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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 22일 대우조선해양에서 "조선하청 노동자 총파업 투쟁 보고, 농성해단식"을 열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 22일 대우조선해양에서 "조선하청 노동자 총파업 투쟁 보고, 농성해단식"을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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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사태가 51일 만에 타결되었다. 그간 조선업 종사자들이 고임금을 받고 일할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번 파업을 통해 모두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조선업 수십 년차 기술직 월급이 겨우 200만원 밖에 되질 않는 데다 툭하면 임금체불에, 사회보험료 체납, 소규모 하청업체의 폐점 등으로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때는 조선소에서 일한다고 하면 소위 대우받던 시절들도 있었다. 잠시 대한민국 조선소 역사를 보자면, 1929년 방어진 철공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가 설립되고 이후 1937년에 조선중공업(대한조선공사의 전신, 현재는 한진중공업) 설립으로 기틀이 확립 된 후 해방이후에는 6.25전쟁을 거치면서 군수물자와 원조물자의 공급을 위해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조선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대 초반 정부의 강력한 중화학공업 정책으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조선업강국 자리에 올랐고, 2003년 이후에는 '수주량, 수주잔량, 건조량' 3개 부문 모두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세계 1위라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어떤가
 
김재연 진보당 대표가 지난 8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건조 중인 선박에서 농성하고 있는 유최안 부지회장을 만나는 모습.
 김재연 진보당 대표가 지난 8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건조 중인 선박에서 농성하고 있는 유최안 부지회장을 만나는 모습.
ⓒ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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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조선소 기능공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어떻게 변해 있는가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하청노동자들 파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입사 수십 년차 기술직 월급이 200여만 원 안팎이고, 툭하면 임금 및 사회보험료 체납 등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발표에 따르면 "하청기능직 노동자는 2014년 13만 975명에서 지난 5월 4만 8303명으로 무려 63.1%가 줄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업 등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기간산업의 한 축이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노사 관계에 있어서 노든 사든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 돼서는 안 된다. 국민이나 정부나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라고 입장을 밝힌바 있다. 그의 말만 보자면, 이번 파업사태에 이르게 한 근본적인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는 모습. 윤 대통령은 이날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사태와 관련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는 모습. 윤 대통령은 이날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사태와 관련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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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종사자들의 노동환경이 지금처럼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흉은 바로 '다단계하도급' 구조에 있다. 이러한 하청구조가 초기에는 하청사들도 돈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워낙 많은 하청사들이 출혈경제하여 물량팀으로 재하도급 되면서 결국 '인건비 따먹기식'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건설업처럼 조선업은 수주산업이므로 원청사는 공기를 앞당기면 할수록 큰 이익이다. 여기에 만약 저가수주를 했다면 공기 단축 압박은 더 심해진다. 목숨을 건 '돌관 작업(突貫作業), 야리끼리('해치운다'는 뜻의 공사현장 용어, 정해진 할당량을 채워야 끝나는 일)는 이런 작업 형태에서 주로 나오는 말이다. 현장에서는 인건비가 많이 드는 직영 공사보다는 하청이, 하청보다는 재하청 형태로, 종국은 물량도급으로 속도전 공사를 하는 편이 공기를 단축시킨다고 본다.

물량팀은 이 속도전 공사에 가장 '특화'된 기능 인력들이 선박 건조 작업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취부, 용접, 그라인더(사상) 업무를 팀 안에서 나누어 맡아 주어진 공사기간 내에 이러한 물량 공정 할당 작업을 처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형적인 작업 형태는 노동자들이 항상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되게 만든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다. 각종 구두계약들이 난무한 가운데 퇴직금, 4대보험, 연장·야간·휴일수당 등 법정가산수당의 권리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업 표준근로계약서 및 원하청 표준하도급계약서가 하루 속히 필요하다.

조선업, 건설업의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이 부분은 건설업에서 불법 다단계하청 구조를 없애기 위해 적용되었던 이른바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사례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공참여자 제도(이른바 '시참제')는 수년전 전문건설업체(하수급인)가 건설현장 팀반장(시공참여자)들에게 합법적으로 사업주 지위인 '도급'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였다. 그런데 삼품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막겠다며 책임시공 미명 아래 도입된 시참제가, 결국은 잦은 임금체불 및 산재 등 취약계층인 일용노동자의 근로조건과 노동기본권 보호에 부합하지 않아 인권위와 노조 등의 반대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됨에 따라 2008년 1월 건설업 시참제는 폐지되고 만다.

그러나 여전히 음성적인 시참제 노무공급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나, 최소한 체불 및 산재 발생시 원하청이 연대 책임을 질 수도 있으므로 이는 시참제 폐지에 따른 긍정적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업처럼 하청노동자들의 임금격차가 갈수록 양극화 되어 가는 이유는 이러한 다단계하도급이 원흉인 것이다. 하여 건설업의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사례를 조선업에도 참고하는 게 필요하다.

지난 1월 무려 6명 생명을 앗아간 광주 현대산업개발 초고층 아파트 붕괴 사고도 무리한 설계변경과 물량팀을 통한 속도전 거푸집 동바리 해체가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다단계하도급 공사 관행은, 노동격차는 당연하고 부실시공은 물론이고 항상 노동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주들은 처음엔 재하도급 물량팀들에게 좀 더 많은 임금을 보장하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하청사들끼리 물량팀간 서로 경쟁을 시켜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임금 제살 깎아먹기 공사 관행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불법파업, 법과원칙' 운운하기 전에 우리나라가 '해양강국' 명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뜨거운 철판위 폭염과 혹독한 한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일해온 조선소기능공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노동계도 제도개선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원-하청 공동 산별 교섭을 통해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정착, 나아가 사업장내 후진적인 작업 문화들이 사라지도록 해야할 책임도 있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종국씨는 전 경기노동권익센터장으로 근무했습니다.


태그:##대우조선해양 파업, ##하청 재하청, ##조선소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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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20년간의 안전보건 활동 및 일자리산업정책 등 경험을 살려 취약계층 귄익보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 경실련 시민안전감시센터 대표 전)경기도청 노동권익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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