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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며 해마다 수십조를 산업에 투자한다. 70년, 80년대 노동을 억압하고 재정 지원을 통해 특정 산업을 키워온 산업 전략은 오늘도 유효하다. 기업 친화적, 규제 완화, 외자 유치 등의 단어들은 남발되지만 줄지 않는 산업재해,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 등의 통계 자료는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산업정책에는 왜 '노동'이 빠져있을까? 김종훈 의원실에서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는 낯선 '노동'을 국정감사의 주제로 잡았다. 마치고 나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주제였다고 자평했다. 이래저래 수집한 자료들과 허둥거리며 첫 국감을 치렀던 초선의원 김종훈 의원실의 이야기가 버리기 아까워 오마이뉴스 지면을 빌려 기록으로 남긴다. - 기자 말

고용보장 촉구 기자회견
▲ 하이디스 고용보장 촉구 기자회견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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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스, 한국산연... 정리해고 된 노동자

하이디스는 스마트폰 등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이 기술을 노린 중국의 BOE 사와 대만의 E-ink사에 10여 년간 차례로 매각되었다. 중국 BOE 사는 원금을 회수하고 회사를 부도처리 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대만의 E-ink사는 공장을 폐쇄하고 특허 수입금을 챙기며 국내 법인을 유지하고 있다. 특허료만 1년에 천억 원을 벌어들이지만, 생산공장을 정리하면서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었다. 끝까지 남은 90여 명의 노동자는 3년째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회사와 싸우고 있다.

한국산연은 일본의 산켄 전기가 100% 투자한 회사로 1974년 마산 자유무역 지역에 입주해 42년간 각종 세제 혜택을 받으며 기업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회사가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며 생산부문의 외주화를 발표했다. 생산부문 노동자 61명은 9월 31일 해고노동자의 신분이 되었다. 그리고 창원에서 서울을 오가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묻지 마 외자 유치, 외투 기업 횡포에는 속수무책

처음엔 하이디스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산연 문제까지 터졌다. 두 사건을 모아놓고 보니 산업부의 외자 유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게 필요해 보였다.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돕기 위해 보기도 힘든 각종 정책보고서가 발간되는데, 그때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외국인 투자유치에 대한 평가서가 나왔다. 제조업 중심의 외국인 투자유치 지원제도가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외자 유치는 절대 선이다. 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까지 외투 기업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조세감면, 자유무역 지역 입주 지원, 토지제공, 임대료 감면, 기반시설 등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외국자본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새로운 기술도 들어온다지만, 이제 옛말이다. 우리나라 기술은 이미 경쟁국들에 먹잇감이 되었고, 저임금을 미끼로 외투 제조업을 유치하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책도 한계에 왔다.

익숙하지 않은 법 조항을 찾아보았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다는 것도, 외국인투자 촉진법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의원실에서는 외국인투자 촉진법을 관리법으로 개정하는 것, 산업기술 보호법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해 보자고 토론되었다. 국정감사 기간 외자 유치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당장 하이디스 노동자들,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산업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면 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 산업부는 늘 기업 간의 문제, 노사 간의 문제라며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답한다. 그런데 사실 정부가 하려고 들면 뭔들 못하겠는가? 기업들에 수백억 원을 모금하여 재단을 설립하고 대학교 학칙까지 바꾸는 것이 지금의 권력이 아닌가?

그동안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대만 원정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 대만에선 노동부가 나서서 하이디스 본사와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주선해 주었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오히려  대만 정부가 더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작 우리 정부는 스스로 FTA 규정을 대면서 외국자본을 보호하고 있다.

뭉개고 있는 산업부에 그것을 요구할 근거를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의원실 선배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을 찾았다. OECD는 다국적기업의 국제투자를 장려하는 대신 인권, 고용, 노동, 환경 등의 사회적 책임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에도 산업부 산하에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이행을 위한 한국 연락사무소'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해 보였다. 김종훈 의원실은 산업부에게 이 국제기준을 준수하라고 질타하기로 마음 먹었다.

국정감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7분

김종훈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주형환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김종훈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주형환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 김종훈의원실 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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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첫날 피감기관은 산업부.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회의가 계속되지만 우리 의원의 발언은 단 세 번이다. 시간은 한 꼭지당 고작 5분에서 7분 정도. 한 번에 한 개의 주제를 다루면 하루에 3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김종훈 의원실에선 이날 조선산업 구조조정, 외자정책의 문제, 성과연봉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보좌관 한 명이 며칠씩 준비한 내용을 의원이 몇 분간 압축해서 질의해야 하기 때문에 내용파악이 안 돼서 질의 중간에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이은재 국회의원의 MS 오피스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장관과의 쓸데없는 논쟁도 피해야 한다. 닳고 닳은 장관과 논쟁하다 보면 우리 주장도 못 하고 시간이 끝나기도 한다. 국회방송을 보면 의원이 질의라고 해놓고 대답 시간도 주지 않는 황당한 경우가 있는데, 주어진 시간은 짧고 해야 할 얘기는 많으니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어쨌든 우리 주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사실 국정감사 있기 전 데뷔전에서 몇 번 당한 터다. 국회 생방송을 보면서 의원실 보좌진들은 탄식했다. 보좌진들은 경험을 토대로 의원님에게 줄 맞춤 질의서를 만들었고, 의원님도 생존을 위해 빠르게 적응하셨다.

새누리당 없으니 오히려 질 높은 국정감사?

우리는 하이디스 사장, 한국산연 사장, 그리고 안 올 줄 알면서 대만 E-ink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이디스 노동조합 지부장은 참고인으로 불렀다. 7분 정도의 시간에 네 명의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다. 하지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신청하는 것도 압박의 수단이다. 언론의 관심이 큰 국정감사 첫날이라 증인과 참고인이 넘쳐났다. 증인을 줄여달라는 요청이 왔다. 대만의 E-ink 본사 사장 증인신청은 취소했다. 나중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다행히 새누리당이 국정감사를 거부하면서 여유가 생겼다. 발언 시간이 부족하면 위원장이 적당히 추가시간을 주었다.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국정감사의 질도 높아졌다. 첫 국정감사에 적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그날 의원님은 대만 E-ink 사장이 취소된 걸 모르고 계셨다. 어찌 된 일인지 증인 명단에는 직위는 E-ink 사장이라고 적혀있고, 이름에는 한국 사장 이름이 적혀있었다.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보좌진의 잘못이었다. 의원님은 증인이 본사에서 온 사람이 줄 알고 질의를 하셨다. 의도했던 대답이 안 나온 건 당연한 일.

국정감사를 보고 있던 보좌진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달려가서 마이크를 잡고 싶은 심정.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이를 수습한 사람은 하이디스 노동조합 지부장이었다. "제가 답변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오랫동안 의원들 앞에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부장님이 몇 분에 걸쳐 쏟아냈다. 당사자의 살아있는 이야기는 몇 마디만 들어도 감정이 일어난다. 국정감사 기간 현장에 찾아가고 증인과 참고인을 불러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상황파악을 하신 의원님은 마무리 발언으로 하이디스 사장과 한국산연 사장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장관에게 사건해결을 위해 뭐라도 하라며 비판했다. 마이크가 꺼졌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을지로 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우원식 의원도 시간을 내어 하이디스 사태를 해결하라며 산업부 장관을 질타했다. 이렇게 여러 의원이 같은 발언을 하면 주장에 힘이 실린다. 사실 하이디스 정리해고 문제는 작년 국감에서도 언급이 되었다. 산업부가 움직이지 않으니 의원들이 이런저런 근거로 정부가 나서라며 질타하는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는 끝나고 책임감은 쌓이네


하이디스 노동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김종훈의원
▲ 하이디스 하이디스 노동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김종훈의원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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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긴장된 국정감사의 한 꼭지가 끝났다. 사실 언론에 국감 내용이 몇 줄 났을 뿐 해결된 건 없다. 산업부는 여전히 노사문제, 기업 간의 문제라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늘어난 게 있다면 의원실의 책임감이다. 하이디스 노동조합은 산업부 국회의원들과 가을에 E-ink 본사가 있는 대만에 한 번 방문 하자고 요청했다. 한국산연의 노동자들은 어제도 의원실을 다녀가며 작전구상 중이다.

초선의원에 힘없는 노동자 국회의원 김종훈, 그리고 의원실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용감한지도 모르겠다. 국정감사는 끝났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 비를 함께 맞아주는 게 우리 일이라고 한다.


태그:#김종훈, #하이디스, #국정감사, #한국산연, #김종훈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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