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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박람회에 참여한 구직자들이 현장면접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취업 박람회에 참여한 구직자들이 현장면접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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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9월, 대학 4학년 졸업반이었다. 당시 시골집의 극심한 생활고로 3형제 중 장남인 나는 하루 빨리 안정된 직장을 잡아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려야만 했다. 내 사전엔 결코 '좌절·포기'는 없다고 다짐했건만, 서울의 중견기업에 취업하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월요일마다 주요 일간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채용 공고를 뒤적거리던 나는 한 회사의 채용 공고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해외투자 및 무역사업을 비롯,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상업건물의 기획, 개발,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신개념 종합투자개발 회사! 업계 최고 대우의 주역은 바로 당신입니다!"

지금이야 많은 기업이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프로젝트 파이낸싱(금융기관이 사업성과 장래의 수익성을 보고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기법)'이나 '종합투자개발'이라는 용어는 정말 생소한 개념이었다. 특히 메이저급 신문 1면 하단을 당당히 차지한 이 회사의 채용공고는 다양한 분야에서 특별한 스펙 없이 서류심사와 면접만으로 뽑는다고 하니 솔깃했다.

관상 볼 줄 안다던 사장님, 날 찍었네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하니 사법고시라도 패스한 것처럼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아직 서류조차 넣지도 않았는데 마치 사전에 합격통보라도 받은 기세다. 그날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그 길로 서류 준비까지 완벽히 마치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약 보름 후, 그 회사에서 전보 한 통이 도착했다.

'우리 회사 기획홍보 분야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습니다. 최종 면접에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1차 합격 사실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어쨌거나 최종 면접시험만 남게 됐다. 면접은 우선 풍부한 자료 수집이 최대 경쟁력이 될 것 같아 예상 질문을 뽑아 답변을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면접관들은 냉정했고 나의 답변은 순탄치 못했다.

"종합개발 컨설팅 회사라고 알고 있을 텐데 전공이 무관한데, 왜 지원한 거죠?"
"아래 지방 출신이면 남들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텐데, 성적이 그리 좋질 않네요?"
"기획이나 홍보 분야에서 남다른 재주는 있기는 한 건가요?"
"......"


아, 귀가 활짝 열리고 눈은 예리하게 떠야 할 상황인데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백지가 되며.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대로 몇 초만 더 버티면 불합격 판정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한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40대의 인자하고 호탕한 인상의 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사람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자네는 초롱초롱 눈매가 살아 있어. 암 그렇고말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온다고 얼굴에 딱 씌어 있어. 반드시 우리 회사에 오면 큰 일을 해 낼 인물이야. 허허허!"

좌불안석이던 나에게 사장의 그 한마디는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한마디 한마디 쏟아내는 사장의 은혜로운 말에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이를 악물며 꾹 참았다. 순간 분위기는 급반전되었고, 사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 거의 합격 통보 수준이었다.

"전라도 시골 출신이라 남들보다 더욱 꿋꿋하게 열심히 일하길 바라네... 자네, 나를 잘 보필할 자신은 있는가?"

임원들로 구성된 면접관들은 순간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당황했지만 "전공자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해서 최고의 회사를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라는 무책임하고(?) 틀에 박힌 멘트를 남발하고 말았다.

처음엔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사장의 지원 사격에 힘을 더하니 '꼭 붙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합격에 대한 확신으로 며칠을 보낸 후 드디어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20여 명을 뽑은 같은 기수 공채에서 전라도 출신은 당당하게 나 혼자였다. 대기업보다 월급을 더 많이 주고 해외연수까지 시켜주는 꿈의 직장이었으니, 주위에선 다들 "이제 고생 끝났다"며 축하가 이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장의 방침에 따라 아예 서류전형 과정에서 사장이 지원자 증명사진만으로 관상을 보고 면접 대상자를 걸러 냈다고 한다. 영화 <관상>에서 관상쟁이 내경(송강호 분)이 인재를 발탁하며 자문을 하는 장면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셈이다.

이면지 안 쓰면 사표... 사장이 최고인 회사

영화 <관상>의 한 장면.
 영화 <관상>의 한 장면.
ⓒ 주피터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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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사원으로 첫 출근해 배치 받은 곳은 홍보팀이었다. 사장의 총애에 힘입어 기조실의 알짜배기 부서로 배치를 받았다. 나에게 맡겨진 첫 업무는 사보 편집과 홍보물 제작. 정말 어렵게 사장의 '관상' 덕택으로 구원받은 입사였기에 결코 게을리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의 의지는 정말 속을 꺼내서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전공이 글쓰기나 디자인 관련은 아니었지만, 남다른 열정으로 사보를 편집하고 각종 홍보물을 직접 디자인해 시간과 예산까지 절감했다고 칭찬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갔다. 하지만 사장이 말했던 초롱초롱한 눈매로 불타는 열혈 청년은 결코 나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의협심은 어디가고 어느새 조직의 발아래에 무릎 꿇고 있는 비굴한 조직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만든 사보도 사장 찬양일색의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그리고 사장이 나의 관상을 본 것처럼, 나도 2년간 사장을 지켜봤다. 그는 푸근한 인상의 인자한 사장님이 아닌 조직 두목의 포스, 그 자체였다. 회사가 탄탄하게 지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장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이 있었다. 비서실을 통해 부서장들을 시간 단위로 위치 파악을 하며, 종이 한 장 구입하는 것까지 사장의 결재가 있어야 가능했다. 이른 아침 사무실 쓰레기통을 뒤져 이면지라도 나온다면 사표까지 각오해야 했다. 이면지가 없는 경우, 새 종이에 보고서를 준비해야 하지만 사장에게는 그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경우에도 새 용지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니 밤새 새 종이에 일부러 엉뚱한 것을 복사하고 이면지 재활용 도장을 찍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또, 부서 간에 묘한 경쟁심을 유발해 이상한 대결구도로 몰아갔다. 자기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 직원과는 공사를 막론하고 접근을 막았다. 각 부서마다 감시자를 만들어 놓고, 회식자리에 다른 부서 직원이라도 함께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다음날 아침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사의 기밀이 돌게 되면 경영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주술에 빠진 사장님... 결국 사직서를 쓰다

외형으로만 놓고 보면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였지만 실제 경영 방식은 동네 구멍가게 수준도 되지 않았다. 특히 사장은 미신을 굳게 믿어, 사무실 곳곳에 기괴한 형태의 부적을 붙였다. 회사의 전화번호를 정하거나 각종 행사의 날짜를 정할 때도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 점쟁이에게 자문을 구했다. 창문과 출입문의 위치부터 새로 건축할 주상복합건물의 위치 선정까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미신에 의존했다. 그야말로 '주술'에 빠진 사장이었다.

그런 사장의 믿음은 사람을 뽑을 때도 어김없이 작용했다. 반점이 눈 아래 있으면 말년에 외롭다는 관상학적 지식은 이때 사장에게 처음 들었다. 이런 이유로 얼굴만을 보고 재물운·회사운·결혼운 등을 운운하며 직원을 채용하고 해고했다.

하지만 뽑아 놓은 여직원을 보노라면 과연 사장이 전문가들이 말하는 관상으로 뽑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연예인 뺨치는, 필요 이상의 외모를 지닌 비서실 직원들은 관상이 아닌 미모나 인상을 보고 뽑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어디서 데려왔는지 임원으로 초빙한 많은 사람들도 하나 같이 관상에 의존했다. 돈 벌어다 주는 관상에 의존해 경영의 모든 것을 풀어내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수백 명이나 되는 직원을 아침 조회 때마다 사장이 일일이 출석을 불러가며 마치 군대 같은 복종과 폭력배 조직에 버금가는 획일성을 강요했다. 조회 시간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욕설을 들으며 해고된 동료, 사장과 해외 동행 출장 후 울면서 어김없이 사표를 쓰고야 마는 여직원들….

이러니 사장의 의중대로 각 부서로 배치된 각각의 인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오직 사장 한 명만을 위한 회사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항의하지 않았고 애써 외면했다. 조직 내 경쟁을 부추기는 경영 방침 아래 동료에 대한 배려보다는 '나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이 우선시됐다. 삶의 목적이어야 할 '정의'는 어느새 삶의 뒤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니, 그동안 사장의 개인적인 결정으로 회사를 떠난 선배들과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의 반 타의 반 사직서를 제출한 수많은 동료들을 그저 바라만 본 것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그들이 회사생활에 결함이 있거나 업무를 게을리 한 탓이었을까.

힘없는 동료들을 외면한 내 자신이 너무나 처량하고 한심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정말 이런 일이었나?'라는 회의감만 들었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이 모습이 과연 내 미래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직서
 사직서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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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봄 어느 날, 대리 진급을 앞두고 있던 나는 조심스레 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팀장은 웃으며 맞았지만 내가 내민 것은 하얀 봉투의 사직서였다. 표정이 굳은 팀장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지만 내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운이 좋아 입사를 했지만, 나는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호구지책이었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서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성취감은커녕 스트레스만 쌓이고 회의감을 느낍니다. 삶을 길게 바라보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나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이후에도 그 회사는 사장의 관상 보는 능력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서울에서 '목'이 좋다는 자리의 노른자위 땅 곳곳에는 어김없이 회사의 로고가 붙기 시작했다. '하늘의 별따기'라는 공공시설 공사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하더니 급기야 도급순위 상위권의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장님, 당신 관상이나 제대로 보시죠

그러나 결국 20년이 지난 지금 사장의 신조와 경영이념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사장의 말만 믿고 전 재산을 날린 서민 투자자들과 지금껏 그를 믿고 따랐지만 몇 년 치 급여까지 체불 당한 임직원들…. 피해자도 수백 명에 이르고 액수도 수백억 원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얼마 전 들려왔다. 결국 20여 년 전 사장의 말처럼 '정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는 사람'은 '내'가 아닌 바로 그 '사장'이었다.

20여 년 전, 관상을 보고 나를 선택한 사장의 판단은 정말 맞았을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어찌해 사람을 겪어보지도 않고 얼굴만 놓고 함부로 길흉화복을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관상은 외관으로 뚫고 나온 내면의 그림이다. 하지만 좋은 인상이란 선천적인 생김새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결정된다. 관상에 대한 사장의 지나친 의존이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게 아니었을까.

역술가의 말에 놀아나고 회사의 의사결정을 관상에 의존했던 사장님, 이제는 다른 사람 관상을 보기 전에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 먼저 비춰보는 것은 어떨까요?

"'얼굴보다 몸, 몸보다 눈빛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모양을 바꾼다'는 말처럼 그 무엇보다 마음, 즉 심상(心相)을 중요시한다. 내 마음 씀씀이가 바로 나의 얼굴과 삶을 바꾸어 놓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 신기원의 <꼴 관상학>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관상' 응모글입니다.



태그:#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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