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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자, 작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대리기사의 사소한 이야기다. 그러나 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한 움큼의 희망을 얻어 가시길.[기자말]
처음 벤츠를 탔던 날을 기억한다. 대리운전으로는 아니고, 차량을 보내는 차량 탁송(남에게 부탁하여 물건을 보냄)이었다. 살면서 내가 이렇게 벤츠 타는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자리에 털썩 앉으니 탁송이고 뭐고 그저 '나 벤츠 탔다'는 인식이 차올라서 일이 아닌 복지 같이 느껴졌다. 

그 기분에 잠시 취해있다가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해 볼까 하며 시동을 걸었다. 오른손은 익숙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나섰다. 어라, 기어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무슨 코브라 머리 같이 생긴 것이 있었다. 아무리 잡고 흔들어 봐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기어를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검색사이트에 '벤츠 기어변속'을 검색했다. 와이퍼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기어라고 했다. 그제야 보였다. 잡고 D로 올리니 그제야 차가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운전자로서, 벤츠는 확실한 타는 맛이 있었다. 어릴 적 봤던 전설의 애니메이션 <사이버 포뮬러>에 나오는 것처럼 모드 변신(?) 같은 것이 있었다. 다른 모드들은 미세한 차이였는데 '스포츠 모드'를 설정하는 순간 부스터를 사용한 것처럼 웅장한 소리와 함께 차가 스포츠카가 되어서 쭉쭉 나갔다. 

대리운전이었다면 당연히 이렇게 못했을 텐데 탁송이었기에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었서 '벤츠 맛'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밟는 대로 나간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싶었다. 무사히 탁송을 완료하고도 꽤 여운이 남았다. 한 시간 남짓 신나는 모험을 한 기분이었다. 사회적으로 어떤 하나의 상징과 같이 되어버린, 그놈의 '벤츠'를 타봤다는 건 굉장한 경험치였다. 

그 후로도 외제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벤츠, BMW, 아우디를 다 타봤다. 그 외에도 수많은 차들을 타봤다(아쉽게도 포르셰, 마세라티는 아직 타보지 못했다. 물론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는 타라고 해도 못 탈 것 같다.) 다양한 차들을 몰아볼 수 있는 게 대리운전의 묘미인 듯하다. 이제 반년 정도 된 애송이 대리지만, 그간 몰아본 차종을 헤아려보면 못해도 100개는 넘으니 말이다.

대리운전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로부터 '어떤 차가 가장 좋았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스펙으로만 볼 때 제일 좋았던 것은 벤츠 S클래스 560이었다. 차가 아니라 우주선인 줄 알았다. 웅장하기 그지없었고, 승차감이나 안정감이 대단했다. 무엇보다 도로에서 깜빡이를 켜면 뒤에 있는 차들이 '먼저 가십시오'하면서 다가오지도 않는 신기한 풍경을 보게 만들었다. 

BMW 최신형도 타봤는데 벤츠보다 더 힘이 좋고 묵직한 느낌이어서, 아마 둘 중에 고르라면 BMW를 살 것 같았다. 아우디는 사실 이 두 차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깨끗한 느낌이 들어서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차를 잘 아는 형에게 말하니 그건 아우디가 그만큼 벤츠나 BMW보다 한국차스러운 면모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아우디를 무시하는 발언은 아님).

 
더 뉴 카니발
 더 뉴 카니발
ⓒ 기아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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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래도 역시나 가장 좋은 건 지금 '내 차'였다. 내 차의 역사를 잠시 말하자면, 나의 첫 차는 아반떼 xd였다. 선팅도 안되어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창문도 수동으로 내렸으며, 엉따가 없어서 겨울에는 30분 전에 미리 시동을 걸어놓지 않으면 앉을 수도 없었다. 고마웠지만, 그 차를 가지고 다닐 때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 차를 타다가 7년 전에 친한 형에게 300만 원을 주고 산 두 번째 차는 무려 선팅이 되어있어 속내를 감출 수 있었고, 창문도 버튼으로 내릴 수 있었으며, '엉따'가 있어서 겨울을 든든하게 만들어주었다. 첫 시승식 겸, 아내와 아이, 그리고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태우고 함께 드라이브 겸 외식을 하러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확실히 기뻤다. 

우리 가족의 드림카

그렇게 나를, 우리 가족을 수많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었던 차이기에 나는 내 차가 제일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남의 차가 아닌 내 차이기에, 질서 안에서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실컷 남의 차를 타다가 내 차를 타면 성능과 상관없이 훨훨 날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다만, 이 차를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는 맞는 것 같다. 노쇠하기도 노쇠했고, 세월의 흔적도 여실하지만, 무엇보다 수술하기엔 차 값을 넘어서 버리는 영광의 상처들이 너무 많다. 차와 눈이 마주치면 '나 좀 이제 보내줘, 할 만큼 했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차를 바꾼다는 것을 상상하며 내 드림카는 무엇일까 질문해 본다. 수많은 '좋은 차'들을 타봤지만, 나의, 우리 가족의 드림카는 '카니발'이다. 작년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포함한 네 가족이 여행을 위해 공항을 갈 때 정말 차에 꾸겨 타듯 해서 갔다. 짐까지 실으니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 나는 내년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카니발에 한 자리씩 타서 편안히 가는 풍경을 상상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리를 할 때 그 어떤 차보다 카니발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행복하다. 손님이 고요히 잠들었을 때 백미러로 뒤를 살펴보며, 넓은 뒷좌석에 적당히 시트를 기울이고 한 명씩 앉아서, 그토록 쪼그리고 앉았던 다리를 드디어 쭉 뻗은 채로 평안히 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너무 달아올라서 눈에서 땀이 날 정도로 행복하다. 그런 날도 분명 오겠지. 아니, 오게 만들어야지. 그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씩씩하게 밤을 헤엄치러 나간다.

"대리 부르셨죠? 네, 십분 안으로 가겠습니다."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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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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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대리, #달려라김대리, #대리운전, #대리, #드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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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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