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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내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질해
그놈의 손가락질 받기 싫지만
위선은 싫다 거짓은 싫어
못생긴 내 얼굴
맨 처음부터 못생긴 걸 어떡해
- 한돌, '못생긴 얼굴' 노래 가사 중 


얼굴이나 미에 대한 감각, 우리의 기준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걸까? 예전 어렸을 때 같은 반 남자아이가 우리 엄마를 보고 '할머니'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말문이 막힌 채로 몸이 기우뚱거렸다. 그 와중에도 엄마를 가만히 보면서, 그렇게 보이나, 그게 맞나 하며 타인의 시각을 어렴풋이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딸 셋 중 둘째인 나는 자라면서 예쁘다는 말을 들은 적이 거의 없다. 동생은 어딜 가나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내가 그리 예쁘지 않다는 걸 난 어려부터 알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못생긴 내 얼굴'을 재밌다고 부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손가락질을 받진 않으니까, 내가 그렇게 못 생기진 않았나 보다고.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객관화하며 성인이 된 나는 내 외모에 대해 별다른 불만도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피부는 콤플렉스였는데, 10대 내내 난 여드름이 흔적을 왕창 남겼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그랬다면, 흐릿한 눈썹이나 튀어나온 광대처럼 아쉽지만 애틋한 내 얼굴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얼굴에 오돌토돌한 게 만져지면 그냥 만지고, 짜면 뭔가 나오니까 짜고, 어떻게든 해야 할 거 같아서 어떻게든 하는 사이, 여드름은 엄마도 났었고 아빠도 났었고 언니도 났고 사춘기는 원래 그런 거라면서 별다른 보살핌은 받지 못하고 "쯧쯧" 하는 얼굴만 마주치는 사이, 하얗고 뽀얗던 내 피부는 노랗고 붉고 구멍난 얼굴이 되었다.

내 욕망이나 관심사가 외모 쪽은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은 듯 살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화장을 해야 할 때마다 못내 속상하긴 했다.
 
아이가 내게 쓴 편지. 왜 여지를 남긴 걸까
 아이가 내게 쓴 편지. 왜 여지를 남긴 걸까
ⓒ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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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난생처음 강남의 피부과를 찾아간 적이 있다. 실장님이었나 하는 분과 따로 조그만 방에 들어가 먼저 설문조사 같은 문답을 하는 것도 생소했고, 대화의 분위기며 어조며 모든 게 굉장히 낯설었다. 괜히 조바심이 나서 가격을 물었고, 이런저런 시술을 몇 회, 이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300만 원'이란 대답을 들었다.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상상도 못 한 액수였다. 그날 아침 엄마에게서 '무릎이 아픈데 수술하려면 300만 원'이란 얘길 들었었는데 말이다(공교롭고도 얄궂은 인생이여).

잠시 후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이유는 지금도 불가사의인데, 별로 나를 꼬드기려 하지 않았다. 다짜고짜 하는 말이, "피부과에서 어떤 시술을 해도, 아기 피부처럼 될 수는 없다"였다. 아주 조금 나아진다고. (예?) 그리고는 내게 "당신과 나처럼 이렇게 피부가 두꺼운 사람들이 여드름도 많이 나고 기름도 많고 젊을 때는 안 좋은 것 같지만, 주름이 잘 안 생겨서 나이 들수록 괜찮다"라고 말했다. (예?)

옷가게에 들어와 가격표부터 보는 사람을, 그러니까 털어도 별 게 없는 손님인 걸 알아본 건지, 아니면 정말 일말의 진실함과 선의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무언가 귀찮았던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게 만약 300만 원이란 돈이 있다면 그걸 써야 할 곳은 다른 곳일 거라고 정신을 차렸다. 

그 뒤 임신-출산-육아의 사이클을 세 번 도는 동안 30대가 지나갔다.

그사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이뻐져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타오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외모에 대한 욕망은 0에 수렴했다. 화장은커녕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겨우 씻었고, 거울 볼 겨를도 없어서 피부나 콤플렉스 같은 주제로 어떤 상념에 빠질 틈이 없었다(물론 아이들을 공주같이 입혀 나갔다가,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소위 '현타'가 오는 날은 종종 있었다).

게다가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아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세상엔 마치 '예쁜 얼굴'만 존재하는 것 같아서, 궤변 같지만 나도 이쁘겠거니, 무의식적으로 여기게 된 것도 있다. '맑고 투명하다'는 진부한 표현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는 그 눈동자와 시간을 잊은 채 마주하다 보면, 깨닫곤 했다. 이 눈은 내 겉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는 걸. 존재로서 '나'를 보고,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그러면 문득, 기억날 리 없는 나와 나의 엄마를 생생하게 상상했고, 두 모녀 사이의 30여 년 동안 들었던 이런저런 말들, 짐작과 판단들은 아주 가볍게 떨쳐지곤 했다.

아이들의 말 역시 믿을 게 못 됐다. 배운 게 "아유, 예뻐라"여서 그런지, 나만 보면 "예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사랑한다'의 다른 말이어서, 진심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불시에 아이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엄마, 엄마 얼굴에 까만 깨 같은 건 뭐야?
엄마, 여기 이빨이 노래.
엄마, 엄마 얼굴에 광대가 튀어나와서 피에로 같아.


흠칫 놀라긴 했다. 곧장 비언어적 의미를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 역시 비언어적 의미를 담지 않고 아이들에게 답했다.

"응, 이거 여드름 흉터야. 여드름 났을 때 손으로 마구 만지고 짜면 안 돼. 세수도 잘해야 하고.", "이빨? 나이가 들면 색깔이 좀 변해. 하얀 게 좋으면 양치를 더 열심히 하자", "피에로? 그렇구나. 귀엽다는 말이니?"

아직 아이들은 내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자기 전에 내 얼굴 곳곳에 뽀뽀를 100번 한다. 까만 깨가 있든 개기름이 있든 얼굴을 비벼 댄다. 이러니 내가 다른 인간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 아이들이 스스로를, 엄마를 '객관화'해서 보게 되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다. 이런 꿀 떨어지는 순간들은 아마도 나의 기억에만 남겠지만, 지금은 지금으로 충만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스토리에도 올립니다.


태그:#육아, #에세이, #객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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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 일진. 세 아이를 키웁니다. 육아 집중기 12년이 전생 같아서, 자아의 재구성을 위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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