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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란 이름도 꺼내기 힘들었던 10월부터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된 12월 9일까지 국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국회도 참 바쁘게 움직였다. 긴장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의원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바쁘고 정신도 없었지만 국민들과 함께해 행복했던 지난 두달 의원실 활동을 돌아본다. - 기자 말

#나와라_최순실 피켓시위

10월 24일, 그날은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있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의원실은 분주했다. 며칠 전부터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틀 전에는 #나와라_최순실 현수막이 서울시내 곳곳에 걸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때는 확신은 없고 의혹만 있었다.

의원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 맞춰 뭐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은 터였다. 하지만 조심스러웠다. 통합진보당 출신의 무소속 국회의원이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것이 너무 튀는 게 아닌지, 정치공세에 휘말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그때만 해도 이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 갈 사안이라고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적 요구가 있으니 피켓시위를 준비하자고 결론이 났다. 그런데 또 구호를 어떤 수준에서 정할지도 고민이었다. 아침까지 구호의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의혹만 가지고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거론하기에 부담스러운 탓이었다. 시정연설 시작 30분전에 의원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왕 할 거면 시원하게 하는 거지 뭐~"

의원님의 이 말에 보좌진들의 부담도 줄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구호가 "백남기 농민 부검대신사과! #나와라_최순실"이었다. 우리는 두 장의 피켓을 준비했다. 튀는 색깔이 뭐지?, 잘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고민하며 10여장의 견본을 프린트 했다. 그렇게 주황색의 양면 피켓이 만들어 졌다. 

김종훈의원이 맨앞자리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나와라_최순실 김종훈의원이 맨앞자리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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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시위 명당자리

의원님의 자리는 의회의 맨 앞자리다. 1당은 가운데 자리를 주고 교섭단체를 먼저 배치한다음 맨 오른쪽에 비교섭단체를 배치한다. 무소속 의원은 오른쪽 맨 앞에 배치한다. 무소속 의원 중 가장 나이가 적은 의원님의 자리는 그중에서도 맨 앞자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곳에서 2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두 개의 프롬프트(연설문을 읽는 투명한 유리판) 중 오른쪽 프롬프트 바로 앞이 의원님의 자리니 피켓시위 장소로는 명당이라 하겠다.

당시만 해도 위용이 넘치던 박근혜 대통령을 자극하는 '#나와라_최순실, 백남기농민 부검반대!' 피켓을 들고 있었으니 대통령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피켓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낭독에는 실수가 많았다. 오른쪽 프롬프트를 잘 쳐다보지도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악수를 하면서 퇴장할 때 김종훈 의원이 피켓을 들고 일어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나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피켓과 마주한 대통령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양면으로 인쇄된 피켓은 앞에서 찍어도, 뒤에서 찍어도 사진이 잘나왔다. 피켓시위 명당자리가 만들어낸 오늘의 포토였다.

그날 피켓시위 모습은 한 달간의 국정감사보다 많이 가사화 되었다. 그날 저녁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갔더니 의원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사람들은 "오늘 참 통쾌했다", "잘했다"며 격려해주었다. 듣보잡 국회의원이 유명해진 순간이었다.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뻔뻔함에 국민들의 분노가 컸던 것 같다. 

그날 피켓시위는 우리만 준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시정연설 전날 알고지내는 의원실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다. 피켓시위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우리만 나서기엔 부담스러웠다. 다른 정당의 의원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다행히 정의당도 그날 피켓을 들었다. "부검대신 특검, 비리게이트 규명" 하지만 정의당 역시 최순실을 거론하기는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더불어 민주당의 몇몇 의원들은 무소속의원들과 정의당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고 보좌진들에게 피켓을 가져오게 해서 피켓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의원님은 지인들에게 그날의 모습을 무용담처럼 말씀하시곤 하신다. 그만큼 개인에게도 부담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순간의 결심과 명당자리가 만들어 낸 장면이었다.

박근혜 하야 기자회견

한 달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 기세등등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하루하루 정세가 변하던 시기였다. 시정연설과 피켓시위가 있었던 10월 24일 저녁 JTBC가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의 연설문 개입 의혹 보도를 했다. 25일 두 번째 보도를 이어갔다. 곳곳에서 박근혜대통령의 하야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대통령하야가 실검 1위로 올랐다.

JTBC 보도 다음날 의원실에서도 긴급하게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내일아침(26일)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하자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여론이 높은 만큼 우리가 앞장서서 대통령 하자 주장을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현실 가능성이 높지 않은 정치적 주장에 그칠 것이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하야 주장을 한다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하야가 아니라 퇴진'이라는 이야기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여하튼 다음날 우리는 국회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무소속 의원의 주장이었지만 국회의원의 주장이니 많은 언론들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내친김에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하야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계속적인 대통령하야 주장에 언론들도 하나둘 관심을 보였다. '새가 날아든다' 팝케스에서 출연요청이 왔고,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왔다. 

광화문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김종훈의원 광화문 1인시위 광화문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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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대통령 하야 촉구 1인시위은 여의도 5번 출구에서 아침출근 선전으로 바뀌었다. 의원님의 제안과 보좌진들의 결심으로 우리 의원실은 탄핵되는 날까지 여의도 5번 출구에서 아침 출근선전을 했다. 

하야 여론이 커질수록 무소속의원 역할 줄어

곧이은 대통령의 사과 기자회견은 국민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정의당은 얼마 안 있어 대통령 하야를 공식 당론으로 채택했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이재명 성남시장도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다. 10월 29일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첫 주말집회가 청계천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대통령 하야 주장을 앞서서 한 탓에 이재명 시장, 노회찬 의원과 함께 김종훈 의원이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날 집회에 주최 측도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청계천이 좁아서 무대를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주말 대통령 하야 촛불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국회 내에서 하야 여론을 확산하기 위해서 몇 번의 기자회견을 하고 토론회를 개최했다. 10월 31일에는 야당의원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해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입장을 결정해줄 것, 대통령하야를 촉구하는 의원모임 결성을 제안했다.

11월 1일(화)에는 국민여론을 국회 안으로 가지고 오자는 취지로 '최순실 국정농단, 국민은 하야를 원한다'는 성토대회를, 11월 3일은 새누리당사앞에서 '새누리도 공범이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1월 5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즉각 하야, 민주적 국민내각 구성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토론회도 두 번이나 열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민의당도, 더불어민주당도 차례로 대통령 하야를 당론으로 정했다.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열리고 월요일이 되면 야당들이 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청와대의 사과와 정치공작에 흔들리는 야당을 바로세우는 것은 주말 촛불이었다.

촛불이 중심을 잡고, 야당들도 자기역할을 해내기 시작하니 무소속의원들의 역할은 점점 줄어갔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더 깊어지졌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기도 했다. 11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때 야당의원들은 국회로비에서 피켓을 들고 대통령을 맞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우리 의원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반성해야 했다. 국회 일정 하나하나가 생소하니 조금만 긴장을 놓치면 쫓아가기도 바빴다.

12월 9일 대통령 탄핵하는 날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상정되었다. 12월 6일 우리 의원실은 국회를 국민에게 개방하자는 기자회견을 했다. 국민이 이렇게 정치에 관심을 가진 때가 언제인가? 정치 축제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국회개방을 요구하며 정세균 의장 면담도 진행했다. 정세균 의장도 고려해보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시민사회에서도 국회의 잔디광장을 개방하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국회개방을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언론은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야당 의원들은 대회의실을 빌려놓고 24시간 토론회를 준비하는 등 실제 국회를 정치축제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국회는 여전히 여당과 야당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곳이었다. 탄핵 당일 대회의실 토론회는 취소되었다. 국회 개방을 주장하며 간담회실을 빌려서 행사를 만든 우리 의원실에도 20여 명의 출입만 허용한다는 통보가 왔다. 국회 출입은 엄격해졌다. 차벽도 생기고 경찰들도 배치되었다.

국회를 열어라 기자회견
▲ 기자회견 국회를 열어라 기자회견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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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국회 잔디광장은 개방되지 못했지만, 많은 시민이 전날부터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탄핵안이 가결되는 그 순간 국회 안과 밖에서 국민이 함께 기뻐했다. 돌아보면 국민이 다 해낸 일이다. 하야 여론을 만들어 낸 것도, 분열하는 야당을 탄핵에 연대하도록 돌린 것도, 새누리당을 분열시킨 것도 국민이 해낸 일이다.

그래도 우리 의원실도 국민과 함께 조금이라도 기여하지 않았을까? 숟가락이라도 얹고 싶은 심정으로 지난 두 달 의원실의 활동을 돌아본다. 너무 정신없었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종훈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종훈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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