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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업계 압박(?)에 못 이긴 다수의 미디어가 '홍길동 언론'이라 비판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09년 탤런트 장자연씨를 둘러싼 논란에 <조선일보> 관계자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언론계에서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그들은 "자신의 신문사를 기명으로 표기할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공식적 입장을 밝힙니다. 그래서 몇몇 인터넷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매체는 '해당언론사'라는 익명을 사용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없었던 홍길동과 마찬가지로, 시민들 대다수가 조선일보 관계자로 알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언론만은 '해당 언론사' 또는 '△△언론', '○○언론'이라는 익명을 사용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던 거죠.

 

2년이 흐른 뒤 <조선일보>는 3월 9일 1면 기사를 통해 장자연씨가 불려 나갔던 접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스포츠조선> 전 사장임을 스스로 밝히게 되더군요.

 

나를 버스에서 후다닥 뛰어내리게 한 뉴스 논평

 

2년 전 버스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저녁 <8시뉴스>가 끝나고 이어진 논평에서 "조선일보사는 국회 기자실에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보도를 당부드린다"는 내용의 은근히 겁을 주는 보도자료를 뿌렸고…"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거죠. 얼른 메모를 했고, 근처 PC방에 들어가 이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등 허둥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라디오 또는 TV 논평에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였습니다. 대구에서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면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찾아보는 매체는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인터넷언론과 TV 방송사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었거든요. 어쨌든 그날 일을 계기로 그 논평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관심 주제에 따라 골라 듣던 논평이 모여서 책으로 나왔네요. 바로 <MBC 논평 최용익입니다>입니다. 어휴, 이 논평이 한두 해 진행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와 똑같은 5년 동안 꼬박 진행되었다는 데 놀랐고, 특히 한국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두고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 놀랍더군요.

 

저자는 출판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지난 5년여 동안의 논설위원 생활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동기는 이 정권에 왜 미운털이 박혀 논설위원직을 중도에 하차해야 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데 있었다"라며 "정권 또는 MBC 경영진이 아닌 수용자(독자)들의 공론장을 통해 논평 내용 중에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옳고 그름(是是非非)를 '공정하게' 검증받고 싶었다"고 설명합니다.

 

'대구 사람'이 본 <MBC논평 최용익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관심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 책에서 다루는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검증(?)해보겠습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 영남권의 최대 이슈는 4대강 관련 현안입니다. 낙동강 공사구간이 전체 공사구간 가운데 가장 기고, 이 구간에서 사망한 노동자도 많습니다. 그리고 최근 구미 지역 단수사태도 이 공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향후 다가올 여름 홍수 때 나랏님이 또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MBC논평 최용익입니다>는 모두 260페이지로 총 5장, ▲ 1장 'MB정부와 방송장악' ▲ 2장 '대한민국과 노동문제' ▲ 3장 '메아리 없는 외침, "소통에 나서라"' ▲ 4장 '사법기관의 현주소' ▲ 5장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4대강 문제는 3장의 마지막 섹션 '쌓이는 의혹, 의혹 - 그래도 4대강 사업은 간다'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약 10페이지. 전체 책 분량을 생각하면 너무 양이 작지 않나요? 단 네 편의 글, '중대 전기 맞은 한반도 운하 사업', '졸속과 부실로 끝난 환경평가', '4대강 비소오염 진상?', '민심 외면한 4대강 사업 재고하라'뿐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의 실세가 '공약'이라는 미명하에 상상을 초월한 세금을 광고비로 제공하면서 언론을 길들였고, 대다수 언론이 그 떡고물에 '헬렐레' 하고 있을 때 '이건 아니다'라며 좀 더 강하고 뒷골이 서늘한 분석이 뒷받침된 논평이 방송되었다면, 영남권의 여론이 지금보다는 좀 더 변할 수 있었을 텐데요. '대구 사람'으로서 이 부분은 아쉽네요.

 

'언론단체 활동가'가 본 <MBC논평 최용익입니다>

 

언론단체 활동가의 입장에서 본 <MBC논평 최용익입니다>는 언론사 간에 존재하는 오래된 '나쁜' 관행을 깨는 '소 쿨(So cool)'함이었습니다.

 

언론은 보도와, 시사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회현안, 권력의 비리 등에 대해선 비판의 화살을 쏘지만, 정작 자신들이 가진 '고질병', '다른 언론사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침묵해왔었습니다. '털어 먼지 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선에서 자신들끼리 만든 침묵의 카르텔,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는데요.

 

이 책에서 글쓴이는 ▲ MBC의 <PD수첩> 논란 ▲ YTN 노동조합 지도부 구속의 부당성 ▲ KBS 수신료 인상의 비합리성 ▲ 표현의 자유 ▲ 친일행적 은폐하는 조선, 동아일보 ▲ 조선일보의 발행부수 조작과 중앙일보의 사진 조작 등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지키려는 자들의 정당성과, 그를 무시한 언론의 비겁함을 속 시원하게 까발리고 있습니다.

 

물론 언론노조나 시민사회단체가 성명서나 논평 등을 통해서 비슷한 주제를 말하고는 있습니다. 문제는 채널이죠. 이들이 발표하는 성명서와 공중파를 통해 전달되는 또 다른 메시지는 받아들이는 독자 또는 청취자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주거든요.

 

각각의 주제들이 흩어져 있지만, 이 내용을 하나로 묶어서 만든 이 책은, 언론인이 되기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용익 전 논설위원님에게 드리는 부탁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 1조 "우리는 권력과 금력 등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내외부의 개인 또는 집단의 어떤 부당간섭이나 압력도 단호히 배격한다"는 기준에 충실하며, 5년 동안 저널리스트로서 원칙을 지키셨던 최용익 전 논설위원에 대한 MBC 측의 인사는 누가 보더라도 '부당한 보복 인사 그 자체'였죠.

 

그런데 이런 식의 권력층의 '보복 시스템'은 한계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마 예전에는 이랬던 것 같습니다. 권력은 자신에게 눈엣가시가 되는 인물이나 시스템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기 위해 '여론의 반대, 비판'을 외면한 채 일을 저지르고, 그 대상이 된 인물이나 시스템은 '나의 존재감이 이 정도였나?'라며 의문을 제기하며 우울해하거나 극단적으로 사표를 던지게 되던데요.

 

이 상황을 뒤집어보면 어떨까요? 권력이 자신이 가진 '힘'을 가지고 '보복'이라는 치졸한 방법을 사용해서 저널리스트의 펜을 꺾으려고 한다면, 그에 대응하는 세력은 오히려 더 강한 펜의 힘을 보여주면 어떨까요?

 

최용익 전 논설위원님. 현 정부의 마지막 모습을 또 다른 '논평'으로 기록해주시면 어떨까요? 공중파라는 채널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많습니다. 사이버 공간의 의제설정이 기존 매체를 능가하고 있고, 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건강한 여론에 최용익 전 논설위원님의 컨텐츠가 더해진다면 그 폭발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고이 묻어만 두고 있는 이야기가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 정부뿐만 아니라 권력층의 부당함을 성역 없이 비판하시는 최용익 전 논설위원님의 '소 쿨'한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최용익 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2011년, 15000원)


MBC 논평, 최용익입니다

최용익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2011)


태그:#최용익, #MBC,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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