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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건너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선 지난 4월 8일부터 225일간 매일 미사가 열렸습니다. 2009년 6월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후 4년 넘게 거리 투쟁 중인 해고자들을 위한 미사였지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7개월 넘게 미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25일간의 미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18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평택으로 돌아가기 전 대한문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문기주, 복기성씨(오른쪽부터)는 "미사를 통해 죽음의 행렬이 멈추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삶이 평화를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평택으로 돌아가기 전 대한문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문기주, 복기성씨(오른쪽부터)는 "미사를 통해 죽음의 행렬이 멈추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삶이 평화를 얻었다"고 말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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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에게 대한문은 새로운 성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쌍용차 형제들이 '미사를 통해 죽음의 행렬이 멈추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삶이 평화를 얻었다'고 고백했을 때 참으로 기쁘고 고마웠지요."

서울에 첫눈이 내렸던 지난 11월 18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4월초, 쌍용차에 있던 분향소가 기습 철거 당한 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주관해 하루도 빠짐없이 열린 미사였다. 사제단 소속이 아닌 신부들도 적지 않게 참여했다.

마이크를 잡은 기폴 안드레아 수녀는 "대한문 미사에서 처음 마주한 건 쌍용차 형제들의 희망 없는 눈빛, 상처 입은 이들의 이글거리는 분노였다"고 말했다. '225일 미사'가 끝난 지금,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모습은 달라졌을까.

지난 22일 오후 대한문 근처에서 문기주(54·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정비지회장), 복기성(38·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 고동민(39·대외협력실장)씨를 만났다. 일정이 안 맞은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매일 미사는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평온함을 주는 안식처였다"고 말했다.

함께 한 450여 시간... "신부님은 내 유치소 동기"

"처음 대한문으로 온 이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투쟁한다는 이유만으로 낮부터 끊임없이 연행되고 끌려가는, 온갖 인격모독과 욕설이 날아드는 상황에서 경찰이 유일하게 우리를 놔두는 게 그 시간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마음에 평온해지는 미사가 기다려지더라고요. 저는 무교인데 이제 성가곡도 다 외워요." (김득중 지부장)

225일 간, 매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해 2시간 정도 계속된 미사. 이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천주교 신부·신자들이 해고자들과 함께 한 시간은 약 450시간에 달한다. 미사가 끝난 후에는 근처 식당으로  함께 가 "뜨끈한 국밥과 쐬주 한 잔"을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7월에는 700여명이 대한문에서 함께 노숙을 하며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복직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고, 8월에는 전국 천주교 사제와 신부 등 5038인이 쌍용차 사태 해결을 염원하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강론을 맡았던 하춘수 신부(마산교구)는 "아마 한국천주교 역사 이래 가장 많은 분들이 동참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정부와 사측의 부당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를 촉구하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자회견 도중 한 해고자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정부와 사측의 부당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를 촉구하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자회견 도중 한 해고자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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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실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사회에 아직도 우리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래도 아직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사실 처음에는 의심도 많았죠. 사람이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하고 나면 의심만 늘어요(웃음). 처음엔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우리한테 뭘 바라고 이러나 했었는데 미사가 한 50일쯤 지나고 나니까 마음이 점점 풀리더라고요. 이 사람들은 저랑 관계없는데, 자기 삶을 희생해서 내 얘기를 들어주는 거잖아요. 매일같이 날 위해 누군가 기도해준다는 게 참…."

하지만 225일 미사는 평탄하지 못했다. 미사 시작 두 달 후인 6월 10일에도 서울 중구청과 남대문 경찰서의 강제철거 시도로 인해 1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해고노동자들은 "우리는 분명 정상적인 집회 신고를 냈는데도, 경찰은 사이렌과 요란한 경고방송을 내보내며 (미사를) 계속 방해하곤 했다"고 말했다. 

김득중 지부장에 따르면 대한문 분향소를 기습 철거했던 서울 중구청은, 이후 해고자들이 임시로 만든 비닐 천막도 '시설'이라며 철거하려고 했다. 문기주 지회장은 "매일 미사 전 후로 경찰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있을 때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몸으로 막아 우리를 보호해줬다"며 "이 과정에서 서영섭 신부는 두 차례 연행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고동민 실장은 "저는 서 신부님을 '형', 아니면 '유치소 동기'라고 불러요"라며 웃었다. 그만큼 신부들에게서 끈끈한 연대의 힘을 느꼈다는 설명이었다. 이들은 "정치인들은 필요할 때만 노동 공약과 국정조사 등을 약속하고는 나중에 다 헌신짝처럼 버리는데, 이 분들은 정말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살기 위한 투쟁... 좋은 소식 가져오겠다"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 설치된 쌍용차 희생자 넋을 기리는 조형물 앞으로 한 해고노동자가 지나고 있다.
▲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기를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 설치된 쌍용차 희생자 넋을 기리는 조형물 앞으로 한 해고노동자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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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미사에서 얼굴 보고 얘기하다보면 친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석하신 분 중 강남에 사는 어떤 50대 여성분이 저한테 '난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다'고 하대요. 평소에 자기 신앙만 지키면서 기도하고 살면 모든 사람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 고맙다고 하신 분들도 계셨어요."

이들에게 미사는 일반 시민들과 종교·예술계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고 실장은 "특히 시민 분들을 만난 것이 좋았다, 우리를 보고 노동문제에 관심이 생겼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대한문 앞은) 쌍용차로 시작했지만 밀양 송전탑·전교조 등 모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자문제를 다룬 <의자놀이>의 저자 공지영 작가도 미사에 참여하곤 했다.

225일을 거의 빠짐없이 미사에 참석했다는 신자도 있었다. "비가 오면 (해고자들) 걱정부터 된다"는 박종금(73·여)씨는 고령의 나이에도 매일 한 시간을 걸어 미사에 참석했다고 한다. 김 지부장은 "어느 날인가는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소속 어르신들이 대한문을 지나면서 서로 '여긴 쌍용차 분향소야, 건드리지마'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별 일 없이 그대로 지나쳐가더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복기성 부지회장은 "수녀님들께 선물로 받았다"면서 품 안에 있던 묵주를 꺼내며 웃었다. 그러나 웃고 있던 얼굴은 가족 얘기가 나오자 다소 어두워졌다. 복씨는 "집에 가는 게 한 달에 한두 번도 안 되고, 그마저도 밤에 가서 아침 일찍 나오는 식"이라며 "아내한테 제일 미안하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심리치유공간인 '와락' 센터가 생긴 후 아내와 아이들이 거기 있다고 하면 마음이 편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평택으로 돌아가기 전 대한문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문기주, 복기성씨(오른쪽부터)는 "미사를 통해 죽음의 행렬이 멈추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삶이 평화를 얻었다"고 말했다.
▲ 평택으로 돌아가는 쌍용차 해고자들 지난 18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평택으로 돌아가기 전 대한문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문기주, 복기성씨(오른쪽부터)는 "미사를 통해 죽음의 행렬이 멈추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삶이 평화를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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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후 4년 5개월, 약 다섯 번의 겨울을 거리에서 맞은 셈이다. 김득중 지부장에 따르면 2009년 6월 노동자 2646명이 정리해고를 당한 이후 퇴직자와 가족 등 24명이 자살·심장마비·뇌출혈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중 현재 복직 투쟁을 하는 사람은 187명으로, 김 지부장을 포함한 30여명은 생계도 접어둔 채 투쟁 중이다.

목숨을 잃은 동료들에 대해 김 지부장은 "투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 분들한테서도 멀어지는 것 같다"며 "이들이 누리고자 했던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문기주 정비지회장도 "우린 살기 위해 투쟁하는 거다, 아직도 자칫하면 극단적인 생각이 드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살려고 하는 투쟁"이라고 말했다.

11월 18일 대한문 앞 마지막 미사를 마친 이들은 "이제는 회사가 대답할 차례"라며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앞으로 분향소를 옮겼다. "미사를 통해 사람이 희망임을 발견했다"는 해고노동자들은 이제 매일 아침 평택 공장 앞에서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들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내년 3월까지는 꼭 좋은 소식을 가져오겠다"고 웃었다.


태그:#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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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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