가해 당사자 일 수 있다. 놀랍지 않게도 이 모든 사람들이 고용평등상담실에 문의를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용노동청에 신고하는 것? 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게 되면 해당 직장에서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을 인지했는지, 인지했다면 사건을 조사했는지를 묻는다. 고용노동청은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을 지키며 감독하는 것이 역할이라고 한다. 피해자와 동료 근로자들의 안전한 직장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일까?

직장 내 성희롱 뿐만 아니라 고용상의 성차별 또한 수많은 근로자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해고 대상이 되거나 다른 남성 동기들은 전부 승진하는데 본인만 승진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단순히 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 외에 회사 내부 시스템을 통해 대응하는 법, 행정과 사법을 통해 권리회복하는 방법 등 수많은 선택지를 알려주는 곳, 피해를 겪으며 심신이 고달파진 내담자에게 따뜻한 힘을 전해주는 곳, 전문가의 심리치유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곳이 고용평등상담실이다.
 
지난 봄, 직장에 다니던 중 저희 부부에게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기쁜 마음에 직장에 바로 알리고 싶었지만, 안정기가 지나야 된다는 주변의 이야기들에 5월 중순에 직장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11월 초에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이어서 사용할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축하를 해주었고 많은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7월 중에 같은 팀의 팀장님이 9월말 부로 퇴사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처음엔 새로운 팀장님이 바로 채용될 것이라는 기대에 계속 근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9월 초가 되었는데, 아직 새로운 팀장님의 채용 소식이 없어 그간 어떤 업무를 해야 할지 상의하기 위해 인사과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처음 면담시에는 11월 초 출산전후휴가에 들어가기 전까지 무급휴직을 사용하고, 이후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이 가능하도록 논의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무급휴직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으니 다른 부서로 이동 근무할 것을 요청했으나, 근로계약서 상 저의 업무가 해당 팀 업무에 한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이 되어도 인사과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면담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면담에서 인사팀장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저의 업무는 근로계약서 상 해당 업무로 한정되어 있어 다른 과에서 근무를 하게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무급휴직과 출산전후휴가, 그리고 육아휴직까지 주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연차와 퇴직금 발생으로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계속 근무하게 할 수가 없고, 결국 저를 해고하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말씀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눈물만 나왔습니다.

그 이후 노동청에 상담도 해보고 인터넷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여럿 찾아보았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서 서울에 여성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전화해서 제주도에서 도움받을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제주의 고용평등상담실을 알게 되었고, 제주도에 이런 기관이 있다는 것이 생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처음 전화 상담 때, 현재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물어봐 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모습에 너무나 감동이었습니다. 전화 끝에 다시 전화 상담을 약속하고 통화를 끝마치려는데 상담원 선생님이 "선생님, 힘내세요!" 라는 말을 하셨고, '진심으로 내 상황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 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날 오후 다시 상담원 선생님의 전화가 왔고, 대략적인 상황에 대한 내용은 전달 받았다고 하시면서 며칠 뒤 제주 고용평등상담실에 방문 상담을 약속했습니다. 통화 종료 전 방문 상담 전에 회사와의 대화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먼저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며칠 뒤 방문 상담을 위해 제주 고용평등상담실에 시간에 맞춰 방문했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환영해 주셨습니다. 상담 시 저의 상황에 대해 미리 노무사와 변호사분들의 자문을 받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고, 방문 상담 전 궁금한 내용에 대해 많이 적어갔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자문을 받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상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회사 직원들조차 저의 상황에 공감해주지 않았던 부분이 있던 터라, 많이 공감해주시고 저의 임신 건강 상태에 대해 걱정해주는 모습이 마음의 안정을 주었습니다.

2주 정도가 지나 9월 마지막 주까지 몇 차례 더 회사와의 면담을 진행했고, 회사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에 상담원 선생님과의 전화 상담을 몇 번 더 진행하며 현재 상황을 계속 물어봐 주셨습니다. 회사에서 저를 해고하게 됐을 때 그 해고가 부당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라고 말해주셔서 2주 정도 되는 시간 동안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근무일에 회사에서 다시 면담을 요청했고 결국 제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쁜 마음에 상담원 선생님께 문자 연락을 드렸고, 소식을 들은 선생님이 바로 전화를 주셔서 너무 다행이라며 본인이 더 기뻐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처음 방문 상담 시 회사와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계속 근무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 보여서 좋은 쪽으로 해결이 될 것 같았다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권고사직 요구에 응하지 않고 부당하다는 의견을 계속 회사에 이야기했고, 회사에서는 저를 해고하려고 했던 것들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 그런 어필을 하는 중간중간 너무나 불안한 마음은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상담을 진행하며 안정을 얻었습니다.

저처럼 임신, 출산을 이유로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사례가 아직도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저도 고용평등상담실처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다는 것을 친구를 통해 알지 못했다면 회사가 원하는 대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23조, 시행규칙 제3조'를 바탕으로 24년간 운영되어온 고용노동부의 민간위탁 상담실이다. 고용상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등으로 피해받은 근로자에게 양질의 상담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속한 권리구제 및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전국에 19개소가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다.

매년 고용평등상담실의 규모와 역할의 확장을 위해 예산이 증액되어왔고 기재부가 고용평등상담실의 성과를 높게 평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예산안에서 고용평등상담실은 일부 삭감이 아닌 폐지를 맞이하게 되었다. 위의 내담자 사례처럼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싶은 열정 가득한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사라질 수 있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노동청에 상담도 해보고 인터넷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여럿 찾아보았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민간 19개 상담실 대신, 대안으로서 전국의 8개 지청에 1-2명의 근로감독관을 두어 고용평등 상담업무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해당 상담이 과연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상담지원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더욱이 고용노동청은 진정에 따른 판단을 내리는 기관인데 피해자 상담을 어떻게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전국의 19개소 고용평등상담실에서 1-3명의 상담원이 주중주말, 철야를 가리지 않고 내담자들을 적극 상담, 지원해온 사건들을 단 8명의 감독관이 해낼 수 있는 일인지도 따져보아야한다.

고용노동청의 진정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닌 경우, 예를 들어 회사 내 고충처리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 좋을 사건인지, 사법기구를 통해야할 사건인지, 그러한 판단이 선다면 고용노동청에 설치된 상담 담당 감독관이 이를 상담, 지원할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우리에게는 내담자와 깊이 있게 소통하고 지원해나가는 전문적인 고용평등상담실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제주여민회 소속입니다.


태그:#고용평등상담실, #여성, #노동, #성평등,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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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노동자회는 1987년 여성노동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여성노동 상담 및 교육·선전 활동을 통해 성차별, 모성보호, 성희롱, 비정규직, 보육문제 등 다양한 여성노동문제를 풀어가며, 여성노동자를 위한 정책과제를 개발하고, 올바른 여성노동 정책이 수립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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