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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1일), 여름은 끝나지 않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나 드디어 개학을 했습니다. 하필이면 대구가 사람의 체온과 같은 36.5도로 올 여름 최고 기온을 갱신하던 날이었습니다. 서울 강원 등 일부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곳에서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습니다.

개학 전날 교직원 연수를 마치고 교실에 들어가 보니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오전 내내 창문을 열어놓고 오랫동안 폭염 속에 방치된 교실 바닥과 책걸상에 내려앉은 먼지를 쓸고 닦아내니 이제 아이들을 맞이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창문을 닫고 교실을 나오면서 칠판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방학은 즐겁게 잘 보냈나요?
책상과 걸상은 깨끗이 닦아 놓았으니 그냥 편하게 앉으면 됩니다.   
오늘 1교시 대청소, 2교시 자치활동, 3교시 적응활동으로 하루 일과가 진행됩니다. 
자치활동 시간에는 청소구역 배정, 자리 배정, 지각생 문제, 실내정숙 등에 관해서 자치적으로 토의해주세요. 적응활동 시간은 여러분과 상의하여 좋은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교시 자치활동이 끝나고 반장 아이가 교무실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회의 내용을 빼곡히 적은 종이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의 다 마쳤어요. 청소구역 다 짰고요. 자리는 이번에는 같이 앉고 싶은 애들끼리 앉기로 했어요. 지각생은 1학기 때처럼 하기로 했고요, 그리고 조회 시간이랑 수업시간에 조용히 하기로 했어요. 모두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그래? 그럼 지금 가서 실험을 해볼까?"

저는 올해 담임 복이 많은 편입니다. 아이들과 개인 면담을 해보면 대부분이 밝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아이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단으로 있을 때는 그 모습이 사뭇 달라집니다. 군중심리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익명의 그늘에 숨어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참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주고 싶어도 아이들의 시선을 모으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2학기 첫 자치활동 시간에 실내정숙 문제를 토의하도록 한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자치활동 시간에도 아이들이 떠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이들에게 맡기고 그 결과만 보고 하라고 했더니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담임인 저로서는 손조차 대지 못한 일들을 학급 간부들 중심으로 넉넉하게 해결한 것입니다. 그 일로 저는 많은 반성을 했지만 문제는 지속성이었습니다. 반장 아이와 함께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반장에게 여러분이 수업시간에 조용히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코끝이 찡할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 되면 안 되겠지요? 지금부터 선생님이 15분 동안 여러분의 성장에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해줄 주려고 합니다. 만약 이 15분을 못 참고 떠드는 학생에게는 사탕을 하나씩 주겠습니다."

"떠드는데 왜 사탕을 줘요?"
"맞아요. 사탕을 주면 더 떠들잖아요."
"저 떠들 거니까 사탕 주세요."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던진 다음 말에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좋아. 여러분 스스로 한 약속을 사탕 하나로 바꾸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

드디어 15분짜리 담임 특강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주에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정신병동에 갇힌 소녀들이 주인공들이었는데 그 중 상당수는 정신병동에 있어야할까 의문이 들만큼 거의 정상에 가까운 소녀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상 판정을 받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무엇 때문에 거의 정상에 가까운 소녀들이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야 했을까요?"

"정신이 이상해서요."

"물론 그렇겠지. 그런데 정신이 멀쩡할 때도 있단 말이지. 그래도 정상이란 판정이 내려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아이들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듯했습니다. 아이들다운 엉뚱한 대답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진지한 눈빛에 마음이 더없이 기뻤습니다. 잠시 후, 저는 손에 사탕을 든 채 한 아이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아이는 옆 동무에게 무슨 말인가를 건네려다가 말고 화들짝 놀라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사탕 줄까?"
"아니요. 잘 들을게요."


저는 그 아이에게 빙그레 웃음을 보여주고는 뒤돌아서서 칠판에 두 단어를 큰 글씨로 써놓은 뒤에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화를 낼 때가 많았지요. 그래도 화를 내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기도 했어요. 만약 선생님이 화를 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은 매일같이, 아니 매시간 매순간마다 화가 나 있는 선생님을 봤겠지요. 그건 여러분들에게 너무 끔찍하고 짜증날 일이지만 선생님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할 지도 모르고요.  

영화 속의 주인공이 어려운 난관 끝에 머리 속에 떠올린 단어는 '자제력과 대화'였어요. 물론 그것도 치료의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었지만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더 중요했지요. 정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제력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 자제력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꾸준한 대화 속에서만 가능하지요. 선생님이 매를 안대니까 떠든다는 말은 틀린 말이에요. 매를 대지 않아도 여러분이 자제력을 갖고 여러분 스스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만 키운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에요. 선생님이 매를 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인지도 몰라요."

담임 특강을 성공리(?)에 마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칠판에 쓴 글씨는 영화 속 주인공인 소녀의 퇴원판정으로 내려진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소견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회복된 경계'

아이들도 저도 지금 '회복된 경계'에 서 있습니다. 여름 방학 내내 제 자신과 대화를 한 뒤에 얻은 소중한 진단이기에 저는 이 말을 사랑합니다. 영화 속의 소녀는 이 진단을 받고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계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계란 또한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경계의 지점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것, 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 체벌에 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저는 20년 가까이 매를 대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보람도 있습니다. 떠드는 아이에게 오히려 사탕을 주겠노라는 엉뚱하면서도 제법 약발이 먹히는 발상을 한 것도 매를 대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한 뒤에 생긴 교육적 상상력에 힙입은 결과입니다.

지금은 '사랑의 매'보다는 '교육적 상상력'을 생각할 때입니다.


태그:#순천효산고등학교, #교육적 상상력, #사랑의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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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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