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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자료사진).
 교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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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 전부터 한 중학교에서 협력 강사로 일하고 있다. 교사들은 3월 2일에 학기를 시작하지만 비정규직인 협력 강사는 새 학기의 바쁜 업무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채용 절차를 거쳐 대략 4월부터 일을 시작하게 된다(학교 사정에 따라 일정에 차이가 있다).

협력 강사는 정규수업 시간에 담당 교사와 함께 교실에 들어가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방과 후에는 이런 학생들을 따로 모아 개별적으로 수준에 맞게 지도하는 일을 병행하기도 한다.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향상시켜,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생겨난 제도이다.

올해 새 학기의 시작을 앞두고 새로 면접을 보기 위해 학교에 갔다. 지난해에 근무했던 학교라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다시 면접시험을 치르려니 다소 긴장되었다.

교무실 한구석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데, 수업 시간 종료 음악이 울리자 아이들이 삼삼오오 교무실로 들어왔다. 아이들 중에는 지난해에 가르쳤던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한 아이가 교무실에 들어서면서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뛰어왔다.

"쌤! 저 이제 2학년 꺼 해요."

지난해 초등학교 교과과정으로 치러진 학력 진단 평가에서 성적이 미도달되어 방과 후에 나와 함께 공부했던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인데도 분수 계산이 안되어서 수업시간 중에 담당 선생님께서도 따로 신경을 쓰셨던 아이였다.

"그래? 방학 동안에 진짜 열심히 했구나."
"네. 저 이제 수학 짱 잘해요."
"그럴 줄 알았어. 선생님이 너는 마음만 먹으면 잘할 거라고 했잖아."
"다 쌤 덕분이에요. 사랑해요."


아이는 밝게 웃으며 양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크게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순간 '심쿵!' 했다. 이제까지 받았던 어떤 애정 표현보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하트였다.

불편한 존재는 아닐까 망설였는데

사실 협력 강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이 많았다. 한 교실에 두 교사가 함께 있으니 서로가 불편할 것 같았다. 어찌보면 협력 강사보다 훨씬 더 불편한 입장일 수 있는 담당 선생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눈치껏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자칫 수업시간 내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하는 일 없이 그냥 서 있게 되거나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불편한 존재로 여겨질까봐 망설여졌다.

또, 공부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공부 습관이 안 잡혀 있어서 산만하거나 이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참을성 있게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또 선생님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정식교사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자격지심도 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하던 나의 학창 시절과는 교육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학교에서는 성적이 아주 중요하게 여겨진다. 더욱이 많은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선행학습을 하면서 아이들간의 학력 격차는 더욱 벌어져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수업에 참여하기가 힘들다.

간혹 성적은 나쁘지만 성격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학급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들도 있지만, 방과 후에 나에게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수업시간에 존재감이 별로 없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다.

내가 맡은 수학은 아이들이 특히나 어려워하는 과목이라서 수업 첫날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라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포기부터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매시간마다 꼭 공부와 관련이 없더라도 칭찬거리를 찾아내어 칭찬을 해주기 시작했다. 제시간에 늦지 않게 온 것을 칭찬하고, 글씨를 예쁘게 쓴다고 칭찬하고, 심지어 화장이 예쁘게 되었다고도 칭찬했다.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한 개를 잘 풀어내면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듣기 좋은 말들을 총동원하여 호들갑스럽게 칭찬해 주었다.

아이들은 다소 과장된 칭찬에 멋쩍어하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점점 말이 많아지고 공부에도 점차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하는 칭찬이었지만, 자꾸 하다 보니 아이들의 장점이 더 많이 보이고 진심으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고작 일주일에 한 시간 밖에 안되는 수업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에게 주목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학교 교문을 나서며 하루 중 기분좋게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쌤 덕분이에요"했던 아이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머리 위로 크게 그려준 하트가 자꾸만 생각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처음으로 협력 강사 일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아이의 인생에 아주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아 보람이 느껴졌다. 진짜로 좋은 선생님이 된 것 같았다.

면접 결과, 올해도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에게 받은 칭찬 한마디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칭찬은 어쩌면 아이들만큼이나 나에게도 필요했던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렵력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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