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겨둔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991년 금융연구원이 설립된 이래 원장이 임기 도중에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동걸 원장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왔던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 등 금융규제 완화 정책에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대표적인 '금산분리 완화론자'인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것이 그의 사의 표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1·19 개각' 이후 이동걸 원장을 필두로 또다시 이명박식 코드인사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금산분리완화·자통법' 등 반대... MB정책과 충돌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29일 이동걸 원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이 없다"면서도 "최근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이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표면적인 이유는 "일신상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금융연구원은 전날(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원장이 1월 31일자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며 "후임 원장 선임 때까지 박재하 부원장이 직무를 대행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이 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 경제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한 이후 10여 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금융정책 입안에 관여해왔다. 2002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분과(재정·금융)위원을 맡았고, 2003년부터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수행하다가 2007년 7월 금융연구원장에 취임했다.

 

이 원장은 지난 2004년 금감위 부위원장 재직 때,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와 관련해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문제를 공개해 주목받기도 했다.

 

금융연구원은 은행들의 출자로 설립된 민간 연구기관이지만 정부가 금융감독 정책을 고리로 은행들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러나 이 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완화 등 주요 이슈가 나올 때마다 토론회나 강연 등을 통해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금산분리'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한 것.

 

특히 이 원장은 다음달 4일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에 대해서도 "자통법이 추구하는 시장형 금융시스템의 위험 요소를 파악해 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또한 부동산 규제완화를 통한 경기부양과 금융규제 완화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최근 한 토론회에서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으로부터 "금융연구원이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정부에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금융연구원이 정부의 일방적 경제정책에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당부인 셈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게는 '눈에 가시'였겠지만,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자기 목소리를 내오던 이 원장이 3년 임기 가운데 절반을 남겨놓고 전례 없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이 원장은 전날(28일) 금융연구원 실장들과 점심 식사 도중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급작스런 사임, 청와대 사퇴 압박 있었나?

 

금융권에서는 이 원장이 돌연 사임하게 된 배경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이 원장이 주요 금융 현안에 대해 현 정부와는 줄곧 다른 목소리를 냈던 것에 대해 청와대의 직·간접적인 사퇴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19일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게 이 원장으로 하여금 사표를 꺼내들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2004년 9월 금감위 부위원장이었던 이 원장은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취임한 뒤 1개월 만에 석연찮은 이유로 물러난 바 있다.

 

윤 내정자는 금감위원장 시절 이 원장과는 반대로 '금산분리 완화'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친기업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대표적인 '금융규제 완화론자'다.

 

한편, 이 원장이 현 정부 정책과 입장 차이 때문에 중도 사퇴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후임으로는 이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대선캠프 출신 인사 등 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거명되고 있다. 김태준 동덕여대 경영경제학부 교수, 김대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박재하 현 부원장 등이다.


태그:#이동걸 원장, #금산분리 완화 반대,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내정자, #금융연구원, #코드인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