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둠이 내린 금호강 팔현습지. 어둠이 내리면 야생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러면 인간이 출입해선 안된다. 그것이 공존의 질서다.
 어둠이 내린 금호강 팔현습지. 어둠이 내리면 야생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러면 인간이 출입해선 안된다. 그것이 공존의 질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지난 3일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늦은 시간. 불현듯 팔현습지가 보고 싶어졌다. 팔현습지의 터줏대감 수리부엉이 부부를 비롯하여 수달 가족 등 팔현의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해거름 녘은 이들 수리부엉이 부부를 비롯한 야생의 친구들이 사냥을 나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동구 방촌동에서 강촌햇살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 금호강 하천 숲에 들었다. 왕버들과 수양버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이 숲에 수달이 왕왕 출몰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직접 수달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흔적을 발견했다. 바로 지난밤 수달이 배설해 놓고 간 배설물이다.

향기마저 솔솔 풍기는 수달의 똥

금호강 안으로 뻗어 들어간 왕버들 가지가 길게 드러누운 그 중간에 수달이 배설을 해놓았다. 앙증맞은 수달의 똥이 그곳에 이쁘게 놓여 있었다. 똥 중에 가장 이쁜 똥이 바로 이들 야생의 친구들의 똥이다.
 
금호강으로 뻗은 나무등걸에 싸질러놓고 간 수달의 똥. 아름답고 향기마저 풍긴다.
 금호강으로 뻗은 나무등걸에 싸질러놓고 간 수달의 똥. 아름답고 향기마저 풍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야생에서 나온, 꼭 필요한 먹이만 먹고 배설한 똥이기에 냄새도 없을뿐더러 그 형태도 다 달라서 독특한 매력이 있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향기가 솔솔 풍길 정도다. 그만큼 간절히 그들을 찾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생선 가시와 물고기 비늘이 점점이 박힌 저 앙증맞은 수달의 똥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하식애 절벽 앞으로 가 팔현습지의 터줏대감인 수리부엉이 부부 '팔이'(수놈)와 '현이'(암놈)를 찾았다. 그러나 아직 이른 시간인지 녀석들도 보이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팔현습지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400년 원시 숲을 이루고 있는 왕버들숲으로 들었다. 혹여나 수리부엉이 부부가 이곳에 와서 뱃속에 들어있는 '펠릿'(소화가 안 된 덩이를 다시 뱉어내는 것)을 뱉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왕버들숲의 가장 안쪽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수리부엉이는 그곳에도 없었다.

찾았던 수리부엉이와 그 '펠릿'은 못 만나고 대신 수달의 똥을 이곳에서도 만났다. 한 곳이 아니었다. 세 곳에나 똥을 싸질러 놓았다. 한 마리가 아니란 소리다. 똥을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물결이 인다. 파동 소리도 들리더니 뭔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감적으로 야생의 친구란 것을 알았다. 조용히 폰을 꺼내 켰다. 그리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파동은 더 가까워지더니 이내 뭔가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수달이었다. 그렇게 오매불망하던 수달이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팔현습지 수달 가족의 유영
ⓒ 정수근

관련영상보기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뒤이어 또 한 마리가 머리를 쳐들고 이쪽으로 유영해 온다. 녀석도 나를 봤다. 한참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그러면서 마치 "저 녀석은 뭐야? 왜 우리 화장실에 서 있어?"하는 듯했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살피더니 이내 획 들어간다. 그러면서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탐색의 시간인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더니 이내 저 멀리 사라진다. 녀석들은 강 한가운데 철새들의 무리 속까지 들어가 주변을 휘저어놓는다. 놀란 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수리부엉이가 울었다 그리고 날아올랐다

수달이 저 멀리 유영해 가는 것을 보고 왕버들숲을 돌아 나왔다. 돌아 나오는 데 익숙한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팔현습지 수리부엉이의 세레나데
ⓒ 정수근

관련영상보기

   
"우~~우 우~~우" 가만히 들으니 그것은 수리부엉이 울음소리였다. 짝을 찾는 저 익숙한 소리. 이 시간에 들리는 저 소리는 녀석이 사냥을 나간다는 신호다. 곧 하식애 둥지를 떠나 사냥을 위해 날아오른다는 신호다.

다급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점점 선명하게 들린다. 저 멀리 하식애에서 벌써 이동해 왕버들숲 가까운 나뭇가지 위에 앉아 특유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수리부엉이 수놈 '팔이'이 노랫소리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녀석을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다시 폰을 꺼내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렀다. 선명한 녀석의 세레나데를 담을 수 있었다. 소리뿐만이 아니라 녀석이 사냥을 위해 날아올라 저 멀리 반대쪽 아파트촌 쪽으로 날아가는 모습까지 그대로 담을 수 있었다.
 
수리부엉이 부부 수놈 팔이의 모습.
 수리부엉이 부부 수놈 팔이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저 멀리 아파트 숲 꼭대기에 가서 다시 녀석은 이곳 팔현습지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은 어느 녀석으로 식사하지?"하며 저 강 가운데 무수한 철새들을 지켜볼 것이다. 그러다 어둠이 더 깊어 오면 쏜살같이 내달려 오리 한 마리를 낚아챌 것이고 사냥감을 물고 와서 둥지를 찾을 것이고 그러면 그곳에 이미 포란(동물이 산란한 후 알이 부화될 때까지 자신의 몸체를 이용하여 알을 따뜻하게 하거나 보호하는 행위)에 든 수리부엉이 '현이'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팔현 친구들의 일상이다. 해거름 녘에 도착해서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까지 팔현습지에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으니 내가 야생이고, 야생이 바로 나였다. 내가 수달이고 수리부엉이였다. 그들과 내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물아일체.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녀석들이 내 앞에 턱 모습을 나타낸 이유가 뭘까? 야생의 존재들은 인간이 있으면 절대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녀석들이 최근 자주 출몰한다. 왜?

수달과 수리부엉이 부부의 의문

환경부발 '삽질'인, 하식애 절벽을 따라 그 앞으로 8미터 높이의 산책로가 놓이게 생겼다는 것을 그들이 육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제발 이곳만은 좀 지켜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지 않고 이들이 요즘 부쩍 자주 이곳에 출몰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벌써 14종의 법정보호종 야생의 친구들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내밀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더 많은 멸종위기 야생의 친구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들의 출현 이유를 생각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 제발 좀 함께 살자!"

그러기 위해선 공존의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 개발이 가능한 곳과 개발해서는 안 되는 곳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고, 인간이 접근해야 할 곳과 접근하지 말아야 할 곳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공존의 질서를 깨려 하는 환경부발 '삽질'
 공존의 질서를 깨려 하는 환경부발 '삽질'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원래 길이 없던 하식애 절벽 앞으로 새로운 길을 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어둠이 내리면 더 이상 팔현습지 쪽으로 인간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원칙만 지켜지면 이들 야생의 친구들과 우리 인간이 비로소 공존할 수 있다. 지금 그 공존의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그 질서를 깨려 하고 있다. 바로 환경부가.

지금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가 이 공존의 질서를 깨고 하식애 절벽 앞으로 8미터 높이의 새로운 길을 내서 인간들이 밤낮으로 그곳을 통행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니, 환경부가 왜?"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유다. 저 수달과 수리부엉이 부부의 의문일 것이다.
 
멸종위기종들의 마지막 서식처 팔현습지
ⓒ 정수근

관련영상보기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태그:#금호강, #팔현습지, #수리부엉이, #환경부, #공존의질서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