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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야흐로 5월이 무르익는 철이지만 봄날씨답지 않게 매서운 추위가 들이닥치곤 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겨울이면서 겨울답지 않게 지나치게 따스한 나날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흔히들 미친 날씨라고 하는데, 날씨가 미치기 앞서 우리 삶이 미친 탓에 자연 흐름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자연 흐름은 자연 스스로 깨뜨리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너무도 우리 몸을 느긋하게 놀리도록 물질문명을 누리고 있어서 깨집니다. 사람들 손길로 깨뜨리는 자연 흐름이요, 사람들 스스로 미친 날씨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사람은 도시에서 미친 날씨를 불러들이는 한편, 도시에 맑고 밝은 새숨을 불어넣는 조그마한 텃밭을 옹기종기 일굽니다. 텃밭을 일구는 손길은 텃밭 가장자리에 나무 한 그루 심어 가꾸는 손길로 이어지고, 이 손길이 고이고이 이어져 스무 해쯤 되다 보면 퍽 굵직하고 높이 자라 여느 살림집 지붕 위로 우뚝 솟는 나무 하나 새삼스레 동네를 밝힙니다.

 

나무 한 그루가 동네에 우뚝 서면 이 우뚝 선 나무는 새들한테 보금자리가 되고, 여름날에는 우거진 잎사귀가 푸른 쉼터를 마련해 줍니다. 우람한 나무가 있는 골목동네에는 새벽부터 새소리를 들으며 열고, 새소리와 함께 싱그럽고 푸른 바람이 골목을 휘감습니다. 어르신들은 새소리와 푸른 바람을 느끼며 당신들 마지막 삶을 곱게 여미고, 어린이들은 새소리와 푸른 바람을 맞아들이며 신나게 뛰어놉니다.

 

딱히 조경을 배운 적이 없고, 시골에 땅이 있어 농사를 지어 본 일이 없지만, 남들 눈에 거의 안 띄는 구석진 자리에서 햇살 한 줌 깃들도록 하면서 갖가지 푸성귀를 길러서 먹고 온갖 꽃이 피도록 하며 기쁜 웃음을 자아냅니다.

 

예쁘장한 텃밭을 볼 때마다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빠가 발걸음을 멈추면 아이도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빠가 무얼 들여다보는지 저도 따라 들여다봅니다. 잎사귀가 보이면 '잎'이라 외치고, 꽃이 보이면 '꽃잎'이라 외칩니다. 아이가 다리 아프다며 끙끙거리면 품에 안고 걸으면서 '저기 나무 있구나' 하면서 '나무' 한 마디를 가르칩니다.

 

 

16. 인천 남구 주안2동. 2010.5.13.17:11 + F8, 1/80초

 

마당이 있는 널따란 개인주택에는 차 대는 자리가 하나쯤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제법 잘 사는 사람들은 자가용 두어 대는 손쉽게 몰고 있으니 차 대는 자리 하나로는 모자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차를 대는 자리라 할지라도 한쪽에 빨래를 널어 말리고 꽃밭을 일구어 놓는다면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나중에 자가용을 버릴 수 있다면 차가 있던 자리는 퍽 널찍한 텃밭으로 바뀔 수 있겠지요.

 

 

17. 인천 남구 숭의1동. 2010.4.25.14:38 + F16, 1/100초

 

빈 자리가 있다고 모두 텃밭이나 꽃밭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들 손길이 많이 타야 합니다. 돌을 하나둘 고르고 거름을 내어 섞어 주면서 차근차근 흙에 새숨과 새힘을 불어넣어야 해요. 이렇게 해서 마련한 조그마한 텃밭이나 꽃밭은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에 걸쳐 살가우며 애틋한 골목동네 숨구멍이 됩니다.

 

 

18.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4.25.14:01 + F16, 1/100초

 

지난날에는 기차가 뻔질나게 드나들며 동네는 온통 시커멓고 시끄러웠습니다. 이 기찻길 한쪽에는 강원연탄 공장이 있어 새벽부터 밤까지 쉴새없이 연탄을 찍어냈거든요. 그런데 연탄공장은 거의 문을 닫다시피 돌아가지 않고, 짐을 실어 서울로 올려보내는 기차는 하루에 한 번만 지나갑니다. 이러는 동안 동네사람들은 이 널널한 기차길 한쪽에서 돌을 고르고 흙을 북돋우고 거름을 내어 작은 텃밭을 띄엄띄엄 일굽니다.

 

 

19. 인천 서구 가좌3동. 2010.4.24.12:21 + F16, 1/80초

 

나즈막한 아파트나 연립은 맨 처음 올려세우던 1970년대 첫머리에 연탄 때는 집이었습니다. 제가 인천 중구 신흥동3가에서 열세 해 즈음 살던 5층짜리 아파트에서도 방마다 연탄 한 장 밀어넣어 땠습니다. 연탄 한 장을 넣어 불을 지핀다고 방바닥이 얼마나 따뜻하겠습니까.

 

한겨울에는 너무 추워 안방에 온 식구가 모여서 이불 하나에 손발을 녹이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아파트나 연립에는 으레 '차 댈 자리'가 아닌 '꽃밭'을 마련해 놓고 있었으며, 이 꽃밭은 동네사람 손으로 꽃밭에서 텃밭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거듭 맞이합니다.

 

 

20. 인천 남구 주안2동. 2010.5.13.17:03 + F8, 1/80초

 

까만 골목고양이가 아주 하느작거리는 걸음으로 거니는 골목동네 막다른 한쪽. 이곳에는 이 안쪽에 깃들인 두 골목집 식구만 드나듭니다. 이렇다 보니 차 한 대를 골목 어귀에 세운다 할지라도 안쪽은 제법 넓다 할 만하고, 이 넓다 할 만한 한쪽 바닥돌을 걷어내고 텃밭으로 일굽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태그:#골목길,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사진,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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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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