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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미얀마 붐'이 일고 있다. 군부독재를 청산하겠다고 밝힌 미얀마 신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EU·일본·인도 등 경제선진국에게 미얀마는 글로벌 경제의 '그린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세계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개척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 이에 미얀마가 우리에게 '신 블루칩'으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명과 암을 가늠해본다. 이번 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아 지난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으며, 미얀마 경제수도인 양곤과 인접국 라오스의 일부 도시를 둘러봤다. [편집자말]
'미얀마 국기'인 Naingandaw Alin(나잉강도 얼링). 2010년 11월 7일 총선을 앞두고 10월 21일 전격 변경되었다. 맨 위의 노랑 바탕은 단결을, 중간의 녹색은 평화를, 맨 아래 붉은색은 용기를 나타낸다. 국기변경은 2008년 국민회의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헌법 의결에 의해 개정되었다.
 '미얀마 국기'인 Naingandaw Alin(나잉강도 얼링). 2010년 11월 7일 총선을 앞두고 10월 21일 전격 변경되었다. 맨 위의 노랑 바탕은 단결을, 중간의 녹색은 평화를, 맨 아래 붉은색은 용기를 나타낸다. 국기변경은 2008년 국민회의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헌법 의결에 의해 개정되었다.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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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1962년 네윈(Nay Win)의 군사 쿠데타 이전에는 연간 300만 톤 이상의 쌀을 수출하는 세계 1위 쌀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쌀 산업을 국영화하면서 쌀 수출은 급감했고, 태국에게 세계 1위의 지위를 넘겼다.

스포츠에서도 아시아 축구 강국이었던 미얀마는 군사정권 이후 축구 실력이 뒷걸음쳤다. 지난 2011년에는 테인 세인 대통령이 직접 우리나라 김해용 미얀마 대사에게 좋은 축구 감독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김 대사는 축구협회에 요청해 현재 박성화 감독이 활약하고 있다(박 감독의 임기는 올 12월까지 예정).

단적인 예를 들었긴 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 부국으로 분류됐던 미얀마가 50여 년 동안 성장이 정체되면서 '경제적인 목초지'가 됐다. 네윈 장군의 '버마식 사회주의'가 2011년까지 미얀마 경제에 아무런 변화와 성장도 없었다는 것이 세계적인 평가다. 이 기간 이웃나라인 태국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미얀마는 동남아 주변국들과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격차를 보였고, 더는 내려갈 데 없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 안정 없이 경제 안정도 없다'
미얀마의 현대사를 보면, 정부 주도로 1970년대 초반까지는 잘 살았다. 하지만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네윈 정부가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적 정신가치를 접목시킨 '버마식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면서 전 경제분야에 걸친 국유화 추진은 결국 심각한 경제 침체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후 반정부 시위로 네윈(Nay Win)은 1988년 사임하고,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네윈이 막후 조종하는 새 군사정부가 등장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할 정도로 피폐해져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해가 1997년이다. 이후 군사정부는 민주화 7단계 로드맵을 추진해 2011년 3월 완료하면서 민선 정부에 이양하고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그해 4월부터 신정부는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면서 세계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결국 '정치적인 안정 없이는 경제적인 안정도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나라가 미얀마다.
이는 어찌 보면 미얀마 국민에게는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부른 참사이자, 너무 값비싼 대가와 뼈아픈 고통을 치른 세월이었을 게다. 그러다가 2011년 4월 1일 신정부가 대통령 중심제로 출범한 이후, 미얀마는 아픔을 딛고 '기회의 땅'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제2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군부가 아닌 민간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예전과 다른 점이다. 원래의 시장 자본주의 국가로 변모하고자 군부독재를 걷어내려는 움직임이 현 정부의 테인 세인(Thein Sein)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비판도 적지 않다. 테인 세인 대통령을 두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민주화를 위한 놀라운 양치기(surprising shepherd for democracy)"라고 힐난하기도 했으며, 일각에서는 "군부가 내세운 '바지사장'"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개혁개방의 물결을 보고 있자면, 테인 세인 대통령이 펼치는 의외의 리더십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를 국민들이 '우리도 잘 살아 보자'는 개혁발전의 진정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현상이다.

미얀마인에게 듣는 미얀마... "5~10년이면 태국 정도로 발전할 것"

1994년 우리나라 전남 나주의 한 비료공장에서 이주노동자로 2년간 일했으며, 이후 귀국해 양곤에 있는 외국어대학에서 뒤늦게 한국어를 전공한 뗏세예(Thet Swe Aye·50)가 쉐더공 파고다 내 전시관에서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 사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94년 우리나라 전남 나주의 한 비료공장에서 이주노동자로 2년간 일했으며, 이후 귀국해 양곤에 있는 외국어대학에서 뒤늦게 한국어를 전공한 뗏세예(Thet Swe Aye·50)가 쉐더공 파고다 내 전시관에서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 사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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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람들은 새정부의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을까. 또 신흥 미얀마 시장에 뛰어든 한국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난 1994년 전남 나주의 한 비료공장에서 이주노동자로 2년간 일하다가 귀국해 양곤의 외국어대학에서 뒤늦게 한국어를 전공한 뗏세예(Thet Swe Aye·50)의 말을 들어보자.

"과거 미얀마는 태국이나 싱가포르보다 잘 사는 나라였다. 1948년부터 60년까지만 해도 동남아 1등 국가였다. 그런데 군사정부가 잘못해서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을 봐라. 미얀마 인구의 10%인 600만 명이 사는 양곤만 보더라도 인구에 비해 자동차도 너무 적고, 도로도 무지 불편하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나 뗏세예는 "지금 미얀마는 다시 시작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5년에서 10년이면 태국 정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미얀마가 그렇게 급성장할 거란 자신감의 근거는 뭔가.
"우리는 땅이 넓고, 사람이 많다. 굳이 2모작도 필요 없는 나라다. 1모작만 해도 충분하다. 과거 우리는 쌀 수출 1위였다. 미얀마>베트남>태국 순이었다. 인구도 베트남과 태국 두 나라보다 더 많다. 무엇보다 미얀마에는 없는 것이 없다. 원유, 천연가스, 보석류…. 특히 루비와 사파이어, 경옥(비취) 같은 보석류는 세계 최고다."

- 그럼에도 현재 미얀마는 유엔이 꼽은 최빈국 중 한 곳 아닌가.
"사실, 지금 미얀마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다. (군사)정부가 잘못해서 돈 있는 사람이 안 나설 뿐이다. 국민들은 그동안 군사정부를 불신해서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았다. 군사정부 때 은행에 돈을 넣었다가 손해 본 사람이 많았다. 그 이후 정부를 믿지 않고 있다. 집집마다 금이 있다. 돈이 생기면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고 금을 산다. 그래서 자기만 믿는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금 가격이 항상 오르지 않나. 아마 동남아 10개국 중 가장 많은 금을 갖고 있을 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블랙마켓에 유통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 미얀마는 변하고 있다. 경제개혁이 일어나고 있다. 1996년경에 개인은행도 생겼고, 개인보험도 생겼다. 아직까지 대부분 미얀마인들은 은행에 잘 가려고 하지 않지만, 조만간 바뀌리라 본다."

6월 20일 양곤 시내 외곽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후 밖으로 나오고 있다. 과거 미얀마 군사정부가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학교 캠퍼스를 양곤 시내에서 시 외곽으로 강제 이동시켰다고 한다.
 6월 20일 양곤 시내 외곽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후 밖으로 나오고 있다. 과거 미얀마 군사정부가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학교 캠퍼스를 양곤 시내에서 시 외곽으로 강제 이동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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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많은 자원과 금을 가졌기 때문에 발전하리라 생각하는 건가.
"물론 아니다. 지난 50년간 군사정부는 미얀마의 교육을 잘못했다. 예전의 양곤대학교 학생들은 우수한 인재들이었다. 거기서 공부하면 인도의 콜카타(옛 캘커타)나 영국의 케임브리지로 가서 공부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군사정부가 1988년부터 학생들이 데모를 하자 대학들을 시 외곽으로 옮겼다. 학생들이 그 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안 한다. 군사정부의 목적이 그것이었다. 학생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져서 '정치는 재미없어, 끝!'이란 생각을 갖기 원했다. 그렇게 했기에 나라 교육이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이 변하고 있다."

그래서 양곤 외곽에 있는 대학 앞에서 만난 메이 테인다 보(May Thandar Bo·21)에게 선망하는 직업과 관심 분야에 대해 물었다.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은 '엔지니어'다. 개인회사에 다니면 월 300달러까지도 받을 수 있다. 군사정부 이후 직업 군인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이들은 '테크놀로지(기술)'에 관심이 많다. 다른 것(자원)은 다 있지만 부족한 것은 '기술'이란 생각들이다. 사람도 많겠다, 땅도 넓겠다, 기술만 있으면 발전은 쉽게 이뤄진다."

또 다른 학생인 라 민 네잉(La Min Naing)은 "지난 2011년부터 다시 쌀 생산량이 급증해 수출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풍부하게 생산을 지닌 농업분야도 발전의 제약 요소인 부족한 기술력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계만 보충되면 성장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Q)는 미얀마는 2011년도에는 전년인 2010년보다 57% 증가한 84만4200톤의 쌀을 수출했다"면서 "2012년에는 전년보다 20% 증가한 100만 톤의 쌀을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DPA통신은 지난해 4월 19일자로 "과거 1956년까지만 해도 해외로 매년 10만 톤 넘은 수출 실적을 보였으나 그후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며 "미얀마 정부가 쌀시장 규제를 완화하면서 2007년부터 쌀 수출이 증가하면서 지난 2011년에 57%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정치도 변하고 있어... 그 변화에 주목하라"


특히 미얀마인들은 테인 세인 대통령이 펼치는 적극적인 개방정책과 개혁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미얀마에 온 첫날 만났던 의사인 네이 묘 아웅(Nay Myo Aung·27)는 "아웅산 수치도 많은 미얀마인들이 좋아하지만 지금 대통령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현 대통령이) 최근 자국민 보호를 위해 힘쓰는 모습에서 '신정부가 변화하고자 노력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지지도는 테인 세인과 아웅산 수치를 비교했을 때 6대 4 정도"라고 말했다.

뗏세예 역시 네이 묘 아웅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어 그는 "2015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신망을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펼치는 정치란 지적도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대외적으로 많은 교류를 하고 투자를 유치하고 있지 않나"며 "세계 많은 나라들이 우리 미얀마에 투자를 하면 미얀마에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고 미얀마 사람들이 돈 벌러 외국으로 가지 않을 것이기에 미얀마에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현 대통령이 펼치는 정치에 국민이 '우리 정치도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니 그 변화에 주목하라, 미얀마는 변하고 있다"면서 "물론 제도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과 문제가 많아 개선되어야 할 것에 대해 대통령이 적극 나서서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미얀마 양곤의 모습. 곳곳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도 하고, 예전에 정부의 관공서로 쓰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도 한다. 또한 도시 곳곳에서 기반 시설인 도로의 정비작업을 진행해 교통혼잡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미얀마 양곤의 모습. 곳곳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도 하고, 예전에 정부의 관공서로 쓰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도 한다. 또한 도시 곳곳에서 기반 시설인 도로의 정비작업을 진행해 교통혼잡을 초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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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한국의 소극적인 미얀마 투자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뗏세예는 "지금과 같은 미얀마 붐이 일기 2~3년 전에 한국이 먼저 미얀마에 진출했었는데 그냥 갔다"면서 "일본 사람들은 2년 전에 와서 투자를 시작해 지금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나 한국 사람들은 조사하고 가서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미얀마 최고위층이 한국에 대해 '오직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No More NATO(No Action Talk Only)'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박철호 KOTRA 양곤 무역관장은 <주간무역> 기고글을 통해 "한국기업이 미얀마 산업 및 경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고위층과의 만남을 갖고, 만남 시에는 마치 다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질적인 후속조치를 등한시하는 것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라며 "경쟁국가인 중국, 일본 등은 미얀마에 대한 깊은 역사적 이해와 오랜 기간 동안의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민관이 합동이 되어 대규모의 집중적인 협력 활동을 전개해 왔다"고 말했다.

뗏세예는 "그런데 오늘(6월 19일) 한국의 부총리(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가 미얀마를 방문했고, 그를 영접한 깐 저우 미얀마 국가기획경제개발부 장관은 차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현 정권에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며 "한국과 미얀마의 '넘버3'끼리 만났으니 예전과 달리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알다시피 미얀마 정부는 지난 1989년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었다. 수도도 양곤에서 네피도로 바꾸었다. 2005년 11월 당시 미얀마 정부 대변인 쪼산 장군은 수도를 양곤에서 320km 떨어진 중부 산악지대의 당시 삔마나(Pyinmana)로 옮긴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그 다음 날부터 실행에 들어갔다. 이후 2006년 수도 이전을 완료한 뒤에 네피도(Nay pyi taw)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도 이전에 대해 미얀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뗏세예의 얘기다.

"사람들은 좋아한다. 이제 정치 수도는 네피도다. 그곳엔 정부원만 다 있다. 일반인은 거의 없다. 양곤은 여전히 경제 수도다. 만약에 양곤에 정부 부처가 계속 있으면 길도 막히고 더 복잡했을 거다. 예전에 대통령이나 장관이 나설 때마다 도로를 통제해서 길이 막혀 사람들이 일을 못할 지경이었다. 이젠 그런 거 없다. 수도를 네피도로 옮겨서 더 좋다! 한편, 수도를 옮기면서 양곤에 정부 청사로 쓰던 빌딩들이 비어 있는데 그곳을 리노베이션(개보수) 해 호텔로 쓰거나 투자자 사무실로 활용하면 될 듯하다. 수도 이전으로 양곤 지역에 투자할 가치가 더 높아졌다."

'미얀마 붐' 이후 호텔 비용 2~3배 껑충... UN도 방 빼!

6월 20일 아침 미얀마 양곤 시내 풍경. 양곤은 미얀마 제1의 도시로 좀 낡긴 했지만 이 같은 고층 건물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하루에도 수차례 정전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호텔이나 에어컨이 설치돼 있을 뿐, 대부분의 가정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리고 가전제품의 경우 불안정한 전력공급으로 인해 쉽게 고장이 나 가정에 변압기가 필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가 일반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우선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6월 20일 아침 미얀마 양곤 시내 풍경. 양곤은 미얀마 제1의 도시로 좀 낡긴 했지만 이 같은 고층 건물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하루에도 수차례 정전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호텔이나 에어컨이 설치돼 있을 뿐, 대부분의 가정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리고 가전제품의 경우 불안정한 전력공급으로 인해 쉽게 고장이 나 가정에 변압기가 필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가 일반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우선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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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블루오션 미얀마'에서 꿈을 찾아오는 비즈니스맨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한 지적도 있다. 호텔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신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미얀마 붐'이 일면서 땅주인들이 밀려올 외국인 투자를 생각해 건물 임대료를 2~3배 올리고 있다"면서 "외국인이 직접 땅을 매입해 호텔을 운영할 경우 외국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너무 비싸기에 땅을 쉽게 임대하지 못할 정도로 '임대료' 문제는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일예로 최근 방값이 100달러인 중대형 호텔의 경우 200달러로 오른 건 순식간이었고, 그마저 방이 별로 없고 예약을 받기보다 직접 오는 손님만 받으려는 호텔이 늘고 있다"면서 "장기간 미얀마에 머물면서 시장조사를 하러온 비즈니스맨이나 관광객들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임대료' 급상승으로 양곤의 경우 시내 중심부에 있던 식당이나 상점, 중소 숙박업체들이 계약 기간 만료 후 외곽 쪽으로 밀려나는 상황. 또 임대료 상승과 함께 임금 또한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미얀마 양곤에서 가장 큰 인야 호수(Inya Lake)의 풍경. 호수 주변 곳곳에 새로운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으며, 인야 호수 전망으로 양곤에 처음 생긴 5성급 호텔인 인야 레이크 호텔이 있다.
 미얀마 양곤에서 가장 큰 인야 호수(Inya Lake)의 풍경. 호수 주변 곳곳에 새로운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으며, 인야 호수 전망으로 양곤에 처음 생긴 5성급 호텔인 인야 레이크 호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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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일 "미얀마 양곤의 트레이더호텔에 머물고 있는 유엔(UN) 직원 중 10분의 1이 다음 달인 8월에는 나와야 한다"고 전했다. 이는 "최근 미얀마에 여행자들이 늘면서 호텔 가격 상승한 여파"라면서 "테인 세인 대통령은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고 경제적 통제를 완하하고 있어 이로 인해 양곤의 비즈니스 여행객과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호텔에는 빈 객실이 없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호텔 객실수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글로벌 호텔업체들의 양곤 진출을 서둘러 진행 중이다. 메리어트인터내셔널은 올해 중으로 첫 부동산 건축 협상 체결을 추진 중이며, 베스트웨스턴사는 양곤에 있는 그린 힐(Green Hill) 호텔을 인수해 운영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등 여러 나라에서 호텔사업에 투자 중이며, 우리나라 기업인 하나대투증권과 대우인터내셔널 등도 호텔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미디어그룹 <데일리 일레븐(Daily Eleven)>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호텔관광부 장관이 '새로운 호텔을 많이 만들어서 요금을 내려라'고 지시했으며, 오는 12월에는 약 1만2000개 정도의 방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전했다. 현재 미얀마 곳곳에 5성급 호텔은 100% 외국인 투자로 유치하고 있으며, 5성급 호텔 이하는 외국과 국내 합작회사로 추진 중이다.

앤드류 랭돈 존스랑라살 태국·인도네시아 지역 부대표는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양곤에서는 관광객 증가 추세가 지속되는 반면 건축이 뒤처지고 경제적·법적·정치적 리스크가 있다"면서 "양곤에서는 향후 5년 동안 호텔 객실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뗏세예는 "현재 미얀마 개발이 양곤을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데, 양곤만 개발하면 안 된다"면서 "소수 민족이 사는 지방도 함께 개발해야만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소수 민족이 사는 지역에 가려면 신고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신청자가 많아서) 허가받는 데만 해도 한 달이 걸린다"면서 "외국 투자자들이 미얀마를 둘러보려고 해도 안내할 수 있는 제대로 교육받은 여행사 직원도 부족해 여러모로 어려운 실정이라 제도적인 보완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는 '황금의 땅'이기는 하지만  많은 것이 부족한 상태다. '미개척지'란 표현이 붙는 것은 그만큼 불편한 점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개발을 위한 물질적 기본 인프라(전력, 도로, 통신망 등) 부족을 비롯해 사회·제도적인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선 과거 미국의 서부시대처럼 누구나 가서 땅에 선 긋고 깃발만 꽂으면 되는 곳이 아니다. 미얀마에 진출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세 배, 아니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함께 일할 미얀마인들에 대한 충분한 사전 탐색과 이해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회·문화적인 공부를 미리하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면서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 미얀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그:#미얀마, #양곤, #블루오션, #미얀마인, #황금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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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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