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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 공기업 민영화가 봇물처럼 진행될 때 정부는 한국전력에서 한수원을 떼어내고 화력발전사를 5개(동서, 남부, 남동, 서부, 중부)로 분리했다. 민영화와 구조조정의 당사자였던 화력발전사는 별도로 단일노조를 결성해 민주노총에 가입한다. 그리고 2002년 민영화저지를 위해 한 달이 넘는 역사적인 민영화 저지 파업투쟁을 벌였다.

잘 나가던 공기업 노동조합이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소수노조가 되었다. 조합원들의 권리와 사회공공성, 청년들의 꿈을 위해 싸운 그들이 조합원들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발전소 민영화에 맞선 발전노조 오래된 싸움. 발전노조 잔혹사를 3회에 나누어 게재하려고 한다. -기자말
   
① 발전노조는 어떻게 소수노조가 되었나?
② 이명박근혜 정부가 발전노조를 차별관리 해온 방법
③ 불법의 합법화? 현장에서 민주노조의 답을 찾는다

'잘 나가는 공기업 노조 간부가 찍혀 봤자...'

어린이집 아빠 모임에서 발전소에서 일하는 아빠 한 분을 만났다. 그냥 잘 나가는 공기업 직원인 줄 알았는데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그런데 술 한잔하며 노동조합 이야기가 나오면 '회사에 찍혔다', '승진은 물 건너갔다'고 이야기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동조합 하면 다 그렇지 뭐', '잘나가는 공기업노동조합 간부가 찍혀 봤자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나 보다. 까닭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해 5.1절 집회에서 그 형을 만났다. 그런데 노동절 행사에 발전노조는 간부 몇 명만 참여한 듯 보였다. '2002년 한 달이 넘게 파업을 벌인 노동조합이 많이 약해졌나 보다. 몇 명 나오지도 않았네', '그래도 5.1절인데 너무하군. 조합원 좀 데리고 나오지' 얼핏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형과의 인연은 노동조합보다는 어린이집, 아빠 모임, 마을 모임에서 이어졌다. 

발전노조를 자세히 알게 된 건 국회에서 일하게 되면서다. 민주노총 소속 의원이다 보니 노동조합 간부들도 편하게 찾아온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형과 인연이 생각이나 호구조사를 해보니 단번에 공감대가 생겼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발전노조 조합원이 전국적으로 2000여 명 남짓이라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직원이 1만 여 명임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사무처장은 300페이지가 넘는 책 한 권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MB정권에 의해 자행된 발전노동조합 탄압백서', 사실 대한민국에서 탄압 받지 않는 민주노조가 몇 개가 되겠나? 책으로까지 낸 걸 보니 그래도 뭔가 억울한 사연이 있나보다 싶었다. 국정감사로 바쁜 철이었다. 책을 뒤적거리다 책꽂이에 가만히 모셔다 두었다.

오죽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발전 5사에 대한 국정감사를 노동조합과 함께 준비했다. 동서발전 측이 이길구 전 사장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 소극적이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벌금을 대신 납부해주었다고 주장했다. 이길구 전 사장은 내부 절차까지 무시하고 자메이카 전력공사를 인수해 회사 측에 약 200억 원의 손상채권을 발생시켰다. 감사원도 이길구 전 사장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것을 지적했다.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노동조합 간부들을 자주 만났다. 과정에서 노동조합 간부들의 이길구 동서발전 이길구 전 사장에 대한 다소 과도한 원망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내 상식 이상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분노케 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노동탄압 백서를 다시 꺼내 본 것이 그즈음이다.

발전노조 차별대우 규탄 기자회견
▲ 기자회견 사진 발전노조 차별대우 규탄 기자회견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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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선진화의 실체

2008년 7월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원칙을 발표한 이후 6차례에 걸친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노사관계 선진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공공기관 선진화의 실질 내용이 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 퇴출프로그램 등이 그 내용이라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명박 정부는 늘 그랬듯 설득이 아니라 공기업 노동조합을 철밥통, 강성노조로 고립시키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방법을 취했다. 애당초 설득은 불가능한 내용이기도 했다. 

2002년 이후 민영화 저지를 위한 파업과 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여온 발전노조는 그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동서발전은 2002년 일부 조합간부를 내세워 발전노조를 탈퇴하고 새로운 기업별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총투표를 진행했다. 결과는 40.8%로 조합원들에 의해 부결되었다.

이 계획이 무산되자 플랜B라는 이름으로 다시 기업별 노동조합을 수립하고자 한다. 회사 측이 청와대를 동원, 노동부를 압박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관련 기사). 결국 기업노조인 동서발전노동조합이 설립된다. 지난 2011년 3월, 서울 행정법원은 동서발전노조가 복수노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2년 회사 측의 개입으로 설립한 동서발전노조는 회사 측과 공기업 최초로 무파업 선언, 사회적 책임완수를 위한 노사공동 실천 선언 등으로 노사협력대상을 수상한다. 발전노조 파괴는 경영실적으로 평가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동서발전은 발전 5사 중 유일하게 성과연봉제에 합의했다.

이후 복수노조가 합법화된 2011년부터 7월이후 1년 사이에 동서발전의 모범을 따라 5개 발전사는 각자 기업별 노조를 결성했고 전체 조합원 대상자의 75% 이상을 조직하면서 대표노조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태그:#김종훈, #발전노조, #노조탄압, #이명박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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