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태릉 실내 빙상장 선수 대기실. 조그만 난로 주위에 모여 앉은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 김동성 선수 얘기가 한창이다. 쇼트트랙 출신 한애리(21세) 선수의 목소리가 높아진다."말도 안 돼, 그게 어떻게 반칙이야." "야! 그럼 나라가 힘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주장 이영우(22세) 선수의 볼멘 대꾸.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쇼트트랙 대표팀은 그녀들에겐 결코 낯선 사람들이 아니다. 두 팀 모두 같은 장소(태릉 실내 빙상장)에서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빼앗긴 금메달'에 대한 안타까움은 훈련 시작전까지 이어졌다."어떻게 하면 자기 기량을 높일까 생각해야지. 오늘, 미리 몸 푼 사람 아무도 없잖아!"신승한(34세. 남) 코치의 나직한 꾸짖음. 이어 퍽을 몰고 가다 한바퀴 회전한 후 슛을 때리는 연습이 시작된다. 그런데, 스틱에서 퍽이 벗어나는 일이 많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선수도 속출한다. '파이팅'소리도 안 나오고, 몸놀림이 무겁다. 왠지 다른 때와 조금 다르다. 김동성 선수에게 쏟아진 스포트 라이트를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그늘'을 더욱 짙게 느낀 것은 아닐까.지난 해 4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창단해 이날 공식대회에 처음 출전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카자흐스탄과의 경기서 1-17의 참담한 신고식을 가졌다. 슈팅수 3-151에서 알 수 있듯 링크의 절반인 한국링크만 사용한 셈이다. 한국은 3피리어드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주장 이정연(한체대)이 상대 수비를 따돌리고 단독 대시, 사상 첫 골을 넣었다. 정운익 감독은 "예상된 결과였다. 세계 4강권인 중국과 강호 일본을 상대로는 더 큰 점수차로 질텐데 선수들의 사기가 아직 살아있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1999년 1월 31일자)- 옛날 같지 않나 봐요?"당연하죠."여자 아이스하키가 국제대회에서 기록한 첫골의 주인공, 이정연(28세) 선수. 멀리 달아났던 퍽을 수습하다가, 수줍게 웃고 만다. 스틱과 스케이트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 3년만이다. 1999년 2월, 당시 대학교 졸업반이던 정연 씨는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아이스하키를 그만뒀다."처음 시작할 때는 남자처럼 실업팀도 만들어주고 뭐 그런다고 했는데 아시안 게임이 딱 끝나니까, 아무 말도 없는 거에요. 물론 '중고등학교 팀도 없는데 무슨 실업팀?'이란 생각은 했었죠. 하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 보수도 없고, 미래가 불확실한데 아이스하키만 할 수 없잖아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서 참 허무했어요."정연 씨는 스피드 스케이팅 출신으로, 한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을 정도로 빼어난 기량을 갖고 있었다. 아이스하키를 그만둔 후, 그녀는 봉일천 중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표팀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쉬웠어요. 가끔 선생님(신승한 코치)한테서 연락 오고, 대표팀 까페(cafe.daum.net/hockey)에도 자주 들렀어요. 항상 관심은 있었는데 그래도 생각뿐이었어요. 나이도 그렇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그런데 작년 2월 태릉 국제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 강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바로 옆 빙상장에서 후배들이 훈련하는 걸 뻔히 알면서,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저녁에 훈련하는 거 보러 갔는데 차라리 우리 때가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우리는 유니폼, 무장, 스케이트 다 나왔고, 학생들이 많아 일주일 내내 훈련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아무 지원도 없고, 훈련도 그 때만큼 못하더군요. 무엇보다 답답했던 건 이제 스케이트 배우는 애들이요. 3년전 우리와 똑같은 절차를 겪고 있는 거잖아요. 선생님도 답답하실 것 같고, 그래서 농담 삼아 선생님께 '다시 해볼까요?'라고 그랬죠."이런 농담(?)을 신 코치가 대충 넘길리 없었다. 결국 1999년 아시안게임 출전 당시 대학교 졸업반이던 정연 씨 등 5명이 '다시 하자'고 뭉치게 됐다. 하지만 2월 4일, 막상 '답답한 현실'에 뛰어 들자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아무런 장비가 없어서, 주로 스케이트 연습을 했거든요. 그러다 큰 부상을 당할 뻔 했어요. 한눈을 팔다가 그만 무장한 친구와 부딪쳤어요. 뒤로 나가 떨어졌죠."한동안 정연 씨 등 5명은 헬멧은 물론 아무런 무장도 못하고, 츄리닝 차림으로 스케이트를 타야 했다. 1999년 동계 아시안 게임 때 자신들이 착용했던 유니폼과 장비를 후배들이 물려 받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다시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 각자 알아서 마련해야 했다. 물론 협회나 대한체육회의 지원은 없었다."그런데도 왜 하냐구요? 무슨 시합을 나가거나, 뭘 바래서 하는 게 아니에요. 무엇보다도 고생하시는 선생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이젠 모두들 직장들 다니고, 사실 피곤하죠. 그래도 우리는 일주일에 3번, 저녁시간만 내면 되잖아요."'참 허무했던' 아이스하키를 다시 시작한 이유.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전에서 골을 성공시켰죠? 중국과의 대결은 어땠어요?"어유, 기억하기도 싫어요."- 왜요?"창피하잖아요. 아시안게임 전에 중국으로 전지 훈련을 갔는데, 그때 중국 대표팀과 꽤 친해졌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봐주면서 하는 것 같더라구요."(당시 한국은 중국에 1:15로 패했다)그리고 정연 씨는 당시 자신이 사용했던 스틱을 "3년동안 방 한구석에 처박아 놓았다"고 말했다. 비록 남자 실업팀 선배로부터 얻은 중고 장비였지만, 여자 아이스하키 국제대회에서 첫골을 터뜨렸던 '명예로운' 스틱인데도.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답답한 현실이 그녀로 하여금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스틱'을 다시 꺼내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아직은 3년전의 '창피와 허무'를 모르는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는 자신을 위해서.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이정연 선수. 그녀의 임시 유니폼에는 34번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예전 자신의 번호였던 '15번'을 달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이젠 특별히 원하는 번호 없어요. 아무 거나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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