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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일본에서는 원수폭(원자폭탄, 수소폭탄)금지세계대회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열린다. 나는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나가사키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데, 올해는 특별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원자폭탄을 쏘았던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에서 파견한 대사가 참가했다.

나가사키 공항은 안쪽 바다를 메우고 그 위에 지은 것이다. 그래서 주위엔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고,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여름 같았다. 공항의 표지판도 대부분 한국말로 써 있어서 이곳이 특별히 일본, 외국이라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곧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나가사키신시에 도착했다. 길 건너편에 전차가 다니는 풍경에 조금 옛날로 돌아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차가 지나가자 곧 그 뒤로 쉘과 esso 주유소가 보였고, 그때서야 이곳이 이른바 제 1세계, 일본임을 알 수 있었다.

둘째 날, 나는 분과회의에 참석했다. 분과 회의는 총 8가지 주제로 나누어졌는데, 그중에 나는 온난화와 탈원자력 발전을 향한 에너지 정책 전개라는 주제로 열리는 곳에서 발표를 했다. 회의장에는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개회를 하고 사회자가 여기 온 사람 중에 처음 온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했더니, 반 정도 되는 사람이 손을 들었다. 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번 새롭게 참가하는 걸까? 일본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재미없는(?) 주제에 관심을 갖는 걸까?

분과회의는 일본메이지 대학의 후지 이와네(藤井 石根)교수가 발표로 시작됐다. 그는 우라늄 또한 한정된 자원이므로 언젠가는 떨어지게 되어 있으며, 그 양이 그렇게 많지 않다 했다. 또 정부가 온난화를 핑계로 기후변화대책이라며 핵발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핵발전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했다.

발전과정에서는 안 나올지 모르지만, 우라늄을 채굴하고 운송하고 정제하고 농축하는 과정과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핵폐기물을 폐기하는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중에는 일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핵연료가 들어 있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데, 이 재처리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핵연료는 1%에 지나지 않는 반면, 폐기물의 양은 153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우라늄 1mg을 재처리하기 위해서 물 천 톤이 들어간다. 배보다 배꼽이 커도 유분수지, 재처리시설을 짓고 가동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것까지 재처리과정은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재처리과정에서 방사능이 유출이 안 될 거라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영국 윈드스케일에 핵 재처리 공장이 있는데, 영국 주변의 북해와 대서양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또한 스웨덴은 일본과 국토 면적이 비슷한데, 스웨덴에서부터 나온 방사능에 북극의 스발바르 제도까지 오염되었다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물고기와 어패류를 어떻게 먹일 거예요?"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도를 슬쩍 들여다  보았는데, 언뜻 보기에도 스웨덴에서 북극보다는 한국과 일본이 더 가까울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우리 정부가 2030년까지 전체 전력 중 59%를 핵발전으로 하겠다는 계획이 허상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그것을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녹색성장이 아니라는 것, 마지막으로 묘하게도 닮아 있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원자력정책과 원자력 산업계에 맞서 반핵운동 진영 연대를 촉구했다. 후지 이와네(藤井 石根) 교수는 우리단체가 한 연대제안을 반가워 했고,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참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를 나눴다. 뜻밖의 일인데다 악수를 나누는 일이 어쩐지 '관에서나 하는' 일 같아 어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한일은 그렇게라도 연대의 감정을 나눠야 한다는 데서 주저할 새가 없었다!

발표가 끝나자 청중들이 질문을 했다.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야당까지도 핵발전에 대해서 반대를 하지 않는데, 이런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원수금은 이것에 대해 왜 강하게 반발하지 않는가? 또한 정부가 만든 교과서에서는 핵발전소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은 다루고 있지 않는데, 이것도 지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이 핵발전소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핵발전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데 실제로 그런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좀 더 설명해 달라."

후지 이와네(藤井 石根) 교수는 지구온난화는 채굴부터 폐기물의 처리까지 한 과정이 끝나게 되도 실제로 폐기물의 방사능 반감기가 몇 만년에 이르는 경우가 있어 사실상 과정이 끝나지 않는 것이라 설명했다. 나는 청중들의 수준 높은 질문과 관심 그리고 원수금에 대한 큰 기대에 조금 놀랐다.

오후에는 나가사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 전날 시간이 나면 천주당과 자료관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 대회의 자원 활동가인 수미에와 에리코가 그 말을 잊지 않았는지, 서둘러 나를 안내해 주었다. 처음 간 곳은 원폭자료관이었는데, 그곳에는 피폭당한 나가사키의 거의 모든 것을 전시하고 있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순간 시계는 멈췄고, 이후 계속 11시 2분을 가리키고 있다.
▲ 11시 2분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순간 시계는 멈췄고, 이후 계속 11시 2분을 가리키고 있다.
ⓒ 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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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벽시계가 하나 있는데,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시계는 멈춰서 시계는 지금까지도 폭탄이 떨어졌던 11시 2분을 가리키고 있다.

피폭당시 강력한 열에 의해서 녹아버렸다.
▲ 녹아버린 6개의 병 피폭당시 강력한 열에 의해서 녹아버렸다.
ⓒ 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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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짜부라들었고, 순간적으로 퍼져나간 열선에 의해서 담벼락에는 대나무의 모습이 새겨져 버렸다. 순식간에 7만에 이르는 사람이 죽었고, 이후 방사능중독으로 현재까지 14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밖에 녹아버린 성물(聖物), 새카맣게 타버린 도시락 등이 참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녹아버린 성물들
▲ 녹아버린 성물들 순식간에 녹아버린 성물들
ⓒ 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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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심지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한 여학생의 도시락. 도시락은 숯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도시락 뒷면에는 "쓰쓰미 시토코"라는 여학생의 이름이 써있다.
▲ 까맣게 타버린 도시락 폭심지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한 여학생의 도시락. 도시락은 숯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도시락 뒷면에는 "쓰쓰미 시토코"라는 여학생의 이름이 써있다.
ⓒ 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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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 한 가운데서 핵무기의 위력을 시험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그 어떤 안타까운 사진보다도 충격적이었다. 원자폭탄이 터지자 마치 바닷 속 미역이 물살에 휩쓸리듯이 아파트와 같은 건물들이 출렁이며 넘어졌다. 5층 정도 되는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넘어지는 데 1초가 뭐야, 순식간에 모조리 출렁이며 허리가 꺽였다. 조금만 더하면, 이 지구를 날려버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나는 늘 원자폭탄은 버섯구름을 연상했는데, 그건 하늘 위에서 이야기였고, 폭탄이 떨어진 그 땅 위쪽은 저렇게 순식간에 멸망해 버렸던 것이었다(영상은 어마어마하지만 잔인하지는 않으니 꼭 한번 보시라). 영상을 보고나면 '열선'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온화한 표현이었다. 폭발열이나 폭발파와 같이 폭발의 영향을 나타낼 수 있는 뉘앙스를 가진 단어로 바꿔 써야 한다.

우라카미 천주당에 들렀다. 성당은 1895년에 짓기 시작해서 1914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원자폭탄으로 인해 성당은 완전히 붕괴되었는데, 그 때 피폭당한 마리아상이 두상만 남아 건물 안에 모셔져있다. 마리아는 두 눈이 구멍이 되었고 얼굴의 한쪽은 검게 그을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형상을 마주한 나는 잠시 귀가 먼 듯한 채로 서 있다가 어지러워졌다. 그날 나가사키 사람들은 굉음에 귀가 멀고, 번쩍임에 눈이 멀었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에 순식간에 몸이 타들어가 버렸다. 겨우 살아남은 모든 것들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도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불타오르고 있었다. 풍경이라 하기엔 너무 참담한 나가사키의 8월이 성모(聖母)라는 이름에 기대어 마리아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여기당(如己堂)'에 들렀다. 다카시 박사는 작가이자 의사로 그는 피폭 이후 자기 몸과 같이 사람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여기애인(如己愛人)'정신을 전하려 애썼다.

그는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평생 기도했다.
▲ 나가이 다카시 그는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평생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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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43세라는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 바로 '여기당(如己堂)' 이었다. 내가 방문했던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여기당에 전시된 박사의 유품과 사진을 보고 갔다.

나가이 박사가 피폭이후 머물렀던 곳이다.
▲ 여기당 나가이 박사가 피폭이후 머물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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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화(平和)라는 단어를 2000번이나 써내려갔고, '평화를 기원하는 자는 바늘 하나라도 감춰서는 아니하리라. 무기를 지니고서는 평화를 기원할 자격이 없도다'라는 글을 남겼다. 평화라는 말은 좁게는 전쟁 따위가 일어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넓은 의미도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글을 통해 그와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절실했던 '평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깊이 느낄 수 있었다.

여기당에서 나와 무너진 산왕신사(山王神社)에도 다녀왔다. 신사는 원자폭탄이 폭발해서 다 무너지고 신사의 입구에 있던 돌문은 지금은 반쪽만 남아 있었다.

계단 이후 반쪽만 남은 신사의 입구가 서있다.
▲ 입구의 반쪽이 무너진 신사(山王神社) 계단 이후 반쪽만 남은 신사의 입구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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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의 흔적을 보여주는 신사의 잔해들을 입구 주변에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그 신사에는 아주 오래된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도 피폭으로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지금은 다시 무성한 나무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무 기둥에는 당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나가사키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외국문물을 받아들여 이국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있었다. 그런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한순간에 도시는 거의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 그래서 유난히 나가사키에는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피폭의 잔해물들이 채우고 있다. 그리고 공항에서와 같이 한글로 된 안내판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나가사키가 관광 상품으로 피폭의 기억을 팔고 있는 것 같다며 같이 간 수열씨는 안타까워했다.

마지막 날, 나는 나가사키현립체육관에서 열린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정리집회에 참가했다. 대회 선언을 통해서, 피폭국가로서 일본의 책무를 강조하며, 비핵원칙을 법제화 하고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에 대한 노력을 촉구했다. 또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 대신 재생가능한 자연에너지사회로 전환하자 주장했다. 또한 피폭자 뿐 아니라 2세,3세 재외 피폭자등의 원폭후유증도 인정해줄 것을 강조했다.

기념식을 마치고 폭심지가 있는 평화공원으로 걸어갔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이번 대회에 함께했다.
▲ 평화행진 대열 기념식을 마치고 폭심지가 있는 평화공원으로 걸어갔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이번 대회에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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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집회 참가자들은 평화공원으로 평화행진을 했다. 평화공원에 모인 뒤 11시 2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시간에 맞춰 사이렌이 울렸다. 피폭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는 나라를 지키다가 혹은 그 밖의 대의를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묵념은 많이 해봤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간 억울하고 비통한 사람들에 대한 묵념은 처음이었고, 눈을 감고 그들을 생각 하자니 분통이 터지고 내가 다 억울하고 어이가 없었다.

비석이 서있는 곳이 폭심지로, 비석 끄트머리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다고 한다.
▲ 평화공원 내 폭심지 비석이 서있는 곳이 폭심지로, 비석 끄트머리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다고 한다.
ⓒ 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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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큰 마트에서 할인을 해준다고 열 개들이 물건을 9900원에 파는 것을 볼 때마다, 같은 상품 한 개짜리 천원보다 겨우 백 원, 개당 고작 십 원이 더 싸다는 것을 금방 계산해 낸다. 세 개에 천원하는 붕어빵이 개당 400원하는 호떡보다 싸다는 것도 듣자마자 알 수 있다. 난 무엇이 더 저렴한 지에는 정말 귀신같다. 그런데, 그만큼 명료하고, 간단하고, 빠르게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죽으면 안 되지요"라고 말해 본 적이 있었나? 당연한 것에 대해 너무 둔감했던 것은 아닐까?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이머에게도 따지고 싶은 내용이다.

돌아가는길, 일본의 산등성이마다 유난히 나무가 빽빽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후지 이와네 교수는 일본의 인건비가 비싸서 간벌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핵발전소를 더 짓는대신에 빽빽히 심어진 나무를 적절히 베어서 나무펠릿을 이용하면, 고용효과도 있고, 숲도 더 울창하게 가꿀수 있다고 한다. 그럼 이번대회에서 외쳤던 핵도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21세기를 더 빨리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에너지정의행동 오송이



태그:#나가사키, #우라카미 천주당,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원폭자료관, #나가이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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