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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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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타는 목마름으로>를 표제작으로 하는 동명의 시집이 1982년 5월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황토> 발간 이후 22년 만이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사연이 깊다. 문학계 일각에서는 표절 시비가 일었고, 연구가들 중에는 그가 출감 후에 쓴 작품으로 인식하였다.

재판을 받을 때 변론을 맡았고 가장 많이 면회를 하면서 그를 깊히 알게 된 홍성우에 따르면, 그가 구속된 다음에 원주 김지하의 집에 지인 김정남이 가서 뒷설거지를 하면서 이 미발표 원고를 찾아냈다고 한다. 이 원고는 홍성우에게 전해지고 법정에서 낭독되었다. 

<타는 목마름으로>가 그때는 미발표 원고로 아무도 모르는 채 있었습니다. 그 원고를 보니까 아주 완전히 '왔다' 더라고요. 이 시를 법정에서 낭독하고 싶어 내가 마지막으로 변론하겠다고 한 거예요. 이게 긴 변론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이런 시를 노래를 목청 높여 부르는 사람이 공산주의자일 수 있느냐, 이런 거였지요. 논리자체는 너무나 단순할 지 몰라도 메시지는 분명하지요. (주석 10)

 5공시대 학생ㆍ노동자들의 반독재 시위현장에서 불려지기도 했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전문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서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 시집이 나오면서 문단에서는 프랑스의 저항 시인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표절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젊었을 때 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스위스에서 요양을 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종군하였으며, 1942년 <자유>가 수록된 <시와 진실>을 발간하고, 2차대전 후 <불사조> 등을 펴냈다.

<자유> 22개 연 중 앞의 3개연을 소개한다. 마지막 두 연만 제외하고는 모두 "네 이름을 쓴다"로 끝나고 있다.

 나의 학습장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들 위에
 모래와 구름 위에
 네 이름을 쓴다

 내가 읽었던 모든 책장들 위에
 모든 백지들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네 이름을 쓴다

 황금빛 마음그림 위에
 군인들의 무기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네 이름을 쓴다. (주석 11)

이와 관련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음으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그 시가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표절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민주화의 대의를 위해 입을 다물었다. 어떤 것이건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싸워야 했던 시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엘뤼아르의 <자유>가 길고 반복적인 성찰로 자유를 내면화하는 데 비해 민주주의를 절규하는 목소리로 '호소'하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그 감동이 그만큼 더 직접적이기에 더 훌륭한 시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그것이 표절을 말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기도 했다. (주석 12)

김지하는 1991년 2월에 쓴 <'나는 도적' 고백운동 벌이자>에서 술집에서 일하는 한 여자에게 임신을 시켰다. 나는 당황하여 싫다는 그녀에게 돈을 주어 억지로 낙태시켰다. 그리고 나서 차버렸다."(주석 13)와 <양심선언>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 등 치부를 '고백' 하면서 <타는 목마름으로>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엘뤼아르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만 표절은 아니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석
10> <홍성우 대담>, 157쪽.
11> 이찬규, <불온한 문화, 프랑스 시인을 찾아서>, 110쪽, 1986.
12> <황현산의 밤이 표절이다. 표절에 관하여>, <경향신문>, 2015년 6월 24일.
13> 김지하,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 3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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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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