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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15일 김대중 납치사건 일본 측 진상조사위원회의 덴 히데오 참의원이 방한했을 때의 사진. 김대중, 김대중 좌측에 덴 히데오 참의원, 덴 히데오 좌측에 한승헌 변호사.
 1993년 9월 15일 김대중 납치사건 일본 측 진상조사위원회의 덴 히데오 참의원이 방한했을 때의 사진. 김대중, 김대중 좌측에 덴 히데오 참의원, 덴 히데오 좌측에 한승헌 변호사.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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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여름에 이어 가을까지 계속되었다. 11월 13일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형이 선고되었다.

민간인이 군사재판에 회부되고 민주주의 국가들의 상례인 3심제도가 사라진 2심제 군사재판이었다. 그는 최후진술에 나섰다. 20분 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요지다. 

내가 재판부에 요구하는 것은 우리들의 형기의 장단이 아니라 유ㆍ무죄를 제대로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민주화를 요구한 우리들이 민주화를 약속한 정부에 의해서 체포된 것은 매우 코믹한 일이다.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정부를 비판했다. 비판을 한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느냐로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척도가 결정된다. 최근의 사회적 혼란은 정부를 비판할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주석 4)

기결수가 된 그는 군용차에 실려 행선지도 모르는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창문에 스치는 방향은 남쪽이었다. 

나를 싣고 간 군용차의 종착지는 뜻밖에도 김천소년교도소였다. 나이 50을 향해서 '일로매진'하고 있는 나를 어찌하여 소년교도소에다 집어넣었을까? 궁금증은 곧 풀렸다. 악독한 군사정권도 내가 소년처럼 천진난만하다는 점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어서 나만 소년교도소로 보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입주(?)하게 된 곳은 이른바 '특별사'라고 해서 외딴 독채에 나 한 사람만 수용되었다. 그 전까지의 독방생활이 그곳에서는 독채생활로 격상된 셈이었다. 그러나 방 5개로 된 작은 건물의 한가운데 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옆방도 또 그 옆방도 텅텅 비어 있는 불길한 고요함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런 중에도 나에게는 마음에 드는 일 한 가지가 있었다. 마치 학교교실의 유리창처럼 옆으로 여닫는 창문이 시야를 시원하게 넓혀주어 감옥살이의 답답함을 덜어주었다. (주석 5)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소견서’ 발표할 때의 모습. 1993년 11월 24일, 좌측에 서서 발표하는 인물이 한승헌 변호사.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소견서’ 발표할 때의 모습. 1993년 11월 24일, 좌측에 서서 발표하는 인물이 한승헌 변호사.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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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을 바라보는 사람을 소년교도소로 보냈다. 그는 "소년처럼 천진난만하다는 점을…."라고 유머로 넘기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처사였다. 정보기관의 회유에도 도장을 찍지 않고 하여 괘씸죄까지 추가되었을 것 같다. 

이로써 그는 일반의 감옥살이 외에 군형무소와 소년교도소까지 거치는 다양한 수형자가 되고, 뒷날 여성교도소만 빼고 다 다녔다고 너스레를 떠는 자료로 삼았다.

얼마나 미웠으면 소년교도소 독채에 갇우고 좌우 앞의 모든 방을 공실로 하는 '무인도'의 옥살이를 시켰을까. 이 시기 그는 저작권법을 비롯 동서의 문학작품을 폭넓게 섭렵했다. 

1980년도 서산마루에 걸리는 12월이 왔다. 나는 그만 풀려났으면 싶어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성탄절에는 꼭 석방되게 해주십사고, 그러나 성탄절 특사는 나를 외면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징역살이를 계속하고 있는데, 다음해 5월 어느날 뜻밖에도 석방되었다. 석가탄신일 특사에 낀 것이었다. 기도는 하느님께 드렸는데 석가탄신일에 석방된 것이다. 1년에서 꼭 1주일이 모자라는 동안의 '국비장학생'생활은 이렇게 끝났다. (주석 6)


주석
4> 한승헌, <5.17사건과 나>, <역사의 길목에서>, 51쪽, 나남출판, 2003.
5> 앞의 책, 57쪽.
6> 앞의 책, 5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한승헌,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한승헌변호사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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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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