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서서히 달리던 선수들이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TV화면을 통해서만 봤던 쇼트트랙 선수들의 스케이팅. 빠르다. 정말 빠르다. 번쩍이는 스케이트가 눈에 들어올 듯 가까운 거리.

22일 저녁 8시, 태릉 선수촌내 실내 빙상장.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동계 전국 체전을 대비, 쇼트트랙 선수들의 훈련이 한창이다. 12명의 유니폼은 제각각. 그런데, 얼마전 스포츠신문에서 봤던 학교 이름들이 눈에 띈다.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결승에 출전했던 안현수 선수가 재학중인 신목고. 목일중학교는 여자 1500m부문에서 우승한 고기현 선수가 다니는 학교다. 올해 졸업반인 고 선수는 15년 278일의 나이로 쇼트트랙 개인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영광도 함께 안았다.

"아니지! 아이고...참. 쇼를 해라. 쇼를 해!"

아쉬운 웃음, 그리고 선수들을 꾸짖는다. 모지수(33세) 코치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김기훈, 이준호 선수와 함께 이른바 쇼트트랙 1세대로 불린다.

1996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스승으로도 결코 만만치 않은 기량'을 갖고 있다. 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선수단 12명 중 모 코치의 손을 거친 제자만 6명. 고기현, 박혜원(이상 여자 대표팀), 안현수, 이승재, 민룡, 안중현 선수가 그들이다.

"10점 만점으로 따진다면 동성이는 9점, 오노는 6-7점 수준밖에 되지 않아요."

모 코치는 안톤 오노 선수를 '일급 사기꾼'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오노 선수의 '할리우드 액션'에 대해 "쇼트트랙은 제스처를 취할 만한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경기"라고 전제하고, "뭔가 사전에 얘기가 돼 있어, 심판이 인정해줄 거라는 자신이 없으면 취할 수 없는 동작"이라고 못박았다.

모 코치는 이어 "'심판 수준이 선수들의 기량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전명규 감독의 발언은 사실"이라며 "올림픽 경기에서 심판(Referee)을 보려면 ISU(국제빙상경기연맹)로부터 지명을 받아야 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편해강 부회장(대한빙상경기연맹)만이 이와 같은 자격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모 코치는 쇼트트랙 대표팀의 훈련 일정을 소개하면서, "대표팀이 주로 훈련 장소로 이용하는 태릉선수촌내 실내 빙상장은 부상의 위험이 높다"며 "빠른 속도로 달리다 넘어졌을 때, 방어 동작을 취하기에 펜스와의 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모 코치는 "이번 사건이 선수, 지도자, 심판 모두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면서 "모든 선수들한테 앞으로는 제스처를 하란 말밖에 더 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는 '500m출전을 앞두고 있는 김동성 선수가 옆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동성이는 최악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선수"라고 답해, 무너진 '질서'에 대한 미련이 짙게 남아 있음을 드러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안현수 선수의 1000m 준결승전에도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동성이 못지 않은 실력을 갖고 있는 선수다.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

- 개인적으로 김동성 선수를 잘 아는가.
"동성이는 굉장히 활달하고 매력 있는 친구다. 놀 때도 잘 놀지만, 무엇보다 프로 근성이 투철하다. 어제(21일)도 동성이 어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굉장히 원통해 하셨다. 그리고 아들이 겪을 맘 고생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셨다."

- 이번 대회를 대하는 김동성 선수의 마음은 어땠는가.
"주위의 기대도 많고, 부담이 큰 것 같았다. 주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적지 않은 것 같더라."

- 오노가 금메달을 딸 만한 실력이 있는가. 김동성과 비교하면 어떤가.
"금메달 후보를 5-6명 정도로 봤고, 물론 거기에는 오노도 꼈다. 하지만 역시 동성이가 최고다. 10점 만점으로 따진다면 동성이는 9점, 오노는 6-7점 수준밖에 안된다."

- 이유는 무엇인가.
"스피드는 비슷하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보통 인코스로 치고 들어올 때 멈칫하는데, 동성이는 그렇지 않다. 그만큼 스케이팅이 매끄럽다는 얘기다. 원래 우리나라 선수들의 스케이팅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또, 자기 게임으로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쇼트트랙은 처음에 자리를 잘못 잡으면 앞으로 나가기 어렵고, 너무 앞에서 치고 나가면 지쳐 추월당하기 쉬운 경기다. 동성이는 머리 회전이 빠르고, 전후좌우를 커버할 수 있는 시선을 갖고 있다."

- 이른바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쇼트트랙은 제스처를 할 만한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경기다. 무슨 실수를 했다면, 다음 동작을 생각해서 나가기도 바쁘다. 만약 심판이 인정을 안해 주면 어떡할 거냐. 게다가 이번 오노의 동작이 좀 컸는가. 뭔가 사전에 얘기가 돼 있어, 심판이 인정해줄 거라는 확신이 없으면 취하기 어려운 동작이었다.

그래서 오노는 6-7점짜리밖에 안된다. 저희 나라니까 그렇지, 그런 방법이 언제까지 통하겠느냐. 선수는 훈련에만 매진해야지... 벌써 자질이 틀린 선수다. 막말로 일급 사기꾼밖에 안된다."

- 왜 쇼트트랙은 경기 녹화 내용을 판정에 반영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맹점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나라에서도(국내 경기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표팀 전명규 감독은 심판 수준이 선수들의 기량을 따르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사실이다. 옛날보다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이 만들어지고 장비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의 쇼트트랙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면, 현재 국제 심판은 몇 명이나 있는가.
"내가 알고 있기에 5명 정도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심판(Referee)을 보려면, ISU(국제빙상경기연맹)로부터 지명을 받아야 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편해강 부회장(대한빙상경기연맹)만이 이와 같은 자격을 갖고 있다."

- 일부에서는 14일 남자 5000m 계주나 17일 남자 1000m 준결승때부터 강력하게 대응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게임에 영향을 줄까봐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물론 이해는 간다. 하지만 처음부터 강력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잘못을 가만 놔두면 한 번이 두 번 되고... 계속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두 번 그냥 봐주고 넘어가다가, 결국 이렇게까지 된 것 아니냐."

- 대표팀의 훈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새벽 6시에 집합한다. 아침 9시까지 빙상 훈련, 10시부터 오전 웨이트를 한다. 오후 1시 반부터 4시까지 다시 빙상 훈련 그리고 오후 5시 30분까지 지상 운동을 한다. 보통 하루에 4시간 30분정도 스케이트를 탄다.

이런 생활을 거의 1년 동안 반복한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선수촌 내에서도 가장 힘들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또 전 감독이 굉장히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을 한다. 명장 아닌가. 15년 넘게 선수촌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전 감독뿐이다. 나를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하다."

- 현재 우리나라에 쇼트트랙 전용 경기장이 있는가?
"없다."

- 그렇다면, 대표 선수들은 어디에서 훈련하는가?
"주로 여기서(태릉선수촌 내 실내빙상장) 훈련한다. 그래서 부상이 많다. 펜스와의 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 넘어지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는데, 스케이트날이 칼날이다. 펜스로 밀려 나갈 때 공간이 충분하면 방어 동작도 취할 수가 있는데,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선수로 뛸 때와 비교하면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솔직히 쇼트트랙 전용 경기장이 생겼으면 좋겠다."

- 생각보다 열악한 것 같다.
"이곳만 해도 그렇다. 원래 이 건물이 수영장 건물이다. 겨울에는 그래도 괜찮은데, 여름에는 건물 위 창으로 햇볕이 들어온다. 그럼 빙면에 문제가 생긴다. 어디는 너무 무르고, 또 어디는 너무 강하다. 정상적인 연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에는 전지훈련을 간다. 시설이 개선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느냐."

(박성인 선수단 단장은 지난 2월 8일자 스포츠서울을 통해,“태릉선수촌에서 구급차를 불러놓고 운동하는 종목이 쇼트트랙밖에 더 있느냐"고 말한 바 있다)

- 현재 가르치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이번 사건의 영향이 클 것 같다.
"충격이 크다. 선수, 지도자, 심판 모두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게임에 대한 질서, 룰에 대한 질서가 사라진 셈이다. 모든 선수들한테 앞으로 제스처를 하란 말밖에 더 되느냐."
2002-02-23 10:31ⓒ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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