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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사이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이 최근 게재된 '사는이야기'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인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드리고, 사는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텔레마케팅 아르바이트 체험담을 쓴 김정은 시민기자.
 텔레마케팅 아르바이트 체험담을 쓴 김정은 시민기자.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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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여전히 매력 있는 직업인가 봅니다. 기자가 되려는 대학생들을 아직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눈앞에 널려 있는 기삿거리들은 못 보고, 이미 나온 기사만 자꾸 따라 쓰려고 하기 때문이죠. 대학생들의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의 모습의 기사밖에 없나 싶기도 했습니다.

새내기 대학생인 김정은 시민기자 역시 그랬나 봅니다. 11월 한 달 동안 7편의 기사를 송고했지만, 하나도 정식기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덟 번째로 쓴 기사가 톱 기사가 됐고, 300명에 가까운 독자들이 그 기사를 퍼 나르며 적극적인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김정은 시민기자가 그야말로 '칠전팔기' 끝에 찾아낸 뉴스는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있었습니다. '월급 못 주니 신고하라고? 그래서 신고했더니... ' 기사입니다.

"시급이 7천 원이래. 한 달 동안 하면 백만 원도 더 벌 수 있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 이 글은 김정은 시민기자가 직접 겪은 아르바이트 이야기입니다. 법정 최저 시급 4860원보다 2천 원이나 많은 시급 때문에 시작한 텔레마케팅.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휴대전화를 바꾸라 홍보하는 일이었습니다.

대형 통신사 계열사라 했는데 가보니 회사 이름이 달랐습니다. 시급도 기본 6천 원에 실적에 따라 더 주는 방식이었고요. 어쨌든 글쓴이는 열심히 일합니다. 하루 만에 '실적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시급 9천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참 힘들었습니다.

"야 이 XXX야 니들 내가 찾아가서 죽여버릴 거야! XX! 전화 좀 고만 하라니까. 에이 재수 없어. XX들 다 뒈져버려라."

욕설은 금세 익숙해졌지만, 그런 날은 온종일 우울했습니다. 또 말을 많이 하다 보니 3일 만에 인후염에 걸렸답니다. 친구는 그 때문에 먼저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제일 힘든 것은 바로 실적 압박. 처음과 같은 실적이 나오지 않자, 회사의 압박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결국 "이럴 거면 일 때려치워!" 하는 소리까지 듣게 되자 글쓴이도 일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된 때였습니다.

일을 그만뒀지만, 새로운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월급을 못 받은 겁니다. 회사는 입금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 달을 더 기다리라고 하더니, 결국 장문의 '배 째라'식 문자 통보를 했습니다.

현재 회사 사정이 어려워 9월 25일~30일경에 월급을 지급하겠으니 기다릴 사람은 기다리고 노동부에 신고할 사람은 신고하세요. 하지만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걸 서류로 첨부해서 노동부에 내면 2일~3달은 월급을 안 줘도 무방합니다. 신고할 사람은 신고하세요. 그 대신 신고하는 사람은 11월에 월급 받아보게 될 겁니다.

글쓴이는 노동부에 신고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런 식으로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지 못한 아르바이트생이 무려 40명. 일을 그만둔 지 넉 달이 다 돼가지만, 막무가내로 버티는 회사 때문에 결국 글쓴이는 소송까지 결심했습니다. 글쓴이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거라 스스로 위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직접적인 대화 인용·구체적인 이야기로 독자의 공감을 '팍팍'

김정은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월급 못 주니 신고하라고? 그래서 신고했더니...>
 김정은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월급 못 주니 신고하라고? 그래서 신고했더니...>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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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예전에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월급을 못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를 주는 기사였는데요, 자신을 'A양'이라고 하며 간략히 사례를 전하고 '노동부에 연락해서 도움을 구하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신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기사 형식이었고,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그 기사는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 이렇게 생생한 이야기와 '뉴스'가 있는데, 그걸 매일 신문에서 봐온 '익숙한 틀' 속에 끼워 맞추려고만 하니 있으나 마나 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풀어놓으니, 수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할 만한 좋은 글이 됐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찾은 뉴스를 '자신을 숨기지 않고' 전달하는 것이 사는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대화를 직접 인용해서 생생함을 더한 것이 큰 장점입니다. 첫머리부터 "시급이 7천 원이래. 한 달 동안 하면 백만 원도 더 벌 수 있어!"라는 대화로 시작하죠. 이것을 "친구가 시급이 비싸다고 나를 설득했다"라고 고치면 어떨까요? 독자가 직접 현장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힘듭니다. 이 첫 문장 덕분에 독자는 '어? 무슨 알바기에 시급이 이리 비싸지? 이 글 한번 읽어볼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위에서 인용한 '진상' 고객의 욕설 대화는 어떤가요? 그냥 "진상 고객들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기도 했다"라고 썼다고 생각해보면, 글을 읽는 맛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러 자극적인 욕설 같은 말들을 막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독자들이 현장감을 느끼고 이야기 속 장면에 집중할 수 있게 중요한 대목에서는 대화를 직접 인용해서 써주는 게 좋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이 바로 '기초체력'의 중요성입니다. 글쓰기의 기초체력은 바로 문장력과 어휘력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활자로 옮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로는 밤을 새워도 모자랄 만큼 이야기를 잘하는데, 글로 쓰라고 하면 A4용지 반쪽도 채우지 못해 쩔쩔매는 사람이 있죠. 글쓰기의 기초체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기사작성 요령을 배우고 구성과 취재를 배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글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21쪽, A4용지로 2쪽 반 정도입니다. 7월부터 거의 넉 달 동안 겪은 일을, 하나의 주제 안에서 이 정도로 풀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써낸 것 자체가 글쓴이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꾸준히 체력을 키워가면서 다른 글을 쓰기 위한 '기술'들을 익혀나간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하나를 덧붙이자면, 좀 허망하게 느껴지는 결말입니다. 살면서 소송 같은 것 한 번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노동부에 신고조차 할까 말까 망설였던 글쓴이가 소송까지 하게 됐다면, 그 마음속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그저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끝내지 말고, 그런 독자의 궁금증에 답변해주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지금의 결말은 아무래도 좀 '김새는' 느낌이 드네요.

김정은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글쓴이는 어떤 것이 뉴스가 될까 찾아 헤매다 결국 자신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은 뉴스로 훌륭한 글을 써냈습니다. 평소 쌓아둔 기초체력으로 풍부하고 세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내 준 김정은 시민기자. 못 받은 월급을 받게 되면 그때 또 한 번 좋은 글로 이야기 전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요점정리] "시급이 비싸다"가 아니라 "한 달 일하면 백만 원 벌 수 있어!"라고 써라.


태그:#사는이야기, #생활글, #생활글비평, #사는이야기다시읽기,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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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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