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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데려온 대황금명자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앞의 새싹은 분홍상사화이다.
 며칠 전 데려온 대황금명자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앞의 새싹은 분홍상사화이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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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봄이다. 봄은 꽃과 나무의 계절이다. 움튼 새순의 밝은 연두색을 바라보면 마음이 절로 맑고 깨끗해진다. 피어오른 꽃망울을 보면 내일이 기다려진다. 매일 움트는 새순 그리고 꽃망울은 나를 아침마다 마당으로 불러낸다. 봄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 설렘을 더 채우기 위해 목단, 미산딸나무, 명자나무, 홍매화, 감나무, 백리향을 데려왔다. 당분간 동네 5일장에 나갈 때마다 꽃과 나무를 데려오는 재미를 누려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 꽃값은, 퇴임 2년 전까지는 책값으로 나간 돈이다. 교사 퇴임을 앞두고 시골살이를 계획하면서, 새로운 책을 읽는 대신 읽었던 책을 거듭 읽기로 마음먹었다. 이성과 감성이 둔해 아직 제대로 스며들지 않았던 책을 거듭 읽고, 장식으로 꽂혀있던 책들을 다시 펼치기로 했다.

집에 있으면서도 손이 거듭 가지 않았던 2000여 권의 책은 모두 나눔을 했다. 새 책을 사는 것은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시골살이할 집을 계약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나무가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집 주인 어른의 말씀은, 집이 산으로 둘러싸여 사방이 온통 나무인데 굳이 집에까지 나무를 심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원 가꾸는 데는 취미가 없으셨던 모양이다.

오래된 건물, 멋있는 건물에는 품격 있고 멋있는 나무가 반드시 있다. 나무는 건물의 역사이고 품격이라 생각해 왔었다. 나무는 하루아침에 품격과 멋을 갖출 수 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집에 어울리는 좋아하는 나무 아래서 쉬면서 삶을 되돌아보고, 나무 그늘에서 아내와 벗들과 이야기 나누는 늙은이의 여유를 상상해 왔다. 그런데 계약 당시 나무가 없다는 것이, 그 때는 다른 좋은 점들에 묻혀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뒤늦게 이를 알고 '그러면 내가 심고 가꾸어야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품격 있는 나무를 데려오려 해보니, 나무값보다 옮기는 비용이 더 들었다. 종종 어린 나무를 심거나 씨앗을 받고는 하는데, 그러면 '이게 언제 성장하여 그 나무의 멋을 느낄 수 있지?' 싶어져 또 조급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 어린 나무를 심고 가꾸며, 기다리는 즐거움만으로도 남은 삶을 넉넉하게 채울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기다리며 즐기는 내공으로 옮겨 갔으면 하는데, 그건 언제쯤 가능할까?

2년여 동안 주말주택으로 오가며 마음에 드는 꽃과 나무가 있으면 데려와 심다 보니 꽃들은 촘촘하게 모여 있기도 하고, 섞여 있기도 한다. 어떤 나무는 햇볕이 부족하고, 어떤 건 배수가 잘 되지 않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였다.

꽃들의 거리를 조정하고, 같거나 비슷한 것끼리 모아 두면 더 잘 살고 이쁠 것 같다. 생각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야 할 때는 입에 발린 말을 하거나, 심하면 다툼이 일어나 뒷맛이 개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거리가 필요하지 않은가?

할미꽃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지난해 집에 널리 퍼져 있는 작약을 한곳으로 모아 작약 전용 정원을 따로 만들었다. 다양한 종류의 작약은 봄의 화사함을 더해 줄 것이다. 옮기다 끊어진 뿌리는 작약차로 만들어 물 끓일 때마다 조금씩 넣었다.

좋은 공기에 좋은 물까지, 올해는 작약들의 화려함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목단을 데려왔다. 작약정원 앞에 목단정원을 따로 만들었다. 아직 목단이 어려 그 품격을 발휘할 수 없겠지만, 서서히 정원을 다스릴 위엄을 갖추어 나가길 기대한다.
  
작약의 화려함이 넘치지 않도록 목단정원을 작약정원 앞에 만들었다.
▲ 목단정원과 작약정원 작약의 화려함이 넘치지 않도록 목단정원을 작약정원 앞에 만들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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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꽃을 정원에 꼭 심어보고 싶었다. 마침 옆집에서 달리아 구근을 50여 개를 나눔 해 주었다. 이 달리아를 모두 다 소화하려면 달리아 전용 정원이 두 곳이나 필요하다. 먼저 여러 꽃이 섞여 있는 정원을 비웠다.

이참에 같거나 비슷한 꽃들을 함께 살 수 있도록 했다. 또 하나는 전 주인이 텃밭으로 썼던 곳을 갈아엎어 달리아 정원으로 만들었다. 구근을 하나하나 심으면서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할 이 녀석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설렘은 행복이다.
 
달리아 구근을 심기 위해 달리아 정원을 두 곳에 만들었는데 그 중 한 곳.
▲ 달리아정원1 달리아 구근을 심기 위해 달리아 정원을 두 곳에 만들었는데 그 중 한 곳.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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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데려오고 싶은 미산딸나무는 현관 입구에 심어 놓았다. 라일락과 함께 예쁜 꽃으로, 단풍으로, 아름다운 향기로 현관을 나서는 나를, 찾아오는 손님을 반겨줄 것이다. 심어놓고 보니 한 그루를 더 데려오고 싶다. 다음 5일장을 기다린다. 

옛날 집 안에는 심지 않았다는 명자나무 4그루를 데려왔다. 뒷마당으로 가는 길목에 심었다. 흑광명자나무의 꽃은 짙은 붉은색이다. 우연히 대황금명자 나무를 보고 또 다른 매력을 느껴 2그루를 더 데려와 서쪽 정원에 나란히 심었다. 맺힌 꽃망울이 나를 설레게 한다. 

마당 곳곳에 피어난 매발톱, 금낭화, 할미꽃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할미꽃은 집 곳곳에 널리 퍼져 있어 정원에 자리 잡고 남은 것은 석축으로 옮겨 주었다. 

할미꽃 모습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막일도, 온갖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보고 이웃이 그 힘든 삶을 위로하면, 어머니는 '산 사람이 그것도 안 해?'하시면서 태연히 받아넘겼다. 

나이 들고 병이 들어 힘이 없어지니 어머니의 의연함도 차츰 사라져 갔지만, 그래도 어른의 품위를 끝까지 잃지 않으려 애쓰셨다.
  
할미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인 할미꽃밭
 할미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인 할미꽃밭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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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봄은 아름다워요'라고 속삭이는 듯한 튤립도 무리를 만들어 주고, 젊은 선비의 맑고 꼿꼿한 기상을 갖춘 붓꽃도 한 곳으로 모았다. 무스카리는 나무 둘레에 무리를 지어놓아 작아도 그 빛남을 잊지 않도록 했고, 아직 무리를 이루지 못한 도라지꽃, 우단동자, 초롱꽃 등은 미안하지만 조금 더 여러 꽃과 어울려 있도록 했다. 

뒷마당에는 진달래, 벚나무와 삼색병꽃, 라일락을 심어 뒷마당이 허전하지 않도록 했다. 날씨가 좀 더 따듯해지면 뒤뜰의 빈 곳을 봉숭아와 메리골드로 가득 채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늘진 곳이나 구석진 자리에는, 잡초를 이겨내고 아름다움도 보여주는 지피식물인 꽃잔디, 백리향, 백문동 등이 채워주길 부탁했다.

나는 시골살이하기 전까지 삽질을 한 차례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 손을 보고 모두 한결같이 귀하게 컸거나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손이라고 한다. 그런데 퇴임한 내가 매일 서툰 삽질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무릎이 아파 저녁에는 파스를 붙이고, 종종 손가락 마디가 저미고, 허리도 결린다.

만약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실 수 있다면 '시골살이하고자 하는 놈이 그것도 안 해?'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어쩐지 오늘은 그 말씀이 그립다.

태그:#시골살이, #정원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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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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