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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한국방송공사(아래 KBS) 사장 최종 후보가 뽑혔습니다. 그 주인공은 이명박 정권 때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지낸 고대영씨. KBS 이사회(이사장 이인호) 11명의 이사(여당 인사 7명, 야당 인사 4명) 중 7명이 그를 추천했다고 합니다. 오는 11월 열리는 국회 청문회가 통과 되면 대통령의 임명을 받습니다. 반복되는 숫자 하나가 눈에 띕니다.

숫자 '7'. 관련 보도에 따르면 KBS 이사진 중 여당 이사 7인이 고 후보를 지지했다고 합니다(관련기사 : "기자들 거부감 가장 높은" 고대영 KBS 사장 후보). 자연스레 물음표 하나가 머리를 스칩니다.

'여당이 7표, 야당이 4표... 결과도 7 대 4. 이 투표, 왜 하는 거지?"

'국민의 방송'을 자처하는 KBS의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가 대놓고 '여소야대' 불균형 구조라니. 왜 그런 걸까. 내가 모르는 뜻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늘어나는 물음표를 지우기 위해 법전을 뒤졌습니다. 

공사는 공사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사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둔다. 이사회는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11인으로 구성하며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 방송법 제46조

KBS 이사회 7대4 지배 구조, 본질은 '정권 장악'

공영방송 사장 선임의 고질적 문제는?
 공영방송 사장 선임의 고질적 문제는?
ⓒ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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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어디에도 7이나 4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KBS 이사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이 보이네요. '각 분야의 대표성'. 방송통신위원회가 생각하는 각 분야의 대표성은 왜 하필 늘 7대 4로 나뉠까. 2013년 국회 방송 공정성특위 보고서 131쪽을 보면 현행 KBS 이사 선임을 설명한 부분에 '(관행적으로 여7, 야4)'라는 작은 괄호가 덧붙습니다.

KBS의 '7대4'의 역사는 2000년 1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방송법이 개정된 그해 KBS 이사회는 12인 체제에서 11인 체제로 바뀌는데, 그 이후 여당과 야당 사이에 '관행'의 탈을 쓴 약속 하나가 성사됩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방송사의 정치적 입김을 강화하기 위한 여야의 '신사 협정'입니다. 아래 최진봉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간략히 정리했습니다.

- KBS 이사진의 여7 대 야4 불균형 구도, 왜 지금까지 지속됐을까요.
"정치적 합의에 의해 관행이 된 거죠. 신사 협정 비슷하게 여야가 합의를 한 것인데. (권력을 잡은 여권이) 최소 이 정도는 해주자 결정한 데 야당이 일정 부분 합의를 한 거에요. 나중에 여야의 위치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관례로 그렇게 해온 거고 아무런 법적인 구속력은 없어요."

-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에 개입해 생긴 대표적인 문제는?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이사진은 정치권에서 여야가 서로 친맥이 있거나 정치적으로 자기 말을 잘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요. 그 사람이 얼마나 능력있고 공영방송을 위한 공정성을 갖고 있는 걸 보는 게 아니라... 그러니 (그 자리가) 소위 정치판의 데뷔 정도의 역할밖에 못하는 거죠. 그런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이 구조는 계속 갈 수밖에 없어요."

최진봉 교수는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을 정부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 또는 임명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공영방송의 사장을 추천하고 임명하는 이사나, 그 이사를 추천하는 방송통신위원회나 모두 정치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것이죠.

독일 공영방송 ZDF의 사장추천위원회는 이사가 아닌 약 70여 명의 종교, 지역사회단체, 법관 등 각계 각층 인사들이 모여 사장을 선발한다고 합니다. 정치 개입을 최소화하고, 방송 수용자인 시민이 모여 직접 사장을 뽑는 것이죠.

여야 7대4의 불균형적 지배 구조를 가진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정말 먼 이야기로 들립니다. 최 교수는 이 같은 사례를 소개하면서 "70명이 힘들면 30명이라도 모아 구성해보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정치권이 추천한 정치적 대리인들이 (공영방송의) 의사 진행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수신료를 내는 국민은 의아합니다. 왜 국민을 위한 방송에서 '네편 내편' 땅따먹기를 할까.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지난 2015년 6월 26일부터 3일간 전국 16개 시도 만 19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면접조사(95% 신뢰 수준)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를 추천 또는 임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반대(37.2%)한다는 답이 찬성(16.9%)한다는 답보다 16.3%p 더 많았습니다.

국민도 인지하는 7대4의 부조리

KBS 사장의 선임 구조
 KBS 사장의 선임 구조
ⓒ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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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응답자가 밝힌 이유는 이렇습니다. '뉴스나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85.4%)'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87.0%)'. 공영방송 사장 또는 이사의 추천이나 임명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9.7%)는 의견보다 '동의한다'는 의견(53.6%)이 더 많습니다.

수년째 '7대4'라는 고질적 문제에 빠진 KBS 이사회는 종종 새 사장이 선임될 때마다 내부 구성원의 지탄과 여론의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편파 방송 지시나 후배 언론인 폭행, 향응 접대 등 윤리적 문제로 내부 구성원에게 불신임을 받아온 이들이 7대4의 기울어진 이사회 투표에서 자연스럽게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청와대 외압' 등으로 결국 재임 중 자리에서 물러난 길환영 전 사장의 경우 사장 선임 단계부터 내부 반발에 부딪혀 큰 진통을 겪었습니다(관련기사 : 길환영 신임 KBS 사장, 임기 시작 전부터 기습 취임식). 더 가까운 예로 지금 KBS 새 사장 후보에 선임된 고대영 후보자가 있습니다. 그는 보도국장 시절 기자협회 신임투표에서 93.5%의 불신임을 받은 바 있습니다(관련기사 : '노무현 서거 축소' '미국 스파이'... 고대영의 자취).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7대4의 이사회 지배 구조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권력을 잡은 정권들이 공영방송을 정권 장악의 도구로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장을 어떻게 뽑아도 공정한 방송을 만들겠다는 소신만 있으면 되는데, 지금은 자기를 뽑아준 대통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도록 헌납하는 상황"이라면서 "영국 BBC 사장도 마찬가지로 여왕의 임명을 받지만, 이사회격인 'BBC 트러스트'가 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는 정치적 입김을 가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KBS, #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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